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어제와 똑같은 여행사와 똑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가 한창이다.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바깥에서는 새로운 여행 시장이 편성되고 있었다. 
여행사가 손대지 못하는 틈새시장에서 수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저변을 확대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편집자주>

-시골여행, 주문 대행 등 세분화된 서비스 제공
-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 호황, 제휴·협업 적극
-소자본, 소규모… 대형사의 ‘베끼기’ 앞에 무력
 
 
여행 일상화 되자 아이디어 ‘펑펑’
 
요즘 광화문 인근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명절이 돼도 보기 힘들었던 것이 한복인데 광화문 광장, 경복궁, 덕수궁 인근에서는 유행이라도 되는 듯 열에 하나는 한복을 입고 있다. 지방 여행을 할 땐 펜션만이 해답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지역 주민이 하는 작은 숙박시설, 홈스테이까지 선택권이 늘어났다. 여행자들에게 한복 착용 체험을 제공하는 ‘한복남’, 전국의 작은 숙박 업체를 소개하는 ‘시골하루’가 여행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사실 한복 대여나 홈스테이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아주 새로운 콘텐츠는 아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만 알았던 숨겨진 콘텐츠가 보편화 양상을 띤다는 것은 달라진 부분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데는 소규모 여행 스타트업 회사들의 고군분투가 숨어 있다.

최근 창업 열풍을 타고 여행 분야에서도 스타트업이 한창이다. 공학적 전문 기술이 필요한 분야가 아닌 만큼 접근성이 높다는 것이 흥행 이유다. 여행 시장이 확대되는 만큼 관심도가 증가하는 것도 꼽을 수 있겠다.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신홍합밸리의 이유현 매니저는 “여행은 IT처럼 심도 깊은 전문 기술이 필요한 분야가 아닐뿐더러 대중적인 콘텐츠에 속한다”며 “아이디어만 가지고 시작하는 업체도 많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인 관광객과 유학생을 대상으로 배달 음식의 주문 대행을 제공하는 커들리 박대일 대표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고, 또 많이 다니면서 직접 불편을 느낀 부분을 해소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한 체감상의 분위기를 떠나 스타트업 기업의 증가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여행 스타트업 회사들의 네트워킹을 위해 이유현 매니저가 기획한 네트워킹 행사만 하더라도 회를 더해가며 참가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1회차 당시에는 60여개 기업의 86명이 참가했고 올해 2월 2회차를 거쳐 올해 8월 열린 3회차 행사에는 총 85개 기업의 130여명으로 참가자 수가 급증했다. 
 
‘하나의 서비스만’ 선택과 집중
 
여행 스타트업 기업들은 여행자의 ‘작은 니즈’에 집중한다. 대형 여행사들이 그룹, 패키지 등 큰 규모의 행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이들 회사들은 개별여행자들, 단품 등 작은 콘텐츠로 승부하는 것이다. 한복 대여, 지역 숙박, 음식, 교통 등 일반 여행사에서는 단품 영역에 속하는 콘텐츠 하나하나에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규모 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실속을 가져가는 것이다. 한복 대여만 해주는 한복남, 가이드만 매칭해 주는 설레여행, 음식 주문 대행만 해주는 커들리 등 대부분 세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큰 여행사들이 그 규모만큼 많은 여행자들의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화된 상품을 제공한다면, 스타트업은 서비스에 대한 명확한 시장과 타깃을 가지고 활동한다. 말하자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서비스다. 

여행의 영역에 대한 재정의도 이뤄진다. 여행을 항공과 호텔, 일정이라고 보는 기존의 정의를 해체하는 것이다. 한복을 빌려주거나 강연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외국인이 배달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주문 대행을 해주는 것은 분류상 여행업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여행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타깃이 여행자일 뿐 스타트업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스포츠, 레저, 문화 등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 확장돼 있는 셈이다. 이유현 매니저는 “기업의 성격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한편으로는 의식주 다음으로 여행이 꼽힐 만큼 그 입지가 중요해지고 있고, 어느 분야에서나 여행이 접목될 수 있는 지금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국내여행, 인바운드 시장 중심으로 개발이 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현지 인프라와 항공, 호텔 등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기존 여행사의 영향력이 큰 아웃바운드보다는 소규모,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국내여행 및 인바운드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 특징들은 요즘 젊은 여행자가 여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 겉핥기식이 아닌 심도 깊은 여행, 현지인의 삶 체험 등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니즈가 중요한 자유여행자의 증가로 인해 소규모 스타트업 회사의 활성화가 따라 온 셈이다. 
 
네트워킹 활발, 법적 보호도 필요해
 
각각의 콘텐츠가 명확히 분리되는 만큼 스타트업 회사 간의 네트워킹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행 스타트업의 네트워킹 그룹 ‘트래블 테크 그룹(Travel Tech Group)’의 페이스북 멤버는 약 420여명에 달하고 오프라인 네트워킹 행사는 갈수록 성황을 이룬다. 정보 공유와 협업, 제휴 등을 통해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네트워킹 행사의 참가자 60%가 스타트업 회사며, 그 밖에 기존 여행사, 지자체, 공사 등의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타트업 기업들이 마냥 앞길이 창창한 것은 아니다. 우선 여행업 등록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소규모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충분한 자본력이 없기 때문에 여행업 등록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또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높다는 창업 시장의 불문율도 있듯, 규모의 경제 앞에 무너지기 일쑤다. 작은 콘텐츠에 집중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콘텐츠가 단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베끼고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은 스타트업 회사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차용된 경우도 다수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 대표는 “공신력 있는 업체가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그대로 옮겨 쓰고, 작은 차이점을 들어 다른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위협적인 부분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인수 제안을 하는 경우는 오히려 신사적인 편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독자적인 콘텐츠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와 대형 여행사의 문어발식 시장 확장을 견제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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