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과 동해 바다가 서로 품듯이 만났다.  남과 북, 분단과 상처, 여전히 사무치는 감정…. 
눈앞의 광경은 의심할 여지없이 또렷했지만  아득한 정서적 거리감 탓에 볼수록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가깝구나! 고성에서 새삼 깨달았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는 한반도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는 한반도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춘천, 가장 가까운 청춘의 이름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이자 가장 동쪽에 있는 전망대이니 출발지가 어디이든 대개 가장 멀기 마련이다. 고성 통일전망대.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로 반듯하게 자른 38선하고도 그 위 북쪽으로 88km나 더 올라간 동해 바닷가에 앉아 있다. 휴전선까지의 거리라야 고작 3.8km, 빠른 걸음이면 한 시간이면 족할 거리다. 그야말로 북쪽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여느 통일전망대들처럼 삼엄하거나 삭막하지는 않다. 북녘을 향해 카메라 셔터 한 번 마음대로 누를 수 없는 삼엄함, 낡은 건물과 황량한 산야뿐인 저 너머의 삭막함이 이곳에는 없다. 대신 꽤 넓은 전망대 공간을 제 맘껏 거닐 수 있는 자유로움과 금강산과 동해가 빚어내는 천혜의 절경이 반긴다. 그렇다. 이곳은 분단의 현장이기에 앞서 한반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조망할 수 있는 여행지다. 서울 집에서 가장 먼 통일전망대지만 두 번째 여행에 나섰던 이유다. 아무 주저 없이!


초행길도 아닌데 하마터면 출입신고소를 지나칠 뻔 했다. 민간인 통제구역인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출입신고를 해야 한다. 도로 가에 커다란 안내문과 표지판이 노려보고 있으니 놓칠 일은 거의 없을 법도 한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많아서 안내문 크기가 그렇게 커진 것도 같다. 통일전망대에 닿기 전 10km 정도나 떨어져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마침 저 앞에서 차 한 대가 되돌아 들어갔다. 십중팔구 군 검문에서 퇴짜를 맞았거나 뒤늦게 알아챈 거다. 간단하게 인적사항을 적어 제출하고 입장료(성인 3,000원)를 내니 출입신고 완료! 군 검문소는 코앞이다. 이게 뭐라고, 죄진 것도 없는데 앳된 군인에게 한없이 선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른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쫄깃한 긴장감…. 


긴장감은 호기심으로 변했다. 저게 뭐지? 지난 번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높고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 전망대 있던 산등성이 고지에 우뚝했다. 알파벳 D자를 닮은, 멀리서 봐도 두드러진 외양…. 전망대를 새로 지었나? 전망대 가는 비탈길을 성큼성큼 올랐다. 옛 고성통일전망대 옆에 ‘고성통일전망타워’가 새로 생겼다. 2018년 12월말이니 손색없는 ‘신상’이다. 발길은 새것보다 옛것에 끌렸다. 오래돼 누추하지만 세월을 머금은 친숙함의 힘이다. 옛 여행의 추억도 그곳에 고스란했으니 당연했다.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금강산도 지척이다. 정면으로 금강산 구선봉이 우뚝하고 동해 바다 위로 해금강이 우아하다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금강산도 지척이다. 정면으로 금강산 구선봉이 우뚝하고 동해 바다 위로 해금강이 우아하다

●북으로 바투 파고드니 금강산


1984년 문을 열었으니 30년이 훌쩍 넘었다. 연간 100만 명 이상 찾는다니 누적 관람객 수도 3,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2층짜리 소박한 건물이지만 대형 통일미륵불과 성모마리아상, 통일 기원 범종, 전진십자철탑, 351고지전투전적비, 전차와 비행기 전시물 등이 이미 오래 전부터 동행한 덕분에 외롭지는 않다. 다만 이토록 오래됐다는 게 한반도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말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성은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갈라진 도(강원도)에 속한 분단 군이라는 아픔을 지녔다. 그깟 선 하나가 둘로 갈랐다. 1953년 휴전 당시 남쪽 고성 인구의 대부분은 이북5도 출신의 피난민이었고 1980년까지도 인구의 77%가 실향민이었다고 한다. 실향민들이 틈 날 때마다 들러 실향의 아픔을 달래던 곳이 바로 이곳 통일전망대다.


야외 전망 포인트에 섰다. 망향의 감정이 켜켜이 쌓였을 자리,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막힘없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수채화 같았다. 수채화 왼쪽 아래 부분에서 시작된 도로와 철길은 우상향 대각선으로 달렸고, 오른쪽 아래에서는 양편으로 너른 해변과 푸른 바다를 낀 해안선이 북으로 올랐다. 도로와 철길과 해안선은 얼마 못 가 한 지점에서 만났는데, 거기에서 수평선과 지평선은 갈라지고 또 합쳐졌다. 금강산과 동해 바다가 서로를 안았다. 진짜지만 가짜 같은 풍경…. 다들 탄성을 지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손자인 것 같은 젊은이의 부축을 받은 채 백발의 어르신이 미동조차 없이 하염없이 북녘을 바라보았다.


마침 날이 맑았다. 이런 날이면 금강산 1만2,000봉 중 으뜸 봉우리들인 신선대며 옥녀봉이며 채하봉 등을 볼 수 있다던데, 흐릿해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대신 금강산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바다 위 금강’ 해금강이 꼿꼿하고 우아한 자태로 달랬다. 저게 동해북부선 철도길이구나, 아 저 도로가 금강산 육로관광 버스가 줄지어 달렸던 길이구나…. 500원짜리 동전을 전망 망원경 투입구에 넣고 이리저리 톺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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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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