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떠납니다 … 남도여행

걱정했다. 하필 영광과 무안이라서. 아니나 다를까 여행지에 다다르니 
“여기에 오다니 전남 영광입니다”라는 몹쓸 아재개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남도의 음식을 맛보고 풍경을 담고 나면 이내 말장난도 
즐겁게 받아치게 된다. “그런 개그는 전남 무안하네요”

●하늘엔 영광, 땅에는 굴비
 
역시나 먹거리의 고장다웠다. 영광 법성포의 한정식집에서 시작한 여행은 풍성했다. 지역 대표음식인 굴비에 게장, 홍어삼합, 각종 밑반찬이 오르니 상에 공간이 부족해 매운탕을 뒷전으로 밀어둬야 할 지경이었다. ‘진짜배기 굴비’를 맛보여주겠다는 가이드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짭조름한 보리굴비부터 구수한 김치까지, 어디에 젓가락을 갖다 대어도 만족스러웠던 식탁에는 남도음식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후식으로 쥐어준 모싯잎송편으로 입가심을 하고 나면 ‘남도는 무조건 식후경’이라는 다짐을 절로 하게 된다.

서해바다 사이에 산을 끼고 있는 탓에 법성포의 여름은 무덥고, 겨울엔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다. 사람이 살기엔 힘들지만 굴비를 말리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특유의 건조 기술과 전통 염장 비법이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전해 내려와 지금의 ‘영광 법성포 굴비’라는 브랜드를 지켜왔다. 덕분에 법성포에는 굴비식당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상수동 카페거리처럼, 굴비거리가 따로 없다고 생각할 즈음 안내도를 발견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굴비길 중심부였다. 5.61km에 이르는 생태탐방로를 보고 있자니 법성포는 가히 ‘굴비의 성지’라 불릴 만했다.
 
 
●법성포의 시퀀스를 따라서
 
성지는 따로 있었다. 법성포는 그 이름 자체에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임을 내포한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인도 승려 마라난타를 가리킨다. 불교의 전래경로가 분명한 고구려나 신라와 달리, 백제의 불교 전파는 동국대학교의 학술고증을 통해 최근에서야 밝혀졌다. 명승 마라난타가 서기 384년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최초로 발을 디뎠다는 이곳은 관광명소로 개발돼 여행자들이 찾아들고 있다.

<알쓸신잡2>에서 유현준 교수가 영주 부석사를 두고 말했듯이,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로 가는 길목에도 일종의 시퀀스가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꼽힌 숲쟁이꽃동산이 그 시작점이다. 동산 초입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으로 만개한 꽃이 여행자를 반긴다. 굴비와 불상만을 기대하며 영광을 찾은 이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인 셈이다. 양쪽으로 펼쳐진 꽃동산과 영광 앞바다의 풍광을 눈에 담으며 여유롭게 언덕을 오르면, 금세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 이른다.

꽃동산 말미에 우거진 숲을 지나면 이색적인 모양의 탑원과 마주한다. 원불교 간다라 양식을 취한 백제불교의 흔적들은 조계종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불상을 보호하듯 구성된 탑원은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서 가장 멋스러운 볼거리다. 특히 유려한 형상의 불탑은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불상은 개성 있는 얼굴로 제각기 멋을 뽐내고 있다.

간다라 색채를 가득 머금은 불상들을 렌즈에 담고 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마치 강아지 인냥 다리에 제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고양이의 이름은 ‘백제’. 이곳의 명물이란다. 마땅히 주인이 없다는 해설사의 설명과 달리, 백제는 털이 뽀얗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왔다. 주변을 빙빙 돌던 놈은 눈도장을 다 찍었다는 듯 미련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를 배회하는 길고양이 백제라니, 법성포 사람들의 작명센스는 풍경만큼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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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전용언 기자 eo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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