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지 기자
      이은지 기자

표준은 힘이 있다. 통용된 기준은 상호작용을 가능케 할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의 필수품인 여권을 떠올려 봐도 그렇다. 누구나 당연하게 이용하고 있지만 원활한 인적교류를 위한 치열한 국제적 합의의 산물이다. 코로나 시대, 여행은 또 하나의 ‘표준’ 문제와 맞닥뜨렸다. 

올해 초부터 백신여권 도입 움직임은 활발했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선봉에 나섰고, 인적교류의 핵심축인 항공산업도 개발 및 시범 운영에 박차를 가했다. EU의 '그린패스', 중국의 '국제여행건강증명',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트래블 패스' 등 디지털 형태로 잇따라 등장했으며, 일본은 지난 7월부터 백신접종증명서 서면 교부에 나섰다. 국가별로 형태가 상이한 탓에 오히려 유럽 등의 국가들은 내부 방역 조치에 백신여권을 이용하는 모양새다. 백신여권 소지자에 한해 음식점, 영화관, 스포츠 경기장을 제한 없이 이용하도록 하는 조치다.

국제적 표준이 없다 보니 실제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국가간 합의를 거쳐야 한다. NHK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 백신여권을 소지한 일본인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 입국할 경우 격리 및 코로나19 검사를 면제하도록 합의했으며, 대상 국가 확대를 위해 각국과 협의 중인 단계다. 백신 ‘여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적용 범위는 한정적인 셈이다. 

관건은 호환성과 신뢰성이다. 백신여권에는 백신 종류, 접종 날짜 등을 포함한 백신 접종 이력이 기록돼있다. 의료기록은 개인정보이니만큼 민감한데다, 상대국의 의료기록 관리·통제 능력 등에 대한 신뢰 문제도 존재한다. 게다가 백신의 효력이 얼마나 지속될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유효기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국가별로 각기 다른 백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국제적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합의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면서 접종 완료자에게 자가격리를 면제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기관에서 발행한 서면 확인서만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백신여권이 진정한 ‘여권’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통일된 체계와 합의점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