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 이것만은 고치자!

2. 여행상품 ‘제자리걸음’의 이유
상품개발 없이 가격경쟁에만 몰두 

-지겹고 식상한 여행상품 여전히 판쳐
-개발하기보다 재탕하고 베끼기 일쑤  
-인바운드 상품도 콘텐츠 다양화 절실
 
장수상품 또는 스테디셀러라고 하기에는 지겹고 식상한 여행상품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지역명+여행기간’의 조합으로 된 상품명도 똑같고 일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상품가도 20여 년 전과 엇비슷하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행업계의 빈약한 여행상품 개발 풍토가 원인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덩치 커졌어도 상품개발에는 인색
 
최근 소비자들의 ‘탈 패키지’, ‘탈 여행사’ 현상은 여행사 스스로 자초했다는 자성도 많다. 그들을 끌어들일 만큼 상품이 매력적이지도 다채롭지도 않아서다. 자사만의 여행상품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상품을 재탕하거나 남의 상품을 베끼는 악습이 되풀이되면서 빚어진 일이다. 

무엇보다 상품개발에 대한 여행사의 의지가 빈약하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A항공사 임원은 “과거에 비해 여행사 규모가 상당히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신규 상품 개발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방치돼 있는 것 같아 아쉽다”며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신규 상품 대부분도 여행사보다는 항공사와 관광청이 주도적으로 나서 개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주요 대기업은 성장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데 여행업계는 상위 여행사들조차도 상품개발 전문부서조차 없을 정도로 여행상품 R&D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혀를 찼다. A여행사 대표 역시 “잘 팔린다고 하면 우선 카피부터 하고 가격을 낮추거나 브랜드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며 “어느 분야에나 있는 일이지만 여행상품에 대해서는 유독 심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동조했다.

여행상품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행상품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받기 어렵고,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다 해도 타 여행사들이 금세 베끼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넓게 퍼져있다. B여행사 대표는 “여행상품명을 브랜드로 만들어 상표등록을 한 경우가 몇 건 있지만, 여행상품 자체로는 독창성과 배타적 권한을 인정받기 어려워 특허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는 호텔이나 리조트, 교통시설, 관광지 등의 독점 공급권을 따내 이를 바탕으로 타사에는 없는 독창적인 상품을 만들기도 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온라인과 모바일 등으로 판매채널이 다양화되고 오픈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상품경쟁 아닌 가격경쟁 ‘악순환’
 
상품이 획일적이다 보니 가격이 소비자 선택을 가르는 중요 잣대로 부상했고, 이는 다시 여행사들의 최저가 경쟁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형성됐다. 최저가 경쟁의 고리는 마이너스 투어와 옵션 강매, 쇼핑 강요 그리고 이에 따른 소비자 불만과 외면으로 이어졌다.

여행사 수익마저 저가경쟁에 동원된다는 대목에서는 항공사들도 안타까워한다. B항공사 관계자는 “항공권 판매수수료(Commission)가 폐지된 후 VI(Volume Incentive)가 여행사가 항공권 판매로 얻는 수익이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VI마저 상품가에 ‘녹여’ 가격경쟁에 나서기 시작했다”며 “영업활동에 대한 보상인 VI를 가격경쟁에 사용하고 항공사에 또 다시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하는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가 경쟁에 따른 소비자 피해도 피해지만 여행업 내부에서도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선 필요성이 높다. 랜드사와 현지 가이드, 인솔자까지도 휘말리기 때문이다. 모 대학 관광과 교수는 “패키지 여행의 불만과 칭찬을 결정짓는 요소는 결국 현지 가이드와 인솔자에 달려 있는데 저가경쟁 탓에 정작 이들에 대한 처우는 갈수록 엉망이 돼가고 있다”며 “몇몇 대형 여행사들도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저가에만 의존하는 영업정책을 개선하고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옵션 강매나 쇼핑 강요, 이로 인한 소비자 불만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여행사와의 협업도 방안
 
가격경쟁이 아닌 상품경쟁 구조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전문여행사와의 협업이 꼽힌다. 스스로 상품을 개발할 여력이 없다면 베끼기보다는 전문여행사와의 협력을 통해 상호 윈-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수지역 전문여행사 C사 대표는 “여행사 직원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전문여행사의 노하우와 경험을 따라올 수는 없으며, 랜드사에 상품개발을 의뢰해도 한계는 명확하다”며 “특정 상품을 팔고 싶다면 어설프게 흉내를 내기보다는 차라리 그 상품을 기획한 전문여행사와 협업을 통해 기획과 마케팅, 유통 등에서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게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중국 인바운드, 상품보다는 인두세? 

‘마이너스 투어’ 만연…상품 황폐화
 
상품보다는 가격에 더 의존하는 구조는 인바운드 부문도 마찬가지다. 특히 3~4년 전부터 가파른 급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국 인바운드 부문은 정부에서도 초강수로 대응하고 있을 정도로 덤핑 유치에 따른 폐해가 심각하다. 양적 측면에서 급성장하는 과정에 빚어진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상비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측 송객여행사에 이른바 ‘인두세’를 주고 단체를 유치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하다. ‘마이너스 투어’는 당연히 쇼핑과 옵션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이어진다. 중국인 유치 전담여행사인 A사 대표는 “심할 때는 1인당 인두세가 400~500위안(한화 약 6만8,000원~8만5,000원)에 이르기도 한다”며 “요즘은 쇼핑 수익도 예전만 못하고 정부 단속도 심해져 단체를 거부하려고 하면 ‘다른 곳은 다 하겠다는데 왜 너희만 그러느냐’는 투로 나와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B사 임원은 “정부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68개 중국전담여행사의 자격을 3월말 취소했지만 그 뒤로도 현장에서는 이렇다 할 변화상을 느낄 수 없다”며 “정부가 시장에 너무 개입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왕 개입했으면 가시적인 개선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상비를 얼마나 싸게 책정하느냐, 또는 인두세를 얼마나 높게 주느냐가 중국인 단체 유치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다보니 상품 콘텐츠도 자연스레 획일화됐다. 신상품이라고 해봤자 여행사별로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다. “‘치맥’이 유행하니 너도 나도 엇비슷한 치맥 상품 만들기에 나섰던 것처럼 중국 인바운드 상품 구성상 콘텐츠의 다양성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는 지적이다.
 
배타적 독점판매 가능할까?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있다. 정부가 올해 중 도입하겠다고 밝힌 ‘단체관광상품 품질인증제도’다. 정부가 특정 중국 인바운드 상품에 대해 그 품질을 인증하면 다른 여행사는 그 상품을 모방하거나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중국전담여행사 업무시행 지침’에 ‘테마 및 지방상품에 대한 공모를 통해 우수 단체관광상품을 인증하고, 해당 상품을 개발한 전담여행사에 상품 출시 후 1년 동안 배타적 독점 판매권리를 보장하며, 다른 전담여행사는 이를 모방하여 판매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계획대로 실현되면 중국 인바운드 상품의 다양화 및 차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 및 중국 측 송객여행사와의 조율도 필요한 사안이어서 성사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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