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을 중심으로한 매사추세츠주는 장대한 풍광이 볼만하다거나 해변과 리조트가 빼어난 휴양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역사가 있고, ‘미래’를 담보하는 치열한 지성이 살아 꿈틀거린다.

시간을 거슬러 케네디와 해후
퉁바리를 맞을 일이지만 다소 딱딱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매사추세츠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옵션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북쪽의 유서 깊은 해변도시 케이프 앤에서 골동품 상점들을 헤집고 다니거나 고래관광에 나서도 무방하고 우리네에 비하면 한없이 짧지만 그 나름대로 복잡다단한 미국 독립역사의 복판에 섰던 콩코드, 렉싱톤, 로웰시의 곳곳을 누벼도 그럴 듯하다.

테마로 만나는 매사추세츠
어디 그뿐인가? 매사추세츠 제1의 여름 휴양도시로 일컬어지는 케이프 카드의 500여마일 해안을 가슴에 품어도 괜찮고 보스턴에서 서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한 곳에 위치한 올드 스터브릿지 빌리지에서 170년전 전원생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뒤집어 써보는 것 또한 무난하다. 특히 케이프 카드 연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마타스 빈야드 섬과 낸터켓 섬에는 그 자체로 감상할 맛을 풍기는 미 상류 사회 저명인사들의 호화로운 별장들이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여름이면 마타스 빈야드 섬 별장에서 망중한을 즐기곤 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즐비한 보스턴 시내를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휘휘 걸어보는 것또한 나무랄 데 없는 낭만이다.
테마로 만나는 메사추세츠. 빙 돌렸지만 결국 테마를 잡자는 얘기다. 어느 곳엘 가도 유효한 이 법칙(?)은 메사추세츠에선 더욱 요긴한데, 그 중에서도 한 명의 전임 대통령과 미국 역사의 발원을 따라 잡아보자.
미국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카톨릭교도 대통령. 연설의 명수로 이미지 정치의 시조. 짱짱한 목소리로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보다 국민의 국가에 대한 봉사를 주창한 열혈남아. 바로 63년 11월22일 달라스에서 하비 오스왈드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대통령 재임 1,000일만에 유명을 달리한 영원한 미국의 연인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다. 매사추세츠에 가면 이 희대의 풍운아, 극적인 인생의 주인공, 풀리지 않는 음모이론의 진앙지 JFK를 만날 수 있다.

JFK를 찾아서
JFK의 생가는 보스톤 근교 부룩클린의 빌 스트리트에 자리하고 있다. 역사적 급물살 속에서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이의 생가치곤 다소 초라하다는 인상을 안고 건물 내부에 들어서니 수긋한 인상의 할머니가 일행을 반긴다. 테레사 V. 혼부룩(Terresa V. Hornbrook). 1909년에 지어지고 1917년 5월29일 케네디의 탄생을 지켜본 이 집에서 혼부룩 할머니는 올해로 15년째 방문객을 맞고 있다. 애정이 담뿍 담긴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케네디의 가계(家系)를 설명하고 간단한 비디오 클립을 보여주더니 2층으로 안내한다. 2층에는 케네디가 태어난 침대며, 식탁이며, 의자며 어린 케네디와 그의 형제들, 부모 조셉과 로즈의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유품들이 원형 그대로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다.
3월부터 11월까지만 문을 여는 이 생가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혼부룩 할머니는 전한다. 무료도 아닌데 말이다(입장료 성인기준 2달러, 16세 이하 무료). 굳이 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붓한 분위기의 케네디 생가와 얼마전 볼썽사납게 머리가 절단 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이 순간 교차편집되면서 괜시리 입맛이 씁쓸해진다. 생각은 한 움큼 더 뻗쳐 ‘우리 현실에서 DJ나 YS의 생가를 관광지화할 수 있을까? 사후에도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거나 퇴임 후 관록을 살려 국가에 이바지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겐 왜 없을까?’하는 데까지 이른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YS만큼 퇴임 후 독설을 퍼붓는 전직대통령도 없을게다. 거의 엽기적이다. 사족.

