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의 아침은 출근하는 사람들의 오토바이 소리로 시작된다. 채 동이 트기도 전에 일터를 향해 나서는 그들의 모습에서 장가계(長家界)와는 또다른 힘이 느껴진다.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한 해에만 13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은 저력의 도시, 그 저력의 원천에는 아침을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 사람의 힘이 느껴지는 도시

황비홍(黃飛鴻),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내내 즐거웠다. 포근한 바람,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들로 도시는 생기가 넘쳐 흘렀다. 뛰어난 무술과 따뜻한 인간미로 홍콩배우 이연걸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영화 덕분에 세계 각국에 든든한 팬층을 확보한 황비홍은 청나라말기 혼란의 도가니속 중국인들에게 정신적 지주였다.

쿵푸의 달인이며 의사이기도 했던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서교산(西橋山)에는 지난 1996년 ‘황비홍 사자춤, 쿵푸센터’가 세워졌다. 이곳에 들어서면 먼저 그의 좌상()을 만날 수 있는데 명성답게 굵직굵직한 얼굴선 등에서 호방하고 사내다운 기상이 물씬 묻어난다.

안으로 들어서면 방마다 그의 친인척 가계도와 단체 가족사진, 그가 입던 옷과 침대 진료기구와 수련을 위해 쓰였던 창 등이 마치 어제 일인냥 잘 보관돼 있다. 아마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뒷마당으로 가 가벼운 태극권으로 시작해 무술연습을 한 뒤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환자들을 맞이했으리라.

그러다가 불의의 현장으로 바람같이 달려가 예의 그 멋진 솜씨로 적들을 손 봐줬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방문객들을 위해 무술시범과 사자춤을 보여준단다. 황비홍의 후예답게 날렵하고 현란한 몸짓의 무술 시범이 끝나자 이번엔 그 유명한 사자춤.

중국내에는 여러풍의 사자춤이 있는데 이곳에서 공연되는 사자춤은 남방계쪽의 춤으로 여러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돼 공연하는 사자춤은 머리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섬세한 움직임과 얼굴에 나타나는 두려움, 망설임, 익살스러움 등이 놀랄만큼 생생하다. 게다가 높은 쇠말뚝과 쇠말뚝 사이를 오르내리는 아슬아슬함까지 두루두루 재미를 선사한다.

황비홍의 잔영을 끌어안고 우리가 찾은 곳은 영화 태평천국의 세트장 등이 들어서 있는 ‘남해중앙TV 영화촬영소’. 1998년 건립된 이곳은 청나라를 시대배경으로 하는 영화‘태평천국’을 위해 자금성 등이 거의 실물크기 그대로 지어져 있다.

그 규모가 무척 커 세트장과 세트장 사이를 걸어서 옮겨다니는 것이 힘겨울 정도. 마침 태평천국의 한 장면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공연이 한창이다. 그들 행동 하나하나에 자리를 빼곡히 채운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남해중앙TV 영화촬영소의 하이라이트는 삼국지(三國誌). 드넓은 모래운동장에 100여마리가 넘는 말과 무사들이 나와 유비 관우 장비가 여포를 무찌르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자욱한 연기와 먼지속에 내달리는 말발굽소리와 함성소리가 흡사 전쟁의 한가운데 와 있는 느낌을 준다. 운이 좋으면 유비나 관우 품에 안겨 모래판을 질주할 수도 있다.

불산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도자기인데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이 높다. 깊이 팬 주름과 흰 수염 등에서 연륜과 희노애락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얼굴의 노파상이라든가 신비한 미소를 간직한 선녀상등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곳 도자기가 그토록 유명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가격도 한화로 약1,000원 정도에서 몇 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품까지 다양하다.

이 도자기 문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 ‘조묘(組廟)’. 조묘는 원나라초에 파괴됐다가 명나라때 복원된 곳으로 명청 스타일을 함께 가지고 있어 동방예술궁전이라는 별칭으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건물 곳곳에 아기자기하고 오묘한 빛깔을 가진 도자기들이 아로 새겨져 있어 찾는 이들의 눈은 마냥 즐겁다. 경내에 울려 퍼지는 은은한 음악소리와 기분좋은 적막감이 이곳을 더욱 빛나게 한다.

조묘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중국의 특산물인 차(茶)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피부에 좋다는 말에 솔깃, 매력적인 향을 지닌 국화차를 샀다.국화차의 향기처럼 오래도록 이 곳 불산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시대의 영웅 황비홍, 실감나는 삼국지의 한 장면, 오묘한 빛깔의 도자기들 그리고 밝고 환한 사람들….

중국 불산 글·사진=박종란 기자 nanee@traveltimes.co.kr
협찬= 웨이투어 02-3455-1515

◆ 중국의 떠오르는 관광도시

“불산은 벌써 15년전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관광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가지 명제를 적절히 조화시킨 결과 이제는 중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깨끗한 도시이자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지요”.

불산관광여유국 원광운(院廣云) 국장은 불산을 이렇게 소개한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눈에도 정리정돈이 잘돼 있는 이 도시는 한국으로 치자면 계획도시인 창원과 그 느낌이 흡사하다.

중국 광동성 중남부에 자리잡은 불산은 면적 3,800㎡, 인구 312만명의 중소형 도시로 주로 동남아쪽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광주공항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교통의 요지로 지난 한 해에만 1억달러의 관광수입을 올렸으며 해마다 15%씩 관광객이 늘고 있는 추세다. 관광도시답게 4성급 ‘불산호텔’을 비롯, 머무를 만한 호텔들이 즐비하다.

불산이 더욱 즐거운 이유, 하나 더. 화려한 모양과 환상적 맛을 가진 음식들이 즐비하다는 것. 이 곳의 음식들은 제 아무리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선뜻 젓가락을 들게 할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나다. 관광과 도자기로 광동성 최고의 부를 쌓아가고 있는 불산. 이 곳은 분명 변화하는 중국, 그 중심에 있다.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