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를 둘러싸고 겹겹이 쌓인 지층은 세월의 흔적이었고, 밭을 매며 흥얼거리는 아지매들의 노랫소리는 현재에 충실한 삶의 모습이었다.  제주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을 걸었다. 

잘 관리된 페어웨이와 그린은 골퍼의 자부심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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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옆으로 마을 한 바퀴


걷기 좋은 계절이다. 제주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산과 바다는 물론 사계리·덕수리·화순리의 아름다운 돌담길과 80만년 역사를 품은 지질명소가 동행하는 길이다. 


사계리와 덕수리를 경유하는 A코스를 택했다. 용머리해안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마을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짭조름한 바닷가 바람이 불어온다. 설쿰바당. 눈 속에 생긴 구멍이라는 의미의 단어 ‘설혈’이 ‘설쿰’으로 변형된 것에 바다를 뜻하는 ‘바당’이 합쳐져 생긴 해안 이름이다. 눈이 쌓여도 바람 때문에 구멍이 생겨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설쿰바당을 지나 사계포구에 접어들었다. 저 멀리 빨간 등대와 형제섬이 보이고 십여 대 남짓의 고깃배가 포구에 정박해 있었다. 포구를 지나 눈에 띄는 것은 다른 해안가에서 볼 수 없었던 붉은색의 퇴적암층이다. 이는 약 3,500년경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파도에 깎여 나가 해안가 주변에 쌓인 것으로 ‘하모리층’이라고 말한다. 울긋불긋하고 울퉁불퉁한 지층 위에는 고운 모래가 쌓여 언덕을 이뤘다. 그렇게 걷다 보면 더 이상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구간이 나온다. 송악산의 용암이 분출된 후 화산재가 쌓이고 그 위를 걸어 다닌 사람들의 발자국 화석뿐만 아니라 사슴·새 등 동식물의 흔적도 함께 또렷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퇴적물이 쌓이고 쌓인 지층이 오랜 시간 동안 감추어 두다가 이제야 슬며시 꺼내 보인 옛 시간의 흔적이니 반드시 지켜 줘야만 할 것 같다.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길이 끝나면 A코스의 4분의1은 걸은 셈이다. 그 후로 만나게 되는 사계리 마을은 정겨운 시골길. 할망과 할아방들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함께 해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걷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시골의 모습이었다. 


단산, 강인한 남자의 모습 


사계리 마늘밭을 지나 대정향교 앞에 서면 선택의 순간과 마주한다. 왼쪽은 단산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은 걷기 쉬운 돌담길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많은 이들이 단산에 오르는 수고로움을 선택하는 이유는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산 중턱에 있는 단산 진지동굴도 들어가 보자. 일제가 구축해 놓은 군사시설로 단단한 암반 약 70m를 뚫고 병사가 쉴 수 있는 공간과 능선을 관통한 통로를 만들었다. 스산한 분위기와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동굴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느덧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은 사라지고 없다. 단산은 여느 산과는 달리 흙길보다 바위길이 더 많다. 때로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해 둔 밧줄을 잡고 올라서야 할 정도로 수직에 가까운 벼랑도 있다. 특히 동쪽의 암봉이 험한데, 칼날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칼날바위’ 혹은 ‘칼코쟁이’라고 부르며 산악인들의 암벽훈련 장소로도 입소문이 난 곳이다. 그러나 그 정상에 올라서면 산방산을 비롯해, 날이 좋으면 형제섬까지도 선명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시골의 모습은 그림과 같다. 제주의 오름이 대부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솟아있는 반면 단산의 모습은 거세고 단단한 것이 남성스럽다. 


가파른 단산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오른쪽 길로 가면 단축 코스로 약 1시간가량 일찍 도착점에 다다를 수 있지만 아기자기한 제주 돌담길을 포기할 순 없었다. 산방산 탄산온천을 지나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니 어느 순간부터 제주도 특유의 구멍이 송송 뚫린 돌을 쌓아 올린 돌담길이 계속된다. 


해안로 끝에는 용머리 해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산재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용머리해안의 지층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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