오클랜드로 가기위해 2015년 1월1일 아침 뉴욕에서 비행기를 탔다. 최대한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보니 두 번이나 경유를 하는 24시간이 넘는 여행이었다. 호주 외에는 모든 나라들과 멀리 떨어져있는 뉴질랜드는 관광청에서도 홍보에 있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점을 접근성이라 이야기한다. 이처럼 길고 힘든 여정 속에서 위로가 되었던 건 시설과 서비스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뉴질랜드 국적기, 에어뉴질랜드를 타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탑승한 비행기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기내를 가득 채운 연보랏빛 조명은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엇보다 뉴질랜드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모든 영화를 비행 중에 볼 수 있고, 영화 주인공들과 피터잭슨 감독이 출연한 기내 안전 안내영상 역시 아주 재미있었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호빗과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차례로 감상했다. 쉴 틈 없이 영화를 즐기고 난 후 마침내 도착한 뉴질랜드에서는 영화 속 장면이 비행기 창문너머로 그대로 펼쳐졌다. 마치 내게도 새로운 모험이 시작될 것처럼 두근거렸다. 에어뉴질랜드는 비행기에서부터 여행지의 이미지를 미리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뉴질랜드 대표 콘텐츠를 국적기에서 영리하게 활용한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콘텐츠를 통해 여행지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법,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도 그 이미지를 최대한 현실같이 전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뉴질랜드 여행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가장 기대했던 관광지는 단연 반지의 제왕 촬영지인 호빗 마을 ‘호비튼(Hobbiton)’이었다. 뉴질랜드 관광수입의 큰 축을 차지하는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은 뉴질랜드 곳곳에 수려한 경관의 촬영지를 남기며 세계의 영화팬들을 끌어모았다. 그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 테마파크처럼 운영되고 있는 곳이 바로 북섬 해밀튼에 위치한 ‘호비튼’이다. 이곳은 개별 투어가 불가능하며 30분 간격으로 그룹 투어가 운영된다. 티켓 판매소에서 시간별로 약 30명씩 버스를 타고 약 10분 정도 이동을 해야 실제 세트장에 갈 수 있다.

“피터 잭슨 감독이 호빗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바로 끝없는 언덕에 커다란 나무가 하나 우뚝 서 있는 풍경이었다고 합니다. 그 풍경을 찾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지나가다 발견한 목장이 바로 이곳, 호비튼이 되었습니다.”

촬영 당시 출연진들이 직접 탔었다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가이드를 맡은 윌리엄(William)이 설명했다. ‘반지의 제왕’이 촬영될 때만 해도 이곳에 실제 집은 몇 개 없었는데 후속편인 ‘호빗’시리즈를 촬영하면서 현재 44개의 호빗 집들이 남아 복원을 거쳐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세트장에 도착해서 처음 본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영화 속에 그대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언덕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집은 물론, 생화를 비롯해 빨랫줄, 장작 등 작은 소품까지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호빗이 문을 열고 튀어나올 것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남기기에 바빴다. 게다가 가이드가 전해주는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다.

투어의 백미는 마지막에 있었다. 호비튼을 구경하고 돌다리를 건너 도착한 그린 드래곤 인(Green Dragon Inn) 역시 영화에 나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원래 이 장면은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이곳에 실물로 재현했다. 게다가 그저 공간을 둘러보는 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호빗 테마로 직접 만든 수제 맥주와 알콜이 들어있지 않은 생강 맥주(Ginger Beer) 중 한 잔을 투어 비용 안에 포함시켜 모두가 맛볼 수 있도록 했고, 수프나 파이 등 호빗 테마의 음식 역시 추가금액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찾은 기념품 숍에서는 절대반지, 호빗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 호빗이 들고 다니는 곰방대, 주인공의 집 앞에 붙어있는 출입금지 사인 등 다양한 영화 속 아이템들이 현실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 마셨던 호비튼의 수제 맥주도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술과 음식을 즐기던 그 공간 속에서 나 역시 똑같이 즐기고, 추억을 그대로 기념품으로 간직해 돌아갈 수 있다니. ‘반지의 제왕’ 시리즈 영화에 그리 취미가 없었던 나까지도 점점 영화에, 그리고 뉴질랜드에 빠져들고 있었다. 

호비튼에서는 저작권이나 초상권 때문인지 실제 영화 주인공들의 사진이나 실물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빗 마을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었다. ‘반지의 제왕’ 영화가 좋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주인공인 ‘프로도’를 보고 싶지, ‘일라이자 우드’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주인공을 보고 싶은 욕구보다 직접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실제 호빗은 한 명도 볼 수 없는 호비튼에서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만으로,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나도 사용해봄으로, 충분한 체험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호비튼에서 나는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힘을 느꼈다. 콘텐츠가 눈앞에서 현실화 되었을 때 열광하게 되는 관광객을 위해 무형의 콘텐츠를 유형으로 만들어낸 호비튼에서 한류 콘텐츠를 기반으로 미래의 관광을 만들어갈 한국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윤지민은 관광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다 관광객의 시선에서 진짜 관광을 배우고 싶어 260일간 세계여행을 하며 관광인들을 인터뷰했다. 현재 관광을 주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관광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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