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협은 강을 사이하여 바위 벼랑이 높이 솟아 두 문처럼 보이고 하늘과 물이 온통 돌뿐이다. 수염 긴 원숭이들이 살고 있고 용이 서린 듯한 물속 굴도 저 높은 곳에 보이니 그 벼랑이 높으며 물 또한 그 위에서 흘러내린다. 때는 겨울에 접어드니, 해를 보기가 더욱 어렵게 되리라.
-두보의 시 ‘구당양애’
 
장강삼협 최고의 절경인 구당협. 이곳의 경관은 10위안 지폐의 뒷면에도 새겨져 있다
장강삼협 크루즈의 마지막에는 세계 최대의 댐인 삼협댐이 기다리고 있다
 
리버 크루즈, 우습게 보지 말지어다
 
중국 서부지역의 대도시 충칭의 밤은 화려했다. 그 눈부신 불빛들을 뚫고 배가 떠났다. 배는 물을 밀어내며 칠흑 같은 어둠으로 나아간다. 사방을 둘러봐도 멀리 물안개만 자욱하고, 점점이 띄워놓은 파란 불빛들이 이따금씩 출렁이며 배가 가야할 길을 알려줄 뿐이다. 1만2,000톤의 ‘양쯔골드7’호는 미동도 없이 숨을 죽인 채 그렇게 3박4일 여정의 항해를 시작했다.

양자강,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 강은 이름이 많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양쯔지앙(場子江)’이라지만, 실상 중국인들은 이 강을 ‘창지앙(長江)’, 우리 식 발음으로는 ‘장강’이라고 부른다.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해 대륙을 휘돌아 가로질러 상하이 앞바다로 흘러 나가는 이 강은 그 길이가 무려 6,300km에 달한다. 양쯔골드7호는 그중에서도 충칭부터 후베이성 이창까지 약 640km 구간을 이동하게 된다.

양쯔골드7호는 1만2,000톤 급에 해당하는 크루즈선으로 수용인원이 500명에 달하며 내부에 상주하는 크루들만 200여 명이다. 내부에는 각 상점부터 일반 식당, VIP식당과 각종 오락시설들이 구비돼 있다. 아이부터 노년의 어른까지 온 가족이 즐기기 좋은 여행시설이다. 
 
장강의 진주, 석보채
 
 
기항지마다 펼쳐지는 볼거리들
 
새벽 5시 50분. 모닝콜이 울렸다. 발코니로 나가보니 어둠 속에서도 밤안개가 자욱했다. 이쪽 지역은 1년 365일 중에 햇살을 볼 수 있는 날이 80일에 불과하다. 그만큼 볕이 귀한 동네다. 크루즈의 일정은 대체로 오전 관광과 오후 관광으로 나뉜다. 어둠을 뒤로 밀어내며 달려온 배가 기항지에 머리를 대면 육지 관광을 시작한다. 첫 번째 기항지는 펑두의 귀성이었다. 이곳은 중국의 도교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천상의 옥황상제부터 염라대왕이 있는 공간과 동·서 지옥의 풍경까지, 익숙하지만 낯설기도 한 세계가 펼쳐진다. 

펑두의 귀성이 고전미를 갖춘 테마파크와도 같았다면, 오후의 기항지였던 석보채는 물안개와 어우러져서 다소 정적인 풍경이 인상적인 관광지다. 이곳의 지형은 날카로운 벼랑과도 같다. 그 위에 층층이 나뉘어진 누각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벼랑의 끝에는 과거 사찰이 있었는데, 이 동네 주민들이 몰려드는 날이면 벼랑 위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사찰을 찾아 쉴 수 있도록 명나라의 관리 윤유가 공중누각을 지은 것이 지금의 석보채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세 개의 협곡
 
크루즈를 이용하면서 들르게 되는 기항지 중 백미는 역시 백제성이다. 장강 삼협 구간은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역사의 현장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바로 이곳 백제성이다. 이곳은 유비가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국지의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 되는 곳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가 있는 관광지는 길을 따라온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기 마련이다. 두보, 이백, 소동파와 같은 수많은 대문호들이 이곳을 찾아 시구절로 흔적을 남겼고, 마오쩌둥, 저우은라이, 장쩌민이 그들의 시를 자기 필체로 새겨두었다.

