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남미를 만나다
[현지취재]남미를 만나다
  • 여행신문
  • 승인 2000.05.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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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싣는 순서
Ⅰ. 잉카의 후예 페루
① 남미의 관문 리마
② 잉카문화의 중심 쿠스코
③ 불가사의한 공중도시 마추피추 上
④ 불가사의한 공중도시 마추피추 下

Ⅱ. 좋은 날씨·여자·와인의 나라 칠레
① 유럽풍의 차분한 도시 산티아고
② 칠레의 아카풀코 비냐 델 마르
③ 화산과 호수의 도시 푸에르토 몬트

Ⅲ. 한국 속 남미 중남미문화원

순수와 정열의 지구촌 반대편 남미
이제, 남미다!
한반도의 이웃 일본과 중국, 그리고 좀 더 나아가 동남아. 이어 대양주와 유럽, 북미를 돌아
이제 남미다. 우리에게 아직은 처녀지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남미. 순수와 정열과 태고
의 신비가 공존하는 지구 반대편의 땅이 어느새 우리의 발 밑에 성큼 다가와 있다.

과거와 오늘, 그 공존의 도시 리마
페루 리마의 호르헤 차베스 공항(Aeropuerto Joge Ghavez). 비행기에서 내리자 끈적끈적한
공기가 살에 착 감긴다. 이제 남미구나! 딱히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게 남미의 공기구나
하는 짧은 생각이 스쳐간다. 그렇게 우리의 첫 발을 먼저 반긴 것은 남미의 이색적인 풍광
도 스페인 문자도 아닌 페루의 공기였다.
풍부한 황금을 바탕으로 화려한 문명을 이룩했지만 그로 인해 멸망을 초래한 잉카제국. 그
숭엄한 제국으로의 초입에 페루의 수도 리마가 있다.

두 얼굴의 도시 리마
리마는 혼합의 도시다. 과거와 현재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침략자와 수성자의 문화가
엉켜 서로의 광채를 뽐낸다. 때로는 부조화인 듯 때로는 한 몸인 듯, 그렇게 새로운 ‘정반
합의 풍경’을 창출한다. 어떤 이는 “리마는 골동품에서 첨단제품에 이르기까지 1930년대
부터 2000년까지의 모든 것이 혼합되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그 중 리마를 크게 신·구시가지로 구분짓는 것은 산 마르틴 광장(Plaza de San Martin)이
다. 한 때 리마의 중심지였던 구시가지는 20세기 들어 개발된 신시가지에 화려한 영광의 자
리를 물려주고 있지만 아직도 금융과 증권, 법조의 중심지로서 그 영향력을 면면히 유지하
고 있다. 산 마르틴 광장의 한 가운데에는 우뚝 동상 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다름아
닌 남미 해방의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라우니온 거리(Jiron de la Union)를 통해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과 이어져 있다. 이 거리는 ‘한국판 명동’으로 약 1km에 이르는 길 주변에는 각
종 상가 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아르마스광장 부근에는 대통령궁, 시청 청사,
중앙우체국 등이 모여 관가를 이루고 있다. 식민지시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통령궁
은 잉카제국을 무너뜨렸던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거처하기도 했던 장소로 지
금은 매일 열리는 위병교대식으로 시티 투어 관광객들의 필수 견학코스로 자리잡았다. 아르
마스 광장에는 1650년에 건축된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분수와 대성당 등 주요 건축물도 함
께 자리한다.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 안치
캐톨릭의 영향은 페루에 많은 수의 성당 건축물을 남겼는데, 대통령궁 왼쪽에 위치한 바실
리아 성당도 그 중 하나다. 1535년 시공돼 남미 최초이자 최대의 성당으로 기록된 바실리아
성당은 세 번에 걸친 지진의 갖은 풍상을 겪고도 끄덕없이 버텨내 리마사람들이 자랑거리로
삼기도 한다.
이 성당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피사로의 미라가 안치돼 있다는 점이다. 그의 미라는 머
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다. 피사로의 일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심복의
손에 의해 끝이 났는데 그게 1546년의 일이다. 미라 옆에는 그의 고향에서 가져왔다는 한
줌의 흙이 보관돼 있다. 정복자의 수구초심을 달래주는 한 움큼의 흙이 성과 쇠, 흥과 망을
축으로 한 역사의 긴밀한 회전과 한 켠으로 허무함을 느끼게 해준다.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성당이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성당이다. 대통령궁에서 세
블럭 정도를 동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바로크 양식 건물인데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축물로 손꼽힌다. 특히 성당 전면의 돌조각이 특이한 데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들여온 것이
라고 한다.
이 성당의 지하에는 지하 4층 규모의 카타콤(Catacombs·지하묘지)이 있어 유명하다. 1788
년 만든 이 곳에는 성당건립에 기여한 사람들과 성직자 4만여명이 잠들어 있다. 유럽의 카
타콤이 억압받는 신도들의 피신처인 반면, 이곳은 일종의 영광스런 장소라 할 수 있다.

