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동 대표
유경동 대표

호텔 내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의 출발은 언어다. ‘어떻게 말하고, 어떤 응답을 듣느냐’가 모두 말에서 출발한다. 가장 처리하기 힘든 고객 불만의 상당수는 고객과 직원 간에 오간 말의 미묘한 느낌에서 발생한다. 불만이 접수되었으나 고객의 말을 들어보면 고객이 맞는 것 같고, 직원의 설명을 듣노라면 직원의 입장과 대응에 수긍이 가는 경우는 역시 '말'이 가진 속성이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호텔 휘트니스 센터의 사우나에 방문한 한 고객은 리셉션 직원에게 사우나 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물었다. 이에 호텔 직원은 “고객님 여기는 찜질방이 아닙니다. 식사는 외부에서 하셔야 합니다”라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고객은 “당신 찜질방만 다녔군요. 여긴 호텔이랍니다” 라는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얘기해야 했을까? 여럿이 앉아 각자의 서비스 응대 문구를 제안해 봤지만 중론은 우선 “당신의 희망사항을 해결해 주지 못해 몹시 미안하다”는 의사 표현이 필요했다라고 모아졌다. 


3세 정도의 아이와 젊은 부부는 큰 마음 먹고 5성급 호텔 뷔페식당을 찾았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직원에게 “애가 우유만 마시는데 음료 메뉴에는 우유가 없을까요?”라고 문의했다. 직원은 역시 정중하게 저녁 메뉴에는 우유가 없음을 알리고 자리를 떴다. 아이가 우유를 달라며 떼를 쓰자 조용히 지켜보던 매니저는 직원을 불러 아래층 로비라운지에 부탁해 우유 한 컵을 가져와 제공해 드리라고 요청한다. 우유를 제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배인은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직원에게 요청한다. 그리고 지배인은 아이에게 눈을 마주치며 “꼬마 고객님 필요하신 걸 빨리 준비하지 못해 미안해요”라고 얘기한다. 지배인은 조용히 물러났고 아이의 부모님은 감동했으며 직원은 한 수 배웠다. 어떻게 말하느냐는 정답이 없다. 언어에는 개인의 성향과 감정상태가 반영되기 때문에 그 개인의 언어는 함부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서비스의 언어는 개인의 언어가 아니다. 상황에 대한 훈련과 호텔 브랜드의 철학을 기반으로 직원의 고운 감수성과 결합되어 고객에게 전달되는 상품이다. 호텔 내 언어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호텔 내의 언어를 상황마다 동일한 문구를 사용하는 기계적 반응으로 착각하는 호텔들도 많이 있다. 그 언어가 아무리 멋진 문구여도 고객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전달하려는 문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호텔이 가진 서비스 지향점이 느껴지는 세련된 서비스 언어에 고객은 신뢰감을 얻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 내 언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호텔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직원의 언어는 분명 관리되고 성장시켜야 할 호텔 서비스의 최전방 무기이다.


직원의 언어는 호텔이 구축한 Service Identity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호텔이 올해의 비전과 미션, 달성해야 할 목표에는 많은 슬로건을 만들어내고 활용하고 있지만 호텔이 지향하는 서비스 정신은 언어로 준비해 놓지 못했다. 세계적인 체인호텔들은 그나마 통일된 서비스 수준을 각 국가에서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점검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독립 브랜드 호텔들은 이 부분이 미비하다. 호텔 브랜드의 오랜 고민을 통해 논리적 체계를 갖춘 Service Identity는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합의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직원들이 쏟아낸 많은 말들을 합의해 더 좋은 언어로 선택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타운 홀 미팅이다. 그 미팅에서 어린이도 고객이라고 칭하면 존대한다는 직원의 언어가 합의되고, 유리컵과 빨대를 기본적으로 제공한다는 서비스 행동의 합의를 직원 스스로 찾아내고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호텔은 모두의 힘을 합쳐 훌륭한 호텔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명품 호텔이 보여주는 서비스의 끝판왕은 의식(Ritual)이다. 직원의 언어가 발전해 호텔의 합의된 서비스가 되고, 그 서비스가 전통이 돼 나타나는 것이 그 호텔만의 특징인 Ritual이다. 어렵지 않다.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시작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직원의 언어로 시작해 서비스 의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은 호텔이라는 공간에 고객들이 가진 기대에 부응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멋진 직원들의 언어가 호텔의 공간을 메우고, 그것들에 감탄하는 고객들이 이어져야 한국의 호텔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유경동
(주)루밍허브 대표 kdyoo@roomingh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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