장강 삼협을 따라 흐르는 크루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감을 품게 되는 순간은 세 개의 협곡(三峽)을 맞이할 때다. 백제성의 끝자락 기문에서는 삼협의 첫 관문인 구당협이 마주 보인다. 이 경관은 중국을 대표할 만하다. 그 웅장함은 중국 인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0위안의 뒷면에도 새겨져 있다. 두보가 그의 시 ‘구당양애’에서 서술하듯 강의 양쪽으로 깎아지른 산들이 늘어서있다. 한낱 작은 배(1만 톤이 넘어가는 크루즈임에도 불구하고) 위에 선 사람을 압도하는 절경이다. 댐으로 인해 수심이 100m나 더 올라간 지금 돌아봐도 저토록 웅장할진데, 100m 아래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고개를 들어도 돌뿐이고, 물을 내려다봐도 돌뿐이라는 두보의 서술이 틀리지는 않았으리라.

구당협을 지나 오후 늦게 당도한 무협 역시 압도적인 위력을 풍긴다. 구당협과는 같은 듯 다른 풍채다. 저 멀리로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와중에 뱃머리 좌측, 깎아지른 벼랑 위로 신녀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안개가 심한 평소에는 보기 어렵다는 작은 바위다. 뿌옇게 흐려져 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사람이 벼랑 위에 서있는 듯, 멀어져 가는 우리를 배웅하는 듯 모습이 신비스럽다. 신녀봉은 악룡에게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내려온 신녀가 돌이 된 모습이라는 설화가 들린다.
 
거대한 댐에서 중국을 읽다
 
어느덧 3일째 되던 날은 몰려드는 잠을 쫓으며 밤 12시가 되길 기다려야 했다. 장강 삼협 크루즈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서다. 하루 160km씩 흘러내려온 배는 마침내 후베이성 이창 시에 닿았다. 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세계 최대 크기의 삼협댐이다. 이곳에서 배는 댐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다섯 개의 갑문을 통과해야 한다. 한참을 기다려 갑문 안으로 들어선 배는 우측 벽으로 배를 붙여 벽과 연결된 장치에 몸을 고정시킨다. 이윽고 “끼익”거리는 쉿소리를 쉼 없이 내지르며 배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갑문 안에 가둬둔 물을 빼면서 자연스럽게 배를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갑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여 분. 하지만 정작 물을 빼면서 배를 내리는 데는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장강 삼협 크루즈 여행은 선내에서 마지막 협곡인 서릉협을 곁에 끼고 만찬을 즐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장강을 따라 떠내려 오는 3박4일은 대륙의 역사를 훑어가는 느낌이다. 중국의 고대와 중세, 현대가 그 물줄기 곳곳에서 뒤엉키며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늘 중국 땅을 여행할 때는 그 문구를 절감하게 된다. 중국의 고대부터 현대사까지 역사의 단면들을 이해하는 만큼 이 여행은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쉬었다 가는 여행은 장강 삼협 구간에서 의미가 없다. 삼국지에 열광하는 사람일수록 이 푸른 강물은 더욱 각별해진다. 중국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들이 이 땅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뒷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보이기 마련이다. 장강 삼협에서 무엇을 볼 건인가, 이것은 결국 이 거대한 강을 찾아온 이의 몫이 된다.

마지막 기항지인 거대한 삼협댐은 물안개에 휩싸여 고요했다. 하지만 저 댐은 내년이 되면 품어왔던 물줄기를 쏟아내며 초당 몇 만 톤의 어마어마한 방류를 시작할 것이다. 방류를 앞두고 고요하게 숨을 고르는 저 모습이 마치 지난 몇 년간의 중국을 닮았다. 근 백여 년을 숨죽여오다 바야흐로 세계를 향해 용트림을 시작하는 중국. 긴 강물을 따라 온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그 모습을 마주하고 있었다.
 
양쯔골드 7호의 외관(사진 위 오른쪽 선박)과 화려한 내부 모습(사진 아래)
 
취재협조=베스트래블 
장강삼협 크루즈 글·사진=Travie writer 정태겸 kiza08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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