박물관과 별장, 기록과 사랑
‘테마 JFK’의 두 번째 장소는 JFK 기념 도서관 겸 박물관(The John F. Kennedy Library and Museum)이다.
도체스터 콜럼비아 포인트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이곳에 들어서면 일단 잘 정돈된 기록의 치밀함에 부러움이 앞선다. 전세계 약 3,600만 개인 독지가들의 헌금으로 지어졌다는 JFK 박물관에는 케네디의 생애, 그가 남긴 개인소장품, 희귀한 영화 필름 및 텔레비전 녹화 기록, 역사적 서류, 백악관 유품 및 케네디 앞으로 보내진 선물 등 인간 케네디와 대통령 케네디에 대한 모든 것이 전시돼 있다. 즉 ‘선거운동본부’ ‘케네디, 닉슨 정견 논쟁’ ‘백악관 복도’ ‘행정부 각료실’ ‘케네디 가족’ 등 주제에 따라 총 21개의 섹션별 전시관이 마련돼 있어 JFK를 한 눈에 꿰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언부언하건데, 암살로 불운하게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점을 감안하다라도 사랑받는 대통령, 그리고 그에 대한 세세한 기록이 집대성돼 있다는 건 우리 현실에 비쳐 부럽다. 쓸 데 없는 자괴감일까?
‘JFK 따라잡기’의 끝맺음은 매사추세츠가 아니라 이웃의 로드 아일랜드주에서 맞는다. 다음 호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에 가면 그 화려함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초거대 맨션들이 어깨를 겨룬다. 그리고 케네디가 그의 아내 재클린 비셋과 여름나기를 즐겼던 해머스미스 팜(Hammersmith Farm)도 한켠에 자리하는데, 불행히도 얼마 전 경매를 통해 개인 소유로 넘어가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먼발치서 지켜볼 뿐. 아내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별장을 선물했을 케네디의 순정과 재키와의 각별함도 이제 한 개인에게 귀속되는가 보다.

17세기 청교도를 만나다
매사추세츠는 최초의 북부 식민지이자 독립전쟁의 발상지. 청교도를 싣고 버지니아로 향할 예정이었던 메이플라워호가 폭풍에 표류되어 이 주의 플리머스항에 도착함으로써 개척의 역사는 시작됐다. 청교도들의 ‘법이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이른바 메이플라워 서약은 미국 최초의 자치헌법이 됐다.
이렇게 건설된 플리머스 식민지는 매운 한파와 부족한 식량, 창궐한 질병으로 가혹한 시련을 겪었지만 인디언에게 옥수수 경작법을 배우고 공동건물을 세우는 등 면면한 발전을 이뤘다. 이를 바탕으로 정착민들은 독립된 식민지로 인정받기 위해 영국왕으로부터 특허장을 받고자 했으나 1691년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강제 합병당하고 말았다.
지금도 플리머스에 가면 17세기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플리머스 농장(Plimoth Plantation)이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기 때문. 사람들의 옷차림은 물론이고 20여채에 달하는 집들도, 내부 장식도, 거친 억양도, 모두가 그때 그대로다. 그래서인지 이 곳은 인근 학교 학생들의 산교육장으로 애용된다. ‘미국의 민속촌’인 플리머스 농장을 둘러보고 나면 17세기식 식사가 기다리는데(물론 돈을 내야한다), 생선과 호박요리가 주메뉴. 우리 입맛엔 싱겁기 짝이 없지만 어쩌랴 이것도 문화체험인걸. 입은 깔끄러워도 잠시나마 개척자들의 담백함 속에 미각을 맡기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네들의 프런티어 정신이 살포시, 슬며시, 시나브로 젖어든다. 불굴의 전진!!
매사추세츠 글·사진=노중훈 기자 win@traveltimes.co.kr
취재협조=노스웨스트항공 02-66-8700
매사추세츠 주정부 관광청 한국사무소 02-733-3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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