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의 폭설로 제주공항이 마비된 지 정확히 일주일 후의 일이다. 취재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여행을 위해 구입해 둔 LCC 항공권이 있었다. 졸지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던 여행객들이 하나둘 공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출발 전날까지도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했더랬다. 

결국은 쓸데없는 직업정신을 발휘해 제주에 갔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동행하기로 했던 이가 사정상 함께 갈 수 없게 된 것. 거짓말은 하나도 보태지 않겠다. 출발 며칠 전부터 항공권 취소를 위해 고객센터에 27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제주 폭설로 취소문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단 한 번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예약 전체를 취소하는 것은 해당 항공사 사이트에서 가능했지만 부분 취소는 ARS 고객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출발 당일 공항 발권 카운터에서 취소를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취소수수료는 두 배가 됐다.  

기자의 사례는 약과다. 항공사들은 공항에 발이 묶여 있었던 승객들을 수송하기 위해 임시 항공편을 투입했다. FSC 항공사는 예약 순서에 따라 남아 있는 좌석을 자동으로 배치해 문자로 공지한 반면 LCC의 경우 자동 예약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아 대기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아날로그적인 시스템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대기 순서를 놓치는 승객이 발생하는 일은 당연히 일어났다. 

LCC 항공사들은 홈페이지 및 모바일을 통한 프로모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일례로 얼마 전 제주항공이 ‘특가’를 내세운 이벤트를 시작했던 날 사이트에 21만 명이 동시에 몰려 서버가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진 적도 있다. 이에 따라 국내 LCC의 직판 판매율은 전체 항공권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에 대해 문제점이 지적된 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체계적이지 않은 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몸집을 불리고 판매량을 늘리는 데만 집중한 것은 지나친 과식이 아니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식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먹기만 하다가는 그저 ‘비만 항공사’로만 전락하게 될 게 뻔하다. 무시무시한 성인병을 막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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