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가톨릭 수원교구청에서 주관하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있다. 8주 32시간 동안 딱딱한 의자에 앉아 들으려니 곧 시니어에 속하게 되는 나로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한 친구는 “공부 못하고 죽은 귀신 들렸나, 뭘 그렇게 자꾸 배워대? 게다가 봉사자를 기르는 교육인데 돈을 내면서까지 교육을 받아야 하나?”하고 물었다. 나는 “철학, 심리학, 사회학, 간호학, 의학 교수진과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귀한 시간 내서 강의하는데 마땅히 강의료를 드려야지. 다 배우면 나중에 남 주려고~” 하고 대답했다. 농담 같지만 진심이다. 전부터 호스피스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일에 매달려 시간이 없을 땐 마음만 굴뚝같다가, 일을 좀 할랑하게 하게 되니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매달린 싸나톨로지(Thanatology ; 생사학, 죽음학) 공부와도 연관이 되니 만사를 제치고 듣고 싶었다. 

호스피스(Hospice)란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를 말한다. 환자가 남은 여생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도록 신체적·사회적·영적으로 도우며, 사별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켜주는 총체적인 돌봄이다. 라틴어 호스페스(hospes ; 손님, 나그네, 손님 맞는 집주인)나, 호스피탈레(hospitale ; 순례자나 참배자, 나그네를 위한 숙소)가 그 어원이 된다. 호스피탈레(hospitale)는 또 손님과 집주인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의미까지 포함되면서 점차 그 이름이 호스피탈(hospital)→호스텔(hostel)→호텔(hotel)로 바뀌었다. ‘환대’라는 뜻의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도 여기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중세 가톨릭에는 영적으로 위대한 성인의 유해나 유골을 모신 특정 교회를 찾아 순례하는 전통이 있었다. 자동차나 기차 같은 문명의 이기는 당연히 없을 때고, 가난한 수도자나 신자들은 말과 같은 운송수단을 가질 형편이 안 되니 그 멀고 험한 길을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성지순례자나 여행자가 하룻밤 묵어 쉬어가는 곳이 호스페스(hospes)였다. 여기에 11세기 말부터 13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십자군전쟁 당시에는 많은 부상자들이 이곳에서 수녀들의 치료와 간호를 받다가 죽음을 맞게 되자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안식처’로 불려 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르러 삶=여행, 임종환자=성지순례 여행자로 의미가 확대되고 깊어진다. 삶이라는 여정의 막바지에 이른 이들이, 여행(삶)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보살핀다는 의미를 이때 비로소 갖게 된 것이다. 
 

죽음은 삶이라는 여정의 정상적인 과정인 만큼, 호스피스는 죽음을 재촉하거나 미루지 않는다. 호스피스 봉사자는 죽음을 맞는 이가 죽음을 앞두고 외롭다거나 두렵게 느끼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 아무런 회한 없이 평화롭게 떠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적극적으로 그 과정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싫어도 매년 절로 나이를 먹으니 자연스럽게 여기에 관심이 갔다. 나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살아남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그의 수용소 생활을 성찰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 어째서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가령 수용소 안에서 살기 위해 남의 빵을 빼앗아 먹는 사람보다, 자기 것을 죽어가는 사람에게 나누어준 사람이 결국 생존할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회피하거나 멀리 있는 사건으로 밀쳐두게 되면,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가서야 죽음을 생각한다면 그때는 너무 늦다.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쓰고 있지만 나는 유명하지도, 대단치도 않은 작품 하나 없는 보통사람이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죽음을 현재로 소환해보면 정말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다. 죽음의 현재화는 내게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달리 해석하게 한다. 호텔의 어원을 생각하다 이러한 철학적, 인간애적인 의미에 이르니 주변에 널린 호텔이 새삼 다시 보인다.
 
강문숙
맥스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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