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오봉산 자락, 한여름 녹음 속에  푸르른 동해 바다가 시원히 내다보이는  관음성지 낙산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불자도 아닌 이 어린 중생은 구제받을 수  있으려나. 나무아미타불…. 

의상대
의상대

 

보살 한 분이 위아래 옷 하나씩을 내민다. 세속의 옷은 가방 깊숙한 곳에 개켜 넣고 산사의 옷을 입는다. 어색하기는커녕 움직임이 자연스러우니 내심 신기하다. 하룻밤 기거할 방사에는 시침, 분침, 초침을 돌리느라 바쁜 벽시계를 빼곤 그다지 ‘있다’ 할 게 없다. 휴대전화는 진즉에 내 손을 떠나 사찰 어느 구석에서 숨을 죽였다. 신경 쓰이게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더욱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그 불안감을 견뎌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홍예문을 시작으로 사천왕문을 지나 앞마당에 7층 석탑이 서 있는 원통보전으로, 다시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라 이름 붙은 오솔길을 따라 해수관음상을 거쳐 관음전, 보타전 그리고 파도가 치닫는 의상대와 홍련암에 이르기까지 산등성이에 너르게 터를 잡은 낙산사를 한 바퀴 휘 걸었다. 보타전 한쪽 벽면, 한 손에 해골 쥔 승려 그림이 눈에 띈다. 그제야 낙산사와 의상대사, 의상대사와 원효대사 등 머릿속 낱알로 굴러다니던 정보들이 얼개를 짓기 시작한다. 이왕 걸음한 거 사찰의 이모저모를 머릿속에 넣어두면 좋겠다 싶었지만, 아니라도 상관은 없겠다. 템플스테이, 글자 그대로 사찰에 머물러 온 것뿐이니. 북소리가 들린다. 법고 소리다. 종종걸음으로 쫓아간다. 저녁 예불 시간이 된 것이다. 범종, 목어, 운판이 차례로 소리를 잇는다. 하늘과 땅, 물속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중생을 보듬어 해탈의 길로 이끄는 소리라 했다. 익숙지 않지만 싫지도 않았다. 서른세 번의 타종은 템플스테이를 찾아온 이들이 나누어 울렸다. 


타종이 끝나고 원통보전에서 바로 저녁 예불이 시작됐다. 스님 등 뒤로 다소곳이 앉았다. 스님이 허리를 숙이면 뒤따라 숙이고, 절을 하면 뒤따라 절하고, 불경도 웅얼웅얼 흉내를 낸다. 예불은 부처님의 삶을 되새기며 어리석은 중생들도 그 자비의 미소와 지혜롭고도 맑은 눈빛을 닮겠다는 수행을 의미한다는데 스님께서는 “사찰의 가장 큰 어르신인 부처님께 인사드리는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라고 부담을 덜어 주셨다. 서툴지만 괜찮다. 정성스레 인사를 드리면 된다. 


어찌 그리 잠이 오지 않던지. 결국에는 잠 못 들고 새벽 예불에 나섰다. 그것도 한 번 해봤다고 아침 문안인사는 제법 짧게 느껴졌다. 그런 나를 기다리는 것은 108배. 온갖 번뇌를 다스리게 한다는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이다. 108참회기도문을 한 구절씩 따라 읽으며 절 한 번 할 때마다 염주 알을 하나씩 실에 꿰었다. 열 배나 했나, 콧속으로 진한 땀 냄새가 들어왔다. 서른 배쯤 하니 기도문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더라. 절다운 절은 처음이니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싶지만 보통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108번 절을 하려면 힘들어 번뇌가 생길 틈이 없겠다 싶은데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했다. 결국엔 마음가짐이다. 


스님과 함께 산사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아침 해를 맞이하러 의상대로 향했다. 두 손 모으고 기다렸건만 제대로 된 일출 구경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단다. 해 머리가 수평선 위로 돋아 오르는 장관은 내 차지가 되지 않았다. 


아침은 스님들의 식사, 발우공양이다. 죽비 소리 따라 발우를 순서대로 펴고 스님이 일러준 순서대로 음식을 받는다. 제 그릇에 먹을 만큼 담아 말끔히 비운다. 한 번에 한 숟가락, 한 번에 한 젓가락 곱씹다 보면 밥 한 톨, 국 한 술에 절로 집중이 된다. 다 비운 그릇은 미리 받아놓은 청수물에 단무지를 수세미 삼아 닦아내고 그 물과 찌꺼기까지 마셔야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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