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친구가 이 밴드의 음악은 “하나의 세상이야”라는 말과 함께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뮤직비디오를 공유해 줬다. 고요하고 숭고했다. 평화롭고 따뜻했다. 심연에서 아지랑이가 꼬물대는 듯 했고, 따뜻한 공기를 품은 안개가 저 멀리서 밀려오는 듯 먹먹함도 밀려왔다. 시규어 로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나는 몽환적인 음악과, 그에 부합하는 영상들을 보며 그들의 출신성분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아이슬란드 사람이다. 그 춥고 척박한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이렇게 따뜻한 음악을 만들다니 의외다. 

이름만 들어도 옷깃을 여미게 되는 아이슬란드는 인구 34만명의 작은 섬나라다. 국토의 70%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불모지로, 12% 가량은 빙하로 덮여 있으며, 약 150여 개의 활화산이 요동친다. 6월 중순 부터 9월 초 사이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서 고작 1,516km 떨어진 거리에 그린란드가 있는데, 역시나 이름만 들어서는 녹음이 무성할 것 같은 그린란드가 더 춥고 척박하다. 위도 상으로는 아이슬란드 보다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서쪽해안은 북극에서 내려오는 그린란드 한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후 조건 상 섬의 99%가 사람이 살수 없는 얼음 땅이다. 이름만 들으면 아이슬란드는 얼음왕국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섬 이름과는 달리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견딜만한 추위에, 여름엔 꽃도 핀다.

아이슬란드는 거리 자체도 멀지만 느낌도 멀다. 직항은 물론 없고, 물가는 유럽 최고 수준이라 여행지로 그리 인기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꽃보다 청춘>의 촬영지로 소개된 이후, 인기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인들의 조상은 874년 노르웨이인(바이킹)들이다.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원주민이 있었으나 노르웨이에서 노르딕인들이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건너왔을 때 그들은 스스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원주민들은 ‘은둔족(Hidden People)’이라고 불리는 수도승들이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곧 떠날 것이라고 여긴단다. 

시규어 로스 멤버들의 얼굴만 봐도 시크하고 무관심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행복하고 친절하다. 최근 몇 해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 등 국제기구가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줄곧 최상위에 랭크됐다. 행복도 조사에서도 10명 중 3명은 “왜 행복한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단다.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들에게는 비슷한 체취가 느껴진다. 쓸쓸하고 무심한듯 하지만, 따뜻함과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일렉트로니카의 여왕 비욕(Bj?k), 영화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삽입곡인 더티 포즈(Dirty Paws)를 부른 오브 몬스터스 앤 멘(Of monsters and men)도 아이슬란드 출신이다. 생수 이름이기도 한 게이시르(Geysir)를 부른 캐스커(Casker)도 이곳 출신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이기도 했다. 촬영지는 수도 레이캬비크의 스카프타페들 국립공원의 얼음지대로, 고원, 녹지대, 주상절리, 폭포, 빙하가 한데 공존하는 신비로운 곳이다. 

<꽃보다 청춘>에 캐스팅 된 멤버는 조정석, 정우, 정상훈이었다. 이들은 단박 스타가 아니라 무명생활을 버티고 꾸준히 활동하면서 오랜 기간 커리어를 쌓는 노력 끝에 주목을 받게 된 사람들이라 청춘의 진정한 의미와 잘 맞아 간택된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시규어 로스’ 음악의 특이한 점은 호프란디시(Hopelandish: 희망어)라는 그들만의 언어로 노래한다는 것이다. 시규어 로스는 호프란디시로 ‘승리의 장미’라는 뜻이다. 희망어는 문법이나 뜻을 가진 언어가 아니라 음악의 분위기에 맞게 의미 없는 음절들을 배열한 것이다.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 언어다. 

이들이 나고 자란 아이슬란드는 춥고 척박한 곳이지만 ‘태초의 지구이자 마지막 지구’로 묘사될 만큼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원석같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뜻하지 않게 모든 사람이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희망과 박애를 담은 음악이 퍼져 나왔다. 오로라는 명분일 뿐, 이것이 꽃보다 청춘의 배경이 아이슬란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모든 젊음이 그러하듯이. 
 
박재아
사모아관광청 한국사무소 대표 daisypark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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