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후배들의 추진력은 놀라웠다. 대부분 희끗희끗한 머리의 사진반OB 정기 MT에 갔을 때 “대학 다닐 때 우리를 지도하신 토목과 故전몽각 교수를 기억하며, 우리도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추억하는 사진전을 열어보자”고 의견을 모은 게 2014년 봄이었다. 그러다 지난 12월 9일, 성균관대학교사진반(SAPA) ‘45년의 기억, 1971~2015’ 사진전이 드디어 대학로에서 열렸다. 70대의 창립 멤버에서부터 20대 후반의 41기 졸업생까지 그들의 재학시절, 혹은 그 후 찍은 사진작품을 전시하고 각 기수 멤버들이 학생시절 촬영여행을 갔던 기념사진이나 서클 룸의 스냅사진, 그리고 당시의 동아리 일지 등을 특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손주 사진을 보여주며 연신 싱글벙글하는 할아버지 선배의 풋풋한 청년의 모습은 물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선배의 앳된 얼굴도 거기 있었다. 사진 전시회로만 그치지 않았다. 미처 전시장에 걸리지 못한 사진과 자료를 에피소드와 함께 연대기별로 보여주는 기념책자도 전시회가 끝나면 집으로 배송될 거라고 했다. 동아리를 창립한 칠순의 선배는 전시장을 둘러보다 슬며시 눈가를 훔쳤다. 나 역시 뭉클했다. OB멤버 모두 그들이 지나온 수십 년의 시간과 사진에 담긴 순간의 기억에 감격했다. 그 때 그 시간, 그 공간에 함께 있었던 선후배를 향해 절로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사진반 OB팀 집행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들이다. 카이스트, 금융회사, 중소기업 등 각자 일터에서 핵심적인 허리 역할을 하느라 그야말로 허리가 휘는 나이다. 그럼에도 2개월 넘게 주말마다 모여 선후배로부터 받은 사진들을 고르고 액자 작업하며 책을 펴내느라 밤샘을 떡 먹듯 했다.
 
나는 친누나처럼 “니들 이뻐 죽겠다, 그러고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마누라 나오라고 해. 맛있는 밥 사줄게”하며, 진심어린 사랑을 담아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돌아온 말이 더 이뻤다. “어우~ 누나, 그동안 진짜 행복했어요. 몸은 고단했지만 사진 고르고 에피소드 읽으면서 얼마나 재미있었는데요. 우리가 언제 이렇게 아무 이해관계 없이 모여 지난날을 얘기하고 키들키들 웃어보겠어요? 오히려 ‘힐링 타임’이었어요.” 사랑스런 주부 후배들은 전시기간 내내 매일 조를 짜서 전시장을 지키며 음료와 다과를 준비했다. 아버지뻘 되는 선배에게 까마득한 후배들이 “선배님”이라는 호칭 대신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임은 여기밖에 없을 거라며 즐거워했다.     
전시회가 끝나고 일상에 파묻히면서 감동의 약발이 떨어질 무렵, 집으로 기념책자가  배달됐다. 표지 한 장 넘긴 속표지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 하라)이 쓰여 있었다. 한 시대를 같은 곳에서 바라본 구성원들이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공감하는 글귀였다.
 
집행부를 대표한 회장의 서문은 누구 할 것 없이 같은 마음이었다. “골방 깊은 곳에 먼지와 함께 묵혀 있던 낡고 누렇게 변한 앨범 속 사진을 꺼내고 창고에 밀쳐졌던 카메라, 필름 등 낡은 사진장비를 만져보며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추억의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책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수집된 소중한 사진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지면을 채우다보니 그 시절 함께 활동했던 선후배의 모습과 당시의 상황, 삶의 공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선희의 노래처럼 ‘가물거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보다 더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을까! 먼 과거의 일이 어느 순간 지금으로 소환되고, 오늘의 일도 곧 어제가 된다. 작은 이야기가 모여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작은 물길이 된다. 책 속의 앳된 얼굴들은 달라진 시공간 속에서 다시 오늘의 기억을 쌓아가고 있다.

석 달 전 후배들이 보낸 이메일 설문이 생각났다. “만일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나는 즉각 회신했다. “아니, 지금이 좋은데 왜 다시 20대로 돌아가나요? 내 성격과 성향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한,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면 똑같이 반응하게 될 겁니다. 암울했던 청춘의 번민과 고통,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요. Once is enough! 한 번이면 족합니다. 경쟁 속에 애면글면하지 않고 가진 건 없어도 주변을 돌아보려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지난날보다는 내일이 궁금해요.
 
내년이 더 기대되고 내후년이 어떨지 더더욱 호기심이 생깁니다.” 솔직한 마음이다. 나를 스쳐지나간 것들 중에, 내가 잠깐이나마 가졌던 것들 중에,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 중에 노다지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정갈한 아침상 받듯 2016년 새해를 맞았다. 한번 뿐이어서 소중하기에 이젠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해야겠다. 
 
 
강문숙
맥스컴 대표 maxco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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