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롬 근처의 스테가스테인 전망대에서 연인이 일몰의 햇살 속에서사진을 찍고 있다
플롬 근처의 스테가스테인 전망대에서 연인이 일몰의 햇살 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가는 곳마다 피오르(Fjord)가 파고들었고 
산은 피오르를 품어 더 높았다. 
노르웨이의 피오르와 산은 극명한 대조로서 조화를 이뤘다. 
노르웨이 피오르와 산 여행 이야기다. 

 

●피오르의 땅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피오르(Fjord)의 땅이다. 빙하가 쓸려 내려가면서 대지를 깎아 생긴 협곡에 바닷물이 들어차 만들어진 좁고 기다란 만. 200만 년 전부터 빙하로 뒤덮이고 침식과 침수의 과정을 밟아 탄생했으니 인간의 시계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녹아 있다. 세계 최장 피오르도 노르웨이에 있다. 길이 204km의 송네 피오르(Sognefjord)다. 깊은 곳은 수심이 1,300m에 달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길고 깊다. 피오르의 물빛이 그렇게 아득하고 서늘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노르웨이 서부 해안선이 들쭉날쭉 불규칙한 톱날 모습으로 늘어지며, 캐나다 다음 가는 해안선 길이를 뽐내게 된 것도 다 빙하와 피오르 덕분이다. 노르웨이의 해안도시 치고 피오르와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고, 피오르 치고 아기자기한 마을을 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노르웨이 여행은 곧 피오르 여행을 의미한다. 

피오르 크루즈 선내에있는 트롤 인형
피오르 크루즈 선내에 있는 트롤 인형

서부 해안도시 올레순(Alesund)은 피오르 여행의 전초기지다. 피오르를 오가는 크루즈선과 한껏 들뜬 여행객들로 올레순의 크루즈 터미널은 항상 북적인다. ‘맛보기 피오르 여행’이라고나 할까. 올레순에서 1시간 정도의 항해면 닿는 요룬드 피오르(Hjorundfjord) 여행에 올랐다. 매끈하게 생긴 크루즈 선은 수면 위를 맵시 있게 질주했다. 4월초, 겨울의 끝자락 봄의 초입에 만난 요룬드 피오르 양 옆으로 하얀 잔설을 인 설산이 호위하듯 묵직했다. 빙하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인지라 수면과 맞닿은 산은 가파르고 날카롭게 위로 솟구쳤다. 내륙 안쪽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피오르의 폭은 좁아지고 더 구불거리기 마련이다. 요룬드 피오르는 제법 넓고 반듯한 걸 보니, 바다 쪽과 가까운 피오르 하류여서 인가 보다. 투박한 웅장함이랄까, 얼굴을 때리는 칼바람을 참아내며 뱃머리에 서서 한참을 감상했다. 크루즈가 멈춘 곳은 요룬드 피오르의 끝자락이자 동시에 시작점이기도 한 어느 산자락 마을. 피오르의 깊숙한 품속마다 이렇게 작은 마을이 안겨 있다. 크루즈 선에서 뿜어져 나온 여행객들이 피오르 마을 곳곳을 탐험했다. 때 묻지 않은 정갈함이 가득했다.

외르네스빙옌 전망대에 서면예이랑에르 피오르와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외르네스빙옌 전망대에 서면예이랑에르 피오르와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장엄하게 혹은 몽환적으로


올레순을 기점으로 한 피오르 여행의 하이라이트 목적지는 예이랑에르 피오르(Geirangerfjord)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답고, 또 그만큼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송네 피오르와 함께 노르웨이 4대 피오르로 꼽히기도 한다. 지도로 보면 ‘창처럼 내륙으로 깊이 파고들었다’는 말뜻에 걸맞게 뾰족한 창끝을 육지 깊은 곳까지 들이밀고 있다. 그 창끝이 닿은 곳에 예이랑에르 마을이 앉아 있다. 여행하기 좋은 6~8월이면 작은 마을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예이랑에르로 향했다. 올레순에서 육로와 수로를 번갈아 탔다. 피오르 물줄기가 도로 허리를 끊어 자동차가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때면, 커다란 페리선이 입을 벌려 차를 싣고 건너편으로 날랐다. 버스를 통째로 삼키는 페리는 그 자체로도 볼거리였다. 그마저도 불가능한 지점에 다다르면 아예 차를 버리고 크루즈 선으로 옮겨 탔다. 예이랑에르 피오르의 명물로 꼽히는 ‘7자매 폭포’가 반기고 웅장한 대자연이 시시각각 새로운 절경으로 맞았다. 피오르 줄기가 방향을 틀고 굽이돌 때면 산과 절벽이 중첩되면서 비경을 자아냈다. 선미에 서서 보면, 크루즈선이 뿜어내는 하얀 포말과 함께 풍경이 아득해지며 아련한 감성을 자극했다. 누군들 평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순항이다. 그 평온함은 예이랑에르 마을까지 이어졌다. 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한 아기자기한 마을, 피오르와 함께 나이를 먹은 유서 깊은 호텔들도 마을의 호젓함을 더했다. 급격한 이미지 변신은 외르네스빙옌(Ørnesvingen) 전망대에서 이뤄졌다. 스위치백(Switchback) 철로처럼 가파른 산등성이 사면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 끝자락이다. 오를수록 풍경의 아찔함이 커졌다. 전망대에 서니, 대지의 품 깊숙이 파고든 피오르가 장엄했다.    

