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0년 만에 야구장을 찾았다. 소규모 모임을 한정식집이나 일식집, 호텔에서 갖는 대신 기억에 남을만한 색다른 장소에서 하고 싶었다. 모임의 총무를 맡은 나는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프로야구단의 새로운 홈구장 스카이박스를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알아보았다. 시원한 실내의 긴 테이블에서 회의를 할 수 있고 식음료도 즐길 수 있는 한편, 실외 좌석에 편안히 앉아 야구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잠실야구장에는 스카이박스 시설이 없기에 수원 KT위즈파크 스카이박스를 한 달 전 예약했다. 모임 장소로 야구장 스카이박스를 떠올린 건 모임 회원들의 환호가 아니더라도 ‘신의 한 수’로 자화자찬할만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 출장 갔을 때 현지의 파트너가 일행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그 장소가 레스토랑이 아니라 야구장 스카이박스였다.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그것도 딱딱한 의자가 아니라 호텔 소연회장 같은 시설에서 맥주와 다양한 음식을 즐기며 처음 만난 파트너들과 자유롭게 담소하며 야구를 관람하다니! 푹신한 의자가 있었지만 분위기와 경기에 흥분돼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파트너 회사의 임원들은 회사가 소유한 스카이박스 회원권으로 업무시간 이후에 야구장을 찾으니 심신이 편안한 상태였고, 나 역시 긴장할 필요가 없는 분위기여서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 이후 이들과 친밀도가 높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야구장 스카이박스로의 초대, 우리나라처럼 룸살롱에서 비싼 돈 써가며 몸 버리는 술 접대에 비해 얼마나 생산적이고 경제적인가. 당시 이 경험은 내게 문화적 충격이었고 이십여 년 전의 이 장면이 번쩍, 하고 머리를 스쳐 야구장으로 장소를 정한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프로야구단 홈구장의 시설과 서비스는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가 있긴 하지만 줄 서 있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컴퓨터와 휴대폰, 태블릿PC 등 온라인으로 좌석을 예매하고 결제하니 굳이 줄 서서 표를 살 필요가 없다. 경기장에는  와이파이가 팡팡 터지고, 현지에서 최고로 맛있다는 치킨, 김밥, 만두집이 야구장 안에 있다. 물론 구단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입점이 가능했다고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수원 ‘통닭거리’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치킨 집(우리 귀에 익숙한 메이저 치킨 집은 ‘통닭거리’에 없다)과 이 지역 주민 사이에 맛있기로 명성이 자자한 김밥 집과 만두집이 들어온 점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야구팀이니만큼 지역경제 발전을 꾀하려는 구단 측의 배려로 보인다.  
 
스카이 존(zone)에는 야구장의 한 층을 둥글게 돌며 여러 규모의 인원을 수용하는 스카이박스가 여럿 있다. 우리 방은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과 냉장고, 바, 실시간으로 경기를 볼 수 있는 TV는 물론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어 편리했다. 휴대폰에 다운받은 구단 앱을 통해 치킨과 맥주, 김밥, 만두를 주문하니 잠시 후 야구장 직원이 환한 얼굴로 배달을 해준다. 그야말로 색다른 ‘치맥’과 함께 영양적으로도 실해보이는 김밥으로 요기를 하니 밖에서는 경기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린다. 모처럼 야구장을 찾은 멤버들은 잔뜩 흥분한 채 음식과 음료를 들고 실외 좌석에 앉는다.
 
홈구장 응원단의 율동을 따라 하기도 하고, 아예 경기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구호를 외치고 열혈 팬처럼 적극적으로 춤추듯 팔을 휘두르며 응원한다. 솔직히 나는 누가 2루타를 쳤고 누가 홈런을 날렸는지 경기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야구장 곳곳의 풍경이 신기하고 흥미로워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바빴다. 주말이면 가족이나 친지들이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바비큐 존(zone)은 놀라웠다. 뿐인가, 냉장 생맥주 통을 짊어진 판매직원은 관람객이 손을 흔들면 그 좌석으로 달려가 생맥주통의 수도꼭지를 틀어 컵 한가득 생맥주를 들이 붓는다.
 
이젠 “짜장면 시키신 분~!” 하고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앱으로 주문한 음식은 주문한 좌석에 정확히 배달된다. 무릎 위 태블릿에 실시간 경기 중계 장면을 틀어놓고 현장 경기를 관람하는 열성 팬, 엄마 아빠 아들 딸 한 가족이 응원팀 셔츠를 함께 입고 배달된 저녁을 먹는 단란한 모습…. 명승지만 관광자원인 시대는 지났다. 이런 곳에서의 경험도 충분히 색다른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문숙
맥스컴 대표
 
※2013년 11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연재된 [강문숙의 마음여행]은 이번호를 끝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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