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에 어려움 토로하고 중재도 요청
업계 차원서 여행업·서비스 비용 인식 개선
재난시 대처할 취소수수료 기준 확립 필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여행업계가 마비됐다. 중국, 홍콩, 마카오 중화권뿐만 아니라 동남아, 유럽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행취소가 속출하고 있다. 취소수수료 면제와 관련해 여행사와 소비자 간의 갈등도 극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의 역할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빗발치고 있다. <편집자주> 

 

●“여행사가 봉이냐” 인식개선 절실


여행사들의 곡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늘고 중국 외 지역 감염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소비자들의 취소 요청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행사들도 동남아 지역 취소수수료까지 전액 면제해달라는 고객과의 마찰로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행사의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는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2월4일 ‘여행업 알선수수료 및 여행취소수수료 법적 공론화 요청’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2016년부터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부부라고 밝힌 청원자는 ‘사스, 일본 불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등 외부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여행업계의 어려운 실정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청원 배경을 설명했다. 주요 청원 내용은 ‘여행업 인식 개선’, ‘질병, 천재지변 등 발생 시 취소수수료 기준 법제화’, ‘여행사 수익 법제화’ 등이었다. 이 청원자는 ‘현재 바이러스 사태로 여행사는 전화비도 나오지 않는 등 남는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언어 폭력을 당해가며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며, 각종 취소수수료를 여행사가 다 챙기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등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여행사 업무와 여행상품 예약 및 이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소규모 A여행사 대표는 “여행사는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중간에서 관리해주는 알선업인데 소비자는 이러한 것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불필요한 다툼이 종종 발생한다”며 “업계 차원에서 여행사의 역할을 정확히 알리는 등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이어 “여행사 직원도 서비스업 종사자이기 때문에 보호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취소수수료 기준정립 필요성 대두


이번 사태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것은 단연 동남아 항공권 및 패키지여행 상품에 대한 취소수수료다. 여행사들은 비중화권 지역에 대해서도 취소수수료를 면제해달라는 소비자들의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민청원에서도 이런 비정상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원자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여행사들이 피해를 보는 실정이고, 효율성 없는 업무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외교부, 보건복지부, 관광청 등 유관기관이 모여서 질병, 천재지변 등의 상황 발생 시 여행취소 관련 수수료 기준에 대한 법제화가 논의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제안은 여행업계에서도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B여행사 관계자는 “단지 불안함만으로 취소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해주는 것은 여행사 입장에서 쉽지 않다”며 “고객들이 ‘감염되면 책임질 것이냐’, ‘자택 격리되면 여행사가 생활비 지원해주냐’ 등으로 윽박지르는데 여행사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주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행사는 현재 의지할 곳이 전혀 없을 정도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여행사, 협회, 정부 등이 힘을 합쳐 다방면에서 여행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논의를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한편, 일부 여행사들은 동남아 상품 예약소비자에게 취소수수료 면제 대신 여행일정을 변경해주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여행업계 전체적인 통일성은 없어 한계가 명확하다. C여행사 관계자는 지난 5일 “확진자와 격리자 등이 중국 규모만큼 확산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동남아 여행 및 항공권에 대한 취소수수료 면제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소규모 판매점 여행사의 권익보호를 위한 취소수수료 개정 요구’라는 청원도 지난 4일 올라왔다. 현재처럼 공정거래위원회 여행표준약관에 따라 여행계약이 해제될 경우, 홀세일러의 대리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판매여행사는 그동안의 영업 손실을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만큼, 여행약관에 ‘판매점 여행사 서비스 수수료’를 별도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행사가 제공하는 각종 업무에 대한 수수료 수익을 명문화하자는 제안으로도 볼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여행업무취급수수료(TASF)의 법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모두 무위로 그쳤기 때문이다. 2018년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GTR)가 폐지되고 주거래여행사 제도를 도입할 때도 ‘정부 부처별 주거래여행사 입찰 시 과도한 저가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업무 수수료를 일정 범위 내로 정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조달청은 담합의 여지가 있다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사들의 저가 경쟁이 갈수록 심해진다”며 “업계 차원에서 건강한 시장 형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똑같은 바이러스 아닌가요?


소비자들도 국민청원을 활용해 중국, 홍콩, 마카오, 타이완 외 지역에 대한 취소수수료 면제를 주장했다. 5일 현재 국적항공사 8곳의 항공권 변경 및 환불 수수료, 위약금 면제 공지사항을 보면 중국 전 노선과 홍콩은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면제 지역에 해당하지만 마카오와 타이완 노선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소비자들의 국민청원은 ‘중화권 지역 뿐만 아니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있는 모든 지역에 대해 전액 환불 및 수수료 면제를 요청'하는 게 대다수다. 정부가 직접 나서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특히 지난 4일 태국 여행을 다녀온 40대 여성이 16번째 확진자가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러한 요구는 더 커지고 있다. 한 국민청원에서는 여행사를 비판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청원자는 “불가항력적인 바이러스 확산으로 임박한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인데 매출 하락을 우려하는 여행사의 불합리한 대응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며 “여행사에서 ‘중국 이외 지역에 대해 정부의 지침이 없다’, ‘중국 외 지역에서 수수료 면제는 없다’ 등으로 대응하면서 ‘수수료 아까우면 그냥 가라'는 식으로 소비자를 몰아넣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행사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항공권 환불수수료의 경우 항공사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다”며 “패키지 상품에 대해서도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취소수수료 면제는 기준부터 정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사스가 발생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행시장 규모가 커졌고, 여행상품 판매 채널도 많아져 전염병, 자연재해 등이 발생할 경우 환불 및 취소 수수료 기준에 대한 논의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호텔 예약은 국가별, 업체별로 매우 상이한 상황이다. 중국과 홍콩 등은 많은 곳에서 취소수수료 없이 환불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의 경우 업체별로 기준이 다르다. 한 업체의 경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확대되는 시기에 맞춰 하루 이틀 정도는 취소수수료 없이 예약 취소를 해줬지만, 취소가 빗발치자 취소수수료 부과로 방침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성균 기자 sag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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