구드방엔 바이킹 마을
구드방엔 바이킹 마을

외르네스빙옌 전망대의 풍경이 장엄했다면, 스테가스테인(Stegastein) 전망대의 풍경은 몽환적이었다. 작은 피오르 마을인 플롬(Flam) 언저리에 있는 전망대다. 허공을 향해 뻗은 전망대 목조다리는 끝부분에 이르러 폭포수처럼 아래로 유려하게 흘러내리고, 그 뒤로 피오르가 아득했다. 마침 일몰의 햇살이 역광으로 쌓이며 피오르 위에 신비로운 빛깔로 산란했다. 희붐하게 까마득한 게 그 끝을 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로엔 스카이리프트 승강장 앞으로 펼쳐진 호수 위로 설산이 내려앉았다
로엔 스카이리프트 승강장 앞으로 펼쳐진 호수 위로 설산이 내려앉았다

●피오르가 머금은 마을들

 

플롬은 세계 최장이자 노르웨이 4대 피오르로 꼽히는 송네 피오르 여행의 관문이다. 송네 피오르의 지류인 에울란 피오르(Aurlandsfjord)의 안쪽에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프레트하임 호텔(Fretheim Hotel)을 비롯해 철도박물관과 쇼핑센터 등 마을의 매력을 키우는 명물들이 많다. 송네 피오르 대신 그 지류인 내뢰위 피오르(Nærøyfjord)를 목적지로 정했다. 2005년 예이랑에르 피오르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피오르다. 세계자연유산에 대한 예의인지, 이 구간 운항은 노르웨이 최초의 100% 전기 크루즈선인 ‘피오르의 미래(Future of the Fjord)’호가 맡았다. 그래서인지 소음도 진동도 어렴풋했다. 피오르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기여하겠군. 전기 크루즈선은 호평 받을 만 했다. 플롬에서 에울란 피오르를 거쳐 왼쪽으로 틀면 내뢰위 피오르가 시작된다. 좁고 구불구불한 그 피오르의 끝 구드방엔(Gudvangen)에 도착하니 바이킹의 후예가 맞았다. 바이킹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마을이다. 북극 바다와 피오르를 휘젓고 다녔을 바이킹들은 그렇게 바이킹 마을을 재현해 놓고 관광객의 시선을 휘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역시 송네 피오르의 지류인 피엘란 피오르(Fjærlandfjord)는 피오르 창조의 주역인 빙하를 볼 수 있어 인기다. 육상 도로도 잘 닦여 있어 자동차로 찾았다. 이곳 명소인 빙하박물관(Fjærland Glacier Museum) 옥상 전망대에 서니 저 멀리 요스테달 빙하(Jostedalsbreen)가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면적 487㎢로 유럽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빙하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아쉬움을 다독인 것은 빙하박물관이었다. 빙하의 생성부터 소멸까지, 영향과 작용까지 두루두루 체험할 수 있다. 실외에 있는 매머드 조형물도 인기였다. 빙하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멸종한 생명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빙하가 만들어낸 피오르 덕분에 다시 살아난 듯 했다.        

2 해발 1,011m의 호벤산을 썰매로 질주하는 짜릿함은 크다
해발 1,011m의 호벤산을 썰매로 질주하는 짜릿함은 크다

 

●피오르로 더 아름다운 산


피오르의 대척점은 산이다. 피오르와 산의 조화는 대조에서 비롯된다. 대지에서 솟은 산은 움푹 깎인 피오르를 품고, 피오르는 낮음으로써 산을 높인다. 둘은 서로를 더 깊게 또 높게 만든다. 피오르 여행이 자연스레 산 여행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노르웨이의 산은 가벼운 트레킹부터 도전적인 등반까지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스키도 빼놓을 수 없다. 알프스 산맥의 스키리조트에 비할 규모는 아니지만 노르웨이의 스키리조트는 다른 차원의 매력으로 알프스 스키와 경쟁한다. 자연에 보다 가까운 슬로프와 북적대지 않는 호젓함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름 스키도 즐길 수 있으니 스키 마니아라면 혹할 수밖에 없다. 


