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홍콩 전경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홍콩 전경

도심 속에 우뚝 솟은 빅토리아 피크는 홍콩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다.
작지만 이름처럼 큰 산, 홍콩 빅토리아 피크는 늘 그 자리에서 따뜻하게 사람을 품어준다.

빅토리아 피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
빅토리아 피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

●피크가 거기 있으니까 


집안의 분위기는 뷰(View)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홍콩에 사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바다 풍경(Sea View)을 선호하지만, 개인적으로 산이 보이는 뷰(Mountain View)를 훨씬 좋아한다. 안방 침대에 누우면 저 멀리 빅토리아 항구와 센트럴의 빌딩숲이 보이지만, 거실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완만한 곡선의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 산이 보인다. 고개를 조금 더 내밀어 올려보면 반달 모양의 피크 타워(Peak Tower)가 눈 안에 들어온다. 홍콩에서 이 집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서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서

산이 주는 안정감, 청록색이 주는 편안함. 창밖의 빅토리아 피크 덕분에 집은 푸근한 느낌이다. 나의 홍콩 생활에서 피크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매일 피크를 바라보며 아침을 시작하고, 8년 동안 꾸준히 시간이 날 때면 피크에 오른다. 영국 군인이자 등반가인 조지 말로리는 “왜 에베레스트를 계속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이 유명한 말은 내게도 해당이 된다. 누군가 “왜 피크를 오르는가?”라고 묻는다면 “피크가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하고 싶다. 피크는 내 생활의 일부분을 자리하고 있고, 나에게 앞산이고 뒷산이자 동산이다.

 

●미드레벨에서 피크를 오르는 두 가지 길


처음 피크를 오르던 날이 생각난다. 홍콩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피크는 산을 둘러싸고 출발선만 수십 개다. 집이 있는 미드레벨 지역에서 피크에 오르려면 올드 피크 로드(Old Peak Road)와 컨딕 로드(Conduit Road)에서 출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처음 선택한 출발지는 올드 피크 로드로, 쉬지 않고 걸으면 30분 만에 오를 수 있는 짧은 코스다. 문제는 심하게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 평지 하나 없이 30분 내내 오르막길이라 꽤 난이도가 있다. 당시 그리 체력이 좋지 않던 나는 처음 이 경사길을 오르던 날 과호흡으로 잠시 정신을 놓은 적이 있다. 그 때의 아찔하고 위험한 경험을 극복하고 곧 다시 도전해볼 계획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애정하는 출발선은 바로 컨딕 로드 끝자락과 연결되는 해톤 로드(Hatton Road)다. 입구에서 피크 정상까지의 거리가 3km 정도 되는 이 코스는 그 이름도 상쾌한 모닝 트레일(Morning Trail)로, 피크 트레일(Peak Trail)이라고도 불린다. 완만한 오름과 가파른 언덕, 그리고 평지가 반복되는 이 코스는 피크 정상까지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특히 출발선에 위치한 코트월 소방서(Kotewall Fire Station)에서 소방관의 훈련 소리를 들으며 활기차고 건강한 기운을 얻고는 한다. 

빅토리아 피크 타워
빅토리아 피크 타워

●힐링 모멘트, 모닝 트레일에서의 하이킹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피크를 오르기 위해 모닝 트레일을 찾는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그냥’ 찾아갔다. 운동이 필요했고 가까이 산이 있었고 그래서 그냥 걸었다. 처음 몇 년은 기계처럼 피크를 오르고 내리며 큰 감흥도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무의식 중에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본능적으로 자연을 찾아가고 있었다.

 

작고 오밀조밀한 홍콩에서의 생활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종종 답답함을 불러오기도 했다. 공간이 주는 갑갑함일 수도, 삶의 부대낌에서 오는 힘듦일 수도, 오랜 해외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니 그럴 때 마다 나는 피크를 올랐다. 세상에, 피크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어! 그때부터 피크는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고, 모닝 트레일을 걷는 시간이 힐링 모멘트였다. 

피크에 오르는 길
피크에 오르는 길

●코스모폴리탄 홍콩, 다양한 인종과 만나다


운동화 하나로 충분한 모닝 트레일은 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만인의 코스다. 이곳에는 막 걸음마를 뗀 아이들부터 지팡이를 든 노부부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심지어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사람들만큼이나 많다. 경사도 적당해서 걷는 사람부터 조깅을 하는 사람, 심지어 뒤로 걷는 사람까지, 모닝 트레일은 일상을 느낄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 바로 뷰 포인트다. 모닝 트레일을 오르는 중간 중간 살짝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빅토리아 항구와 홍콩 시티 뷰가 펼쳐진다. 수년 째 살고 있는 곳이지만 홍콩의 시티 뷰는 가끔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코스모폴리탄 홍콩’의 명성답게 다양한 인종이 모인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국의 여느 뒷산에 올라온 것처럼 익숙하다가도 광동어, 만다린어, 프랑스어, 영어, 타갈로그어, 아랍어 등 지나치는 사람들의 여러 언어를 듣고 있으면 “아, 여기가 홍콩이었지” 생각이 든다. 

빅토리아 피크 인근카페
빅토리아 피크 인근카페

●히든 플레이스를 찾는 즐거움


빅토리아 피크는 요즘 들어 더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코로나 시대에도 자연은 언제나 조건 없이 반겨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피크를 더 자주 오르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걷는 것이 숨차기도 하지만, 한국의 늦가을처럼 맑고 청량한 홍콩의 겨울은 산에 오르기에 최적기다. 피크 곳곳에 숨어있는 히든 플레이스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로 피크를 가끔 방문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든 하이 웨스트(High West)와 빅토리아 피크 가든(Victoria Peak Garden)이다.

 

하이 웨스트에 오르면 케네디 타운, 포풀람부터 라마섬에 이르기까지 홍콩섬 일대와 빅토리아 항구부터 구룡반도까지 홍콩의 전경을 360도로 구경할 수 있다. 1800년대 영국 총독의 여름 별장 자리인 빅토리아 피크 가든에서는 헤리티지 건물과 아름다운 조경이 펼쳐진다. 빅토리아 피크는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산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 많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늘 두 팔 벌려 변함없이 반기는 빅토리아 피크. 하루는 익숙한 길을 걷고, 또 하루는 숨겨진 길을 찾아보며 오늘도 천천히 올라가야겠다. 

 

글=김윤선 사진=Rory Chu Tin Hang, 홍콩관광청 에디터=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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