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수
오형수

며칠 전 제주도에서 감귤이 배달되었다. 주문한 기억이 없는 감귤이다. 감귤 상자에 적힌 과수원 이름 ‘당신의 과수원’을 보고서야 기억이 났다. ‘맞다. 감귤 구독 신청!’ 봄에 구독 신청한 귤이 수확 철이 되어 온 것이다. 이 과수원에서 정기 배송형 감귤 구독권을 구입하면 11월 숙성 황금향, 12월 고당도 온주밀감, 1월 레드향, 2월 한라봉, 3월 천혜향을 잡지처럼 받아 볼 수 있다. 이렇게 물건을 직접 사는 대신 소비자가 기업에 회원 가입을 하고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면 정기적으로 물건을 배송 받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모델인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새로운 소비 형태로 자리 잡았다. 구독경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산물이다. 2010년대 초반 저성장기 미국에서 화장품과 면도날 같은 생활 소모품을 소포장으로 낮은 가격에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인기를 끌었다. 구독경제는 초기에는 작은 유통 회사나 스타트업이 주류였다면 지금은 대기업까지 뛰어들면서 연간 600조원 규모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신문이나 우유 배달에 국한됐던 ‘구독’ 개념이 콘텐츠·교통·주거·음식·의류·소매업에 이르는 최첨단 사업 모델이 된 것이다. 구독경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최소 7.99달러를 내면 영화와 TV프로그램 같은 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나 연회비 119달러를 내고 프라임 회원에 가입하면 주문 후 2시간 이내 배송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아마존 프라임’ 같이 장소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무제한형’, ‘당신의 과수원’, ‘위클리셔츠’, ‘밀리의서재’처럼 원하는 날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정기 배송형’, 기아자동차의 ‘플렉스 프리미엄’, ‘오픈갤러리’의 미술 작품 구독처럼 고가의 제품을 이용 후 반납하는 ‘렌탈형’이 있다.


구독경제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와 배경은 다음과 같다. 구독경제는 혼자 사는 20~30대를 주요 타킷으로 성장했다. 이제 소비주도권은 20~40대 밀레니얼 세대로 이동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저성장 시대를 살면서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고 구독한다는 특징을 가진 이들은 기존 세대의 소비중심경제에서 벗어나 ‘경험’을 ‘구독’이라는 방식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한다. 소비 주도권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가 목돈을 들여 상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매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구독서비스를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에 구독경제는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다. 구독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는 비용을 절감하고 기업은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서로 윈-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독경제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변화에 둔감하고 방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산업과 기업은 모두가 실패하기 마련이다. 다른 산업에 비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구독경제를 여행업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ANA항공(NH) 산하 여행사 ANA세일즈가 ‘빈 손 여행’을 내세우며 여행용품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리 여행업 역시 여행상품구독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하고 신상품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와 접근이 필요하다. 여행업이 구독경제를 실시하고 있는 산업들과 다르다는 주장은 핑계와 변명에 불과하다. 다른 산업과 다르지만 어떻게 하면 도입 가능할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여행산업 역시 소비 주도권이 20~40대 밀레니얼 세대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여행에서도 소유보다는 시기에 맞게 필요한 것을 잘 찾아 쓰고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행서비스와 여행상품을 혁신해 이들이 여행상품과 서비스를 구독하게 함으로써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매출과 수익을 예측 및 관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여행업계가 적극적으로 구독경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선호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 맞춤 서비스와 신상품 개발이 필요하다. 구독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세일즈포스 티엔 추오 주오라(Zuora) 대표는 “구독경제는 이미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산업부문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판매 모델을 고수하는 기업은 뒤처질 것이고, 구독경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기업은 앞서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여전히 구독경제를 멀리서 지켜보며 주저하고 있는 여행업에 전하는 간단하고 명확한 충고다.

 

글 오형수 K-TravelAcademy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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