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을 것 같았다. 뫼비우스의 띠를 달리고 있는 것 마냥 아무리 내달려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짙푸른 아드리아해의 바다를 향해 힘껏 돌진하는가 싶으면 또다시 육지 깊숙한 품으로 앙칼지게 파고들기를 연거푸 되풀이했다. 해안도시들만이 그 흐름을 잠시 멈출 뿐이었다.

◆ 크로아티아 매력의 원천은?

크로아티아를 유럽의 유명 휴양지로 자리잡게 한 최대 매력은 역시 아드리아해와 그 속에 농축된 다채로운 문화다. 북에서 남으로 아드리아해와 맞닿은 육지의 해안선 길이는 무려 1,777km. 직선 길이를 생각하면 매우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인 것이다. 여기에 1,185개의 크고 작은 섬이 아드리아해를 수놓고 있으며 그 중 66개 섬에만 사람이 살 뿐 나머지는 모두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무인도다.

뉴욕의 UN빌딩에 대형 사진이 걸려있을 정도라면 그 빼어난 풍광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좁은 면적에 1,100여개의 섬이 촘촘히 몰려 있어서 맘만 먹으면 누구라도 자신만의 해수욕장도 가질 수 있다.

나만의 아담한 해수욕장에서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드 선텐을 즐기는 게 이곳에선 ‘매우’ 흔한 일이자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한다. 스쿠버다이빙, 스노클링, 바다낚시 포인트 등이 지천에 깔려 있고 요트, 크루즈 등 갖가지 해양레저로 가득하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이유만으로 크로아티아가 유럽의 유명 휴양지로 부상한 것은 아닐 터. 대륙과 지중해를 잇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이유에서 일찍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했음은 물론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수많은 왕국과 민족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다채로운 문화가 혼합됐다. 어떤 이는 제우스, 주피터, 그리스도의 문화가 혼재된 곳이 바로 크로아티아라는 말로 그 다양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아찔한 절벽 해안선 곳곳에 들어선 해안 도시 어느 곳에서라도 이를 느낄 수 있다. 남쪽으로 내달릴수록 농도를 더해 가는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해안도시의 주황색 지붕이 더없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속에 층층이 쌓여 있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색색의 문화가 저음의 첼로 연주처럼 마음속에 장중한 진동을 남긴다.

◆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9박10일간의 여정은 크로아티아 정치, 경제의 중심지인 수도 자그레브에서 시작했다. 900여년 역사의 자그레브 시내에서 전형적인 중유럽 문화의 고풍스런 향취를 느낄 수 있었고, 북쪽으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쿰로베츠 민속마을에서는 티토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되밟아 볼 수 있었다.

이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건물들이 아직도 내전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는 ‘유럽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칼로바츠(KARLOVAC)에서 쉽게 아물지 않는 크로아티아의 아픔을 맛보았다.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플리트비츠 호수에서는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대자연의 신비에 감탄했다. 억수로 내리는 비줄기를 뚫고 악착같이 찾아간 크르카(Krka) 폭포는 마치 천연 식물원에 온 듯한 아늑함과 포근함을 선사했다.

5일째에 당도한 곳은 3,000역사의 해안 도시 자다르(ZADAR). 이곳에서부터 자다르, 시베니크(SIBENIK), 트로기르(TROGIR), 스플리트(SPLIT) 등을 거쳐 크로아티아 꽃 두브로브니크로 향하는 ‘해안선 투어’가 본격 시작됐다. 자다르에서 크로아티아 최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까지의 해안선 투어 일정은 매우 자유롭다.

렌터카를 이용해 자유여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유여행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마음 내키는 마을이 있다면 훌쩍 멈춰서면 그만이다. 특히 저녁 무렵 낙조로 아드리아해가 붉게 물들기라도 할라치면 길가 곳곳에는 이를 감상하려는 이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롭다해도 종착점 두브로브니크에 닿을 때까지 절대 놓쳐서는 안될 곳이 있다.

바로 자다르와 스플리트다. 이곳은 특히 크로아티아의 복합성과 다층성이 짙게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점 부끄럼도 없이 ‘아름답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다르는 흔히‘크로아티아의 베니스’로 불릴 정도로 분위기가 호젓하고 평화롭다. 크로아티아 최초의 대학이 들어선 곳이고 크로아티아 언어로 씌어진 최초의 소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또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걸친 다양한 문화가 집적된 곳으로 특히 카톨릭 유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자다르 올드시티의 중심에 들어서 있는 성 도나트(St. Donat) 교회는 9세기에 건립된 교회로 박물관에는 카톨릭의 역사를 말해주는 각종 유물과 성화, 성의 등을 비롯해 금과 은으로 만든 옛 성인들의 손과 발 모형이 전시돼 있다. 실제 뼈 조각이 안에 들어있어 경건함을 더한다.

올드시티의 중심에는 로마포럼(Roman Forum)이라는 제법 널찍한 광장이 있다. 견고하게 축조된 대리석 바닥과 무너진 기둥만이 이곳이 과거 학문과 진리를 논했던 토론의 장소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비록 바닥과 기둥 몇 개만 남았지만 여전히 그날의 열띤 토론소리가 귀에 아른거리기라도 하는 듯 광장 옆 노천카페의 관광객들은 로마포럼에 꽂은 시선을 쉬이 빼내지 못한다.

스플리트는 무엇보다 크로아티아에서 미인이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한 도시다. 도시 뒤편에는 산맥이 지나고 있어 세찬 바람을 막아주고, 앞쪽 바다에는 수많은 섬들이 거친 파도를 막아 줘 잔잔하고 고요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미인동네’로 소문이 났고 실제 거리를 걸어보아도 그 소문이 허풍만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현지 토박이들의 표정도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밝고 활기차다. 동양인을 대하는 태도도 스스럼없다. 두브로브니크와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일찍부터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았던 덕택인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1,700년 전에 건설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us Palace)’. 이는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자신의 은퇴 후를 염두하고 295년에 짓기 시작해 10년만에 완성한 성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성이 완성된 이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그의 사후에도 많은 황제들이 이곳을 애용했다. 1,70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배관용 석재, 석화, 벨탑, 기둥 등 대부분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며 종탑과 교회 등의 건물 배치도 그대로이다.

로마시대의 건축양식과 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독특한 사료로써 전세계적으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놀라운 것은 직사각형의 고성 안에 약 3,000명의 일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가들도 골목골목마다 들어서 있는데 입점비(?)가 꽤 비싼 편이라고 한다. 1,700년전의 고대 역사가 현재와 함께 숨쉬고 있는 것이다.

크로아티아 글·사진=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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