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회피는 이 시대의 트렌드인가 보다. 신문의 사회면이나 정치면은 문제 상황에 대해 변명조차 하지 않는 얼굴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자발적으로 책임지고 떠나는 사람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마 책임 회피가 우리 사회의 생존방식 1순위 즈음에 올라있는지도 모른다. 

업계라고 다르지 않다. 가해자는 없어지기 일쑤고 남겨진 피해자는 홀로 자궁책을 찾아야 한다. 피해 구제는 생각만큼 촘촘하지 않아서 가해자가 아무리 떵떵거리고 있어도 구속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는 물론이고 때로는 여행사나 항공사도 황당한 책임 회피 앞에서 무력해지곤 한다. A항공사는 일정 변경으로 생긴 소비자의 환불 요구를 묵살하며 한동안 도마에 올랐다. 전세기를 들여왔던 B업체의 경우 갑작스럽게 운항을 중단하고 도산하면서 여행사와 여행자에게 수억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보상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되려 여행사에 다른 사업의 판매를 요구했다. 돈을 벌어야 빚을 갚지 않겠냐는 논리였다. 여행사에게 수억대의 빚을 가지고 있는 C업체의 경우, 비용 지불을 끝없이 미뤘다. 여행사가 추징을 하려고 보니 교묘하게도 계약서의 이름과 여행사가 돈을 입금한 계좌의 이름이 달랐단다. 같은 업체가 분명하지만 어떤 법적인 행사도 불가능하게 됐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문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너그럽다는 것이다. 출혈이 난 곳은 봉합되지 않고 그대로인데도 다른 한 쪽에서는 다시 계약이 맺어지고 영업이 시작된다. 한 취재원은 “문제적 업체의 상품을 팔고 싶은 건 아니지만 호텔 하나, 투어 하나의 차이가 다른 여행사 상품과의 경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냥 무시할 수가 없다”며 “울며 겨자먹기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체가 보이콧을 하지 않는 이상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책임회피를 하기에 조건이 너무 좋은 것 같다.  너그러움을 발휘하는 것이 미덕이긴 하지만, 가해자의 책임 회피를 너무 방조하는 것은 아닐까. 
 
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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