잉카제국의 흔적 황금박물관
식민지 시대 유적지들에 가려 잉카시대의 흔적들은 이제 쉬이 만나지지 않는다. 리마를 찾
은 사람들은 잉카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황금박물관을 찾는다. 리마시 교외의 조용한 주택
지 한구석에 짧지만 한없이 눈부시고 화려했던 잉카제국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역사와 고
고학에 심취했던 실업가 미겔 무히카 가요의 잉카문명에 대한 고집스런 애정과 숭배가 황금
박물관으로 집대성되어 잉카와 현세를 이어주고 있는 셈이다.
그 어느 곳보다 황금이 많아 엘도라도(Eldorado)로 불렸다는 잉카제국. 황금박물관에 들러보
니 풍요로웠던 잉카문명의 역사가 눈에 잡히는 듯 하다. 박물관은 1층의 무기전시실과 지하
의 황금전시실로 나눠져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금전시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한
다. 잉카의 황금유물은 기원전 4세기에서 2세기까지 번성했던 비쿠스문명에 뿌리를 두었으
며 그 후 차빈, 모체, 나스카, 와리, 치무를 거쳐 잉카문명기에 접어들어 만개했다.
잉카인들에게 있어 태양은 의심할 바 없는 신성한 숭앙의 대상이었고 황금은 바로 그런 태
양이 흘린 눈물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와 반지에서부터 왕관, 악기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황금제품. 비옷까지 금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고도의 연금술이 잉카제국에 존재했었
음을 간파하게 된다. 또 황금으로 정교한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있는 두개골 유골은 잉카시
대에 이미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있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잉카에게 있어 황금은 독이 되고 말았다. 풍부한 금은 유럽 정복자들의 구미를 자극
했고, 결국엔 2,500만명의 대제국이 불과 180여명의 정복자에 의해 무너지고 그 문명을 정복
자들에게 내주는 비극을 불러들였다.

◆페루, 잉카콜라 선풍적 인기
‘우린 노란 콜라가 더 좋아요’
페루는 전세계에서 몇 안되는 콜라 독립국이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무차별적인 공세 속
에서도 페루 고유의 잉카콜라가 굳건히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잉카콜
라의 점유율은 평균적으로 60% 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머지를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가 3대2의 비율로 차지하고 있다.
잉카콜라는 잉카제국의 황금을 상징하듯 노란색이다. 안데스에서 나는 여러 가지 과일을 혼
합해 만드는 데 코카콜라에 비해 덜 단 편이다. 어떻게 보면 착색료의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도심이건 외곽지역이건, 또는 고산지대 관광유적지이건 잉카콜라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잉카콜라의 강세는 맥도널드까지 파고들었다. 전세계 110개국 2만여개 점포를 가진 맥도널
드에서는 원래 코카콜라만 취급하지만 페루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바람에 유래없이 잉카콜
라를 판매하고 있다. 잉카콜라로 매출이 오른 맥도널드측은 다른 나라에 잉카콜라를 공급하
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82년 창업 초기부터 코카콜라만 공급하다 2년전 소비자들의 요구로 잉카콜라만 독점 취급하
기에 이른 페루 햄버거 체인점인 ‘BEMBOS’도 페루내 잉카콜라의 인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잉카콜라는 다른 나라로도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데 라틴 계열 주민이 60%를 차지하는
미국 마이애미의 경우, 잉카콜라를 본뜬 골드콜라가 출시돼 큰 인기를 모았으며 한국에서는
잉카콜라의 애국심 마케팅을 참고로 해 콜라독립815라는 브랜드가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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