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7일자 C일보의 사설을 보면 「어글리 코리언」이란 제목으로 여행자들이 좀더 「교양있는 신사·숙녀가 되기위해 노력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89년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된 이후 지겹도록 듣는 이야기건만 「어글리 코리언」의 오명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 것을 보면 모두가 뾰족한 대책이 없는 모양이다.

문제는 C일보가 지적한 것처럼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킬 줄 몰라 어글리 코리안의 인상을 심고, 시간을 지키지 않아, 차례를 기다릴 줄 몰라, 큰소리로 마구 떠들어」얻는 것이다. 이 사설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행자 개개인이 교양있는 신사·숙녀가 되려고 노력하는 자세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결국 개개인의 인격에 호소해보는 것외에는 별다른 묘안이 없는 것일까. 이런식의 호소를 자주 반복하면 어느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역시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기에는 미흡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문제해결의 접근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평소에 느꼈던 것을 적어볼까 한다. 우선 단체여행이 개인여행에 비하여 여행지의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끌 확률이 높다고 보아 단체여행부터 시정책을 모색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조심해야 할 일은 단체 여행이 개인여행보다 더 귀찮고 번잡스런 일이 따르면 소비자들은 반드시 이를 피한다는 점이다.

C일보가 지적한 것은 「해외여행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이나 유익한 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장치가 없다」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장치」의 시행이 여행자들에게 또하나 귀찮고 성가신 규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규제를 좋아할 사람도 없지만 자유로운 여행에 규제를 부과하는 것은 정당화시키기도 어렵고 규제(장치)를 시행하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며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하느냐 하는 엉뚱한 문제가 튀어 나온다.

설사 출발전 몇시간에 걸친 「소양교육」과 같은 집체교육ㅇ 다소의 효과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류의 교양교육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계층에는 「여성 전용칸」을 도입한 지하철과 같이 반문명적이며 인격을 모독하는 조치라고 언성을 높일 것이 뻔하다. 결국 해결점은 단체여행을 판매하는 여행사, 좀더 구체적으로 그 회사의 인솔직원에게 교양있게 고객을 에스코트할 임무를 위임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는 교육과 수련이 따를 것이며 이에대한 투자와 비용은 당연히 보상돼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런 품격있는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 원칙에 동의한다면 나머지는 별로 어려움 없이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호텔이나 항공사·은행·병원등의 접객일선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가 고유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또 반드시 명찰을 패용하고 있다. 자기가 일하는 회사의 명예와 자기의 이름을 지킨다는 긍지를 심어 주는 것이다. 가까이 일본의 예를 보면 인솔직원은 유니폼을 입지 않더라고 반드시 명찰과 표지를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유와 평등사상이 앞선 나라들일수록 서비스업 분야에 종사하는 직원의 복장이나 용모, 예절, 몸가짐은 극히 보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이들 서비스업은 「고객의 만족」이 생존에 직결되는 기업의 좌우명이므로 이를 실현하는데 철두철미하다. 미국의 은행창구를 보더라도 화려하지 않은 평상복을 입은 직원이 자기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창구에 걸어 놓고 고객을 맞이한다.

동양권에서의 번호를 걸어 놓고 명찰은 보일 듯 말듯한 크기로 더구나 앞으로 숙여달라고 있는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명찰에 적힌 자기 이름은 프라이버시가 아니라 자신이 담당자임을 고객에게 알리는 적극적인 자세의 표현이다. 제복이나 명찰과 관련된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중의 하나는 제복을 입으면 행동이 부자유스럽다는 것과 명찰을 달고 잘못하는 경우 창피당한다는 참으로 서비스 정신과는 상반된 것들이다.

제복이란 정신을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릇이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여도 내용 즉 서비스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면 넝마보다 나을게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서비스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경영진의 책임이다.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룰때에 「셀링 포인더」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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