올레순에서 예이랑에르 피오르를 향해 가는 도중 들렀던 스트란다 피엘레트(Strandafjellet) 스키센터는 봄으로 향해 가는 계절이 무색하게 스키어들로 제법 붐볐다. 노르웨이에서도 유명한 스키리조트다웠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오르니 저 멀리 한쪽으로는 피오르가 흐르고 또 다른 쪽으로는 커다란 호수가 다소곳했다. 나머지 공간을 채우는 것은 겹겹이 층을 이루며 펼쳐지는 산과 산맥, 그리고 새하얀 눈이었다. 스키를 탈 것도 아니면서 정상에 오르는 이들이 꽤나 있는지, 누군가 전망 좋은 자리에 새빨간 의자를 앉혀 놓았다. 백과 적의 선명한 대비에 홀려 너도나도 앉기를 경쟁했다. 뮈르크다렌(Myrkdalen) 스키리조트에서는 경치 감상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플롬과 자동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거대한 스키리조트다. 스키와 보드 대신 부채 모양의 깔판을 깔고앚아 활강했지만 짜릿함은 손색이 없었다. 대야에 일행을 싣고 ‘인간 컬링’ 게임을 할 때는 스릴감마저 감돌았다. 그러면서 다들 다짐하기를, 다음에는 꼭 스키를 타고 말겠어!  

 
노르드 피오르(Nordfjord) 지역의 산악미는 2017년 5월 새로 생긴 로엔 스카이리프트(Loen Skylift) 덕분에 한껏 부풀었다. 해발 1,011m의 호벤 산(Mt. Hoven) 정상까지 5분이면 오르는 케이블카다. 승강장은 알렉산드라 호텔(Alexandra Hotel) 바로 옆에 있는데, 그 바로 앞 호수 위로 설산의 반영이 내려앉으니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마터면 경치에 빠져 케이블카를 놓칠 뻔 했을 정도로! 호벤 산 정상에 오르니 노르드 피오르 지역의 풍광이 호쾌하게 펼쳐졌고, 조금 전까지 발길을 붙들었던 호수도 색다른 감흥으로 아른거렸다. 정상 레스토랑은 그 모든 풍광과 감흥을 오롯이 머금고 있으니 이곳에서의 식사는 차라리 의무에 가깝다. 스노우슈즈를 신고 자박자박 새하얀 눈길을 걸어 높은 곳으로 올랐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눈썰매(Sledge)가 기다렸다는 투로 조르륵 나타났다. 언뜻 내려다보기에는 별 것 아닌 내리막 눈길, 막상 썰매를 움직이니 가속도가 짜릿했다. 절로 터지는 탄성, 비명, 웃음…. 자신감이 붙은 이는 더 높은 언덕으로 썰매를 끌고 올랐는데, 차마 그 속도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이들은 평지에서 썰매 끌어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플롬 산악열차를 타면 노르웨이 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플롬 산악열차를 타면 노르웨이 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산악열차도 있다. 플롬과 뮈르달(Myrdal) 구간을 운행하는 플롬 철도다. 20km 정도의 산악 구간을 1시간 정도 느릿하게 뚫고 지났다. 산부터 피오르, 고원평야까지 두루두루 차창 밖으로 스쳤다. 플롬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송네 피오르든 내뢰위 피오르든 그곳에서 뻗어나간 피오르로 여행을 잇고, 뮈르달 하차 여행객들은 다시 연계 열차를 타고 베르겐(Bergen) 같은 또 다른 피오로 도시로 향했다. 그렇게 여행은 이어졌다. 여행은 그런 것이니까!


▶Travel Info

교통 및 여정  
한국과 노르웨이를 잇는 직항 항공편은 없다. 이스탄불 등의 경유지를 거쳐 오슬로나 베르겐에 닿을 수 있다. 이번 여정은 터키항공(TK)의 인천-이스탄불-오슬로, 베르겐-이스탄불-인천 구간을 이용했다. 국내선은 노르웨지안항공(DY)을 이용했다. 시즌에 맞춰 인천-오슬로 직항 전세기가 운영되는데 이번 여름에는 대한항공이 6월14일부터 8월9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총 9차례 전세기를 운항한다.


화폐 및 물가
노르웨이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아 독자 화폐인 노르웨이 크로네(NOK)를 사용한다. 1크로네는 약 134원 정도다. 최근 들어 원화 대비 약세여서 여행객은 그만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노르웨이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취재협조=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02-777-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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