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는 요즘 축제중이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축제는 다른 느낌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현재의 10월과 5월은 각 대학들이 축제로 분주한 달이지만 그 10월과 5월이
총성과 소요의 계절이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의 10월. 그해 가을축제의 첫날. 대통령이 안가에서 총 맞아 죽으면서 축제는 무산
되었었다. 그 다음해의 5월 중순. 전국은 또 소요에 휩싸였다. 돌과 깨뜨린 보도 블럭. 반대쪽에서 날아오는 최루탄.
어떤 경우 총탄이 발사되기도 하던 당시였다. 그 5월의 광주사태 이후 곧 전국의 모든 대학
의 문이 굳게 닫힌다. 무장한 군인들과 탱크. 5월 이후 전국의 캠퍼스는 몇 달 동안이나
병영처럼 점령되어졌다.
오직 힘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을 떡 주무르듯 좌지우지하던 때가 아니었던가. 바른 말을 외
치기 쉬운 대학을 잠재우는 것은 물론 한 개인의 운명이 권력을 쥔 자들의 손아귀에서 쉽게
결정이 나던 때였다.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 권력에 반대하
는, 빛나는 양심들을 왜곡시키려 온갖 음해공작을 다한다. 린치를 가하거나 암살을 도모하
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공작정치는 오히려 그 양심적인 인사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암흑과 같은 비굴
한 세상에서 더 밝은 빛을 내는 존재로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유신정권의 핵심 정적이었던 분. 그래서 일본체류 중 국내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어 깊은 바
다속 물고기 밥이 될 뻔하기도 했던 분. 광주 사태의 핵심주동자로 몰려 신 군부에 의해서
조차 죽임을 당할 뻔했던 분.
그 후로 2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인들이 세계평화의 기수로서 그 분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분의 노벨상 수상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탄이 난무하던 곳에 이제 아름다운 흰색
비둘기들이 나는 듯하다. 이 비둘기들은 급하지 않은 날개 짓으로 결국은 약속했던 길을 찾
아와 주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공교롭게도 그 노벨 평화상 수상 결정이 있던 날 오후. 전임 대통령은 한 대학에서 또 한번
의 곤혹을 겪었다. 강연 약속이 되어있던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강연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교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대학에서 학생들의 페인트세례로 봉변을 당한 그였다. 그는 현재 김정일 서울방문 반대와 관련된 갈등을 주도해 내고 있기도 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민주 투사. 또 일 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했거나, 하고 있는 두 사람. 그
러나 2000년을 보내는 두 사람의 입장과 감회는 너무나도 다를 것으로 짐작된다. 해피 엔
드로 가는 쪽은 결국, 쉽게 갈 수 있는 불의의 길과 타협하지 않고 일관되게 살아온 흔적을 보이는 경우라 하겠다.
경희대 관광학부 부교수 taehee@nms.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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