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박사
IT Travel 칼럼니스트

얼마 전 친구와 요즘 젊은 층에게 매우 인기 있다는 와인바에 다녀왔다. 안에 들어서니 정말 소문대로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왠지 오지 못할 곳에 발을 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소주나 기껏해야 맥주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던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라 와인잔을 기울이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곧 메뉴판을 보고나서 이곳이 왜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와인을 병이 아닌 잔으로 팔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두 가지 정해진 하우스 와인이 아닌 매우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잔으로 주문할 수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병으로 시키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유명한 고가의 와인들도 잔으로 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와인 종류를 경험해 볼 수 있고, 공급자 역시 시장을 넓혀 더 많은 수요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취하려 술을 마시던 내 젊은 시절과 달리 술을 마시는 것 역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을 잘 담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이 아닌 잔으로 나뉜 와인뿐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현대의 많은 상품들이 점차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는 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소위 디지털 시대라는 것이 시작되면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었고 <트리플 레볼루션의 시대가 온다, 앤드류 맥아 외>라는 책에서는 이를 ‘원자의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음악 CD를 예로 들었는데, 과거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곡을 듣기 위해 음반 전체를 사야했다. 하지만 MP3의 발전과 함께 이제 음반이 아닌 곡 단위로 판매가 가능해졌다. 이런 음원은 온라인으로 유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CD 제작과 운송 등에 드는 물리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다. 빠르고 무한한 네트워크 확장성을 바탕으로 온라인 음원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음원 유통 회사들은 개별 음원을 판매하거나 월 정액제 혹은 정량제와 같은 다양한 멤버쉽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플랫폼을 진화시키고 있다.


이 같은 음반에서 온라인 음원시장으로의 변화와 비슷한 흐름은 항공권 판매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항공권을 구매한다는 것은 마치 음악 CD를 사는 것과 같다. 한 장의 CD에 내가 원하는 혹은 원하지 않는 노래가 모두 수록되었던 것처럼 항공권에도 수하물, 기내식, 지정좌석 등 모든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온라인 시대의 도래와 LCC의 출현 및 이들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음반과도 같았던 기존 항공권의 정의를 음원과 같은 것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항공권의 의미는 점점 한 좌석에 앉을 수 있는 권리로 한정되며 그 외 수하물, 기내식 등의 부대 서비스는 필요에 의해 선택 가능한 별도 상품으로 쪼개지고 있다. 항공권에도 원자의 경제학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이런 변화의 바람은 어느 산업도 피해가기는 어렵다. IATA NDC의 ONE Order프로그램은 EMD까지 포함하여 FSC의 묶음 상품을 판매 가능토록 운영하는 등 이미 우리 여행업계에서도 쪼개지고 세분화되는 항공 상품 판매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혹시 모른다. 언제가 항공권 판매 플랫폼들이 스포티파이나 멜론처럼 월정액제 항공권을 판매하게 될 런지도.
 

양박사
IT Travel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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