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동 대표
유경동 대표

지리적 관계로 인해 지금도, 앞으로도 일본은 호텔뿐만 아니라 한국 관광산업의 중요한 거점 시장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을 방문하는 전체 외국인 중 일본인은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압도적인 규모다. 
당연히 한국 호텔 업계도 일본인 고객을 중심으로 객실을 운영했고 오랜 기간 일본은 한국 호텔의 젖줄과 같았다.

호텔과 마찬가지로 카지노, 술집, 관광지는 일본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오랜 기간 일본인 관광객은 이웃나라 한국에서 절대적인 지위와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호텔은 일본인 고객의 특성에 맞춰 세밀한 서비스를 자연스레 준비했다. 신규호텔 건축에 있어 규모와 수준에 상관없이 무조건 욕조를 집어넣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 공식적인 서비스 외에 일본인들이 원하는 은밀한 서비스는 두둑한 팁 덕택에 활발했다. 


2000년대 들어 의미 있는 변화가 눈에 띈다. 일본의 버블은 꺼져갔고, 한국의 경제상황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관광산업 역시 중국인 관광객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방한 일본인 시장도 변화가 시작됐다. 바로 일본인 관광객의 성별 변화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업무용 입국자를 포함한 방한 일본인은 남성 중심이었다. 일본인 남성 유입요소가 많이 사라진 2003년조차 방한 일본인의 성별통계는 남성 111만, 여성 63만으로 거의 2배 가까이 남성이 많았다. 그런 성별비가 2008년을 기점으로 뒤집어 지더니 성별 역전현상은 공고히 이어지고 2018년에는 남성 100만, 여성 180만이라는 의미 있는 숫자를 기록했다. 역전현상의 계기는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후유노 소나타(겨울연가)’다. 아무도 예측 못한 한국 드라마의 일본 여심 흔들기가 지금의 한류 붐의 시작점이 됐고, 한국의 음악, 화장품, 식재료가 일본에 자리 잡는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냈다.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한국 판타지가 일본인 여성 고객들의 한국 러시를 이끌어냈다. 한국드라마 관련 여행상품이 셀 수 없이 나왔고, 수많은 일본 여성들이 서울로, 용평으로, 그리고 남이섬으로 드라마의 흔적을 찾아 여행했다. 불과 20년도 안 된 일이다. 우리는 그 당시 호텔의 중요자산인 충성고객을 확보할 기회를 맞았다. 한국이 좋아서 오는 감성기반의 충성 고객이다. 최근 각 호텔과 여행사를 돌며 그 당시의 일본여성 고객에 대한 상세내용 조사를 시도했으나 아무런 데이터도 찾을 수 없었다. 드라마 투어를 주도했던 상당수의 일본 인바운드 여행사는 흔적 없이 사라지거나 축소됐고 호텔의 고객정보도 그저 여행사의 객실 사용실적으로만 존재했다.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 어떤 연령층의 여성고객들이 한국에 열광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맥을 짚어보려던 시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듣게 된 오랜 친분의 일본 할머니의 회고담은 씁쓸했다. “소녀처럼 한국  배우에 빠져 팬미팅 보러 1년에 몇 차례씩 행복한 마음으로 한국에 가곤 했지.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를 보는 한국 사람들의 눈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저 여자들은 뭔가 하는 비웃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 뒤로는 개인여행으로만 가끔 갔었지.” 돌이켜보니 무신경했다. 한국 배우를 좋아해주고, 한국까지 방문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대했어야 했다. 그때는 그저 그들에게 관광 옵션을 팔려 했고 뉴스조차 한류 팬 아줌마들을 일본을 정복한 한국 드라마의 전리품처럼 여겼다. 돌이켜보니 그들은 FIT로 전환된 지금의 치열한 호텔 업계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2000년대 호텔을 채워주던 한류 팬 일본 아주머니들을 어떻게 응대하고 그 고객 군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해서는 호텔들마다 문제의식을 갖고 돌아봐야 한다. 여전히 한국 호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최악이다. 일본의 경제도발로 한국인의 일본 여행이 급감한 상황은 통쾌하게도 일본 지역사회에 치명타를 안겨주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은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 구축이다. 방송, 서적, 신문 모두 한국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20~30대 중심으로 일본 젊은 여성들이 꾸준히 한국을 찾고 있다. 오래 전 한류를 사랑한 아주머니들의 딸들이 악화일로의 한일관계에 아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들은 지금 당장 미약해보여도 소중한 미래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십 수 년 전보다 훨씬 깊어지고 세련된 호텔들의  고객전략이 기대된다.

 

글 유경동
(주)루밍허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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