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힐링프로젝트]곶, 오름, 올레 그리고 바당 3일

돌문화공원에서는 시대별, 생활사별로 다양한 돌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손길이 깃든 돌은 투박하기도, 정겹기도 하다
돌문화공원에서는 시대별, 생활사별로 다양한 돌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손길이 깃든 돌은 투박하기도, 정겹기도 하다

돌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돌은 다 똑같지 않을까? 길을 걷다가도 가끔 발에 차이는 게 돌이라서, 투박한 생김새가 어쩐지 지나치게 평범한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였을까. 1년에 한 번은 꼭 제주를 찾으면서도 돌문화공원은 한 번도 와볼 생각을 않았다. 하지만 돌문화공원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곳, 만만히 봤다가 크기에 압도되는 곳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들렀다면 각오를 단단히 하시라. 잠깐 둘러봐도 어느새 2시간은 지나있을 테니.


돌문화공원은 우리 삶에 자리한 돌의 면면에 대해 펼쳐낸 사전이다. 제주의 형성 과정과 제주민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돌 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총 3코스가 100만평 규모로 조성돼있어 모두 둘러보려면 꼬박 3시간은 걸린다. 동굴과 주춧돌 등 주거부터 시작해 무덤 앞에 세우는 동자석,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방사탑까지 돌은 우리의 생활과 의식 곳곳에 깃들어있다. 우리 삶 속에 돌이 이렇게 많았던가, 이다지도 중요했던가 돌아보게 된다.


이 넓은 공원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은 바닷속의 흙을 삽으로 떠서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지역별로 다른 설화가 전해지는데, 한라산 영실에서는 오백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한라산에 살던 설문대할망은 아들을 위해 죽을 끓이다 가마솥에 빠지게 되고, 그 죽을 먹은 아들들이 그대로 오백장군 바위가 돼 버렸다는 얘기다. 공간이 들려주는 슬프고도, 애절한 스토리텔링에 빠져든다. 

김영갑 작가가 폐교를 직접 리모델링해서 만든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서는 그의 제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김영갑 작가가 폐교를 직접 리모델링해서 만든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서는 그의 제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슬슬 사람이 그리워진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두 곳을 찾았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은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제주에 정착해 평생을 살았다고.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며 밥 먹을 돈으로 필름을 샀다고 하니, 그가 담아낸 제주는 오롯이 그의 평생이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사진에 열중하던 그는 어느 날 루게릭 병을 진단받는다. 이후 그는 폐교를 직접 리모델링해 미술관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고 한다. 


갤러리는 작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다. 직접 현무암을 쌓아올린 담장은 소박하니 정겹다. 딱딱한 입장권 대신 오름 사진이 담긴 엽서를 받았다.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갤러리에 전시된 사진들을 통해 그의 시각에서 제주를 본다. 제주에 대한 애정을 담아 포착해 낸 순간들은 가히 인상적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관광객들은 보지 못할 순간들을 그는 직접 살면서, 매일 오름을 오르면서 담고 또 담았다. 오름, 안개, 바람, 하늘, 그가 선사하는 제주의 풍경에 평온함과 왠지 모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서귀포에 위치한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 거리는 그가 피난을 왔던 1년여의 시간을 기억하는 장소다. 미술관 입구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품 <황소>를 재현해놓은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인증숏을 남기기에도 좋다. 1층 전시실에서는 궁핍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 그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종이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못이나 송곳으로 은지화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은지화는 대부분 아이들을 모티브로 그려졌는데, 아이들이 물고기와 어울려 노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떨어져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에게 남긴 구구절절한 연서는 또 어찌나 마음을 흔들어 놓던지. 누군가의 애정을 바라보는 일은 때로는 이토록 벅찬 일임을. 

 

글·사진 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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