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 사이판에서는 더할나위없이 훌륭하게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인간의 모습은 한낱 점처럼 배경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 일본의 역사가 남아있는 곳­사이판
사이판의 질리지 않는 푸르른 선명함이 눈이 부시다. 원주민인 차모로인들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 신록의 푸르름이 빛을 발하는 초원과 산, 눈부신 하늘과 코발트빛 바다가 누가 먼저랄것 없이 한꺼번에 가슴 안으로 파고든다. 두터운 외투를 벗고 어깨를 누르던 스트레스들이 어느새 사라지며 평온한 자연 속으로 몰입되어 간다.

가까운 거리와 그간 이곳을 찾았던 관광객 덕분에 사이판은 이제 낯설고 먼 이국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빈탄, 몰디브, 보라카이 등 비슷비슷한 관광지가 등장하면서부터 사이판의 매력이 다소 희석됐다 하더라도 남국의 안락함과 평화는 여전히 사이판에 남아있다.

사실 남국의 휴양지 사이판을 채우는 대부분은 주민이 아니라 관광객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생각 이상으로 많고 그 이상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북적대니까. 특히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취향들이 가득한 곳이 사이판이다. 태평양전쟁의 전범국가로 전락했던 일본의 치욕적 전투지(더불어 한국인의 희생이 묻혀 있지만)가 역사의 장으로 재구성돼 사이판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본군 최후사령부, 자살절벽, 만세절벽 등 우리와도 결코 무관치 않은 쓰라린 좌절 앞에서 일본인들의 모습은 무척 초연해 보인다. 현재 그들의 엄청난 저력이 뼈저린 오욕의 역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만세절벽이라는 이름과 사건이 없었더라면 다만 관광지에 지나지 않을 이 절벽의 바람은 자칫 중심을 잃고 넘어지거나 멀쩡히 쓴 안경마저도 벗길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다. 만세절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자살절벽의 처절함 또한 남다르지 않는 등 사이판의 뒷편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다.

◆ 원스톱 관광지­티니안

사이판의 화려함 뒤에 제 몸을 숨기고 있는 티니안은 좀더 한적하고 휴양 그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여행자에게 제격이다. 총 주민이 2천 여 명인 이곳은 사이판 정도의 면적이며, 사이판에서 비행기로 10분, 배편으로는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다. 대중교통편이 없는 티니안에서는 원스톱 관광지 역할을 하는 호텔에서의 생활이 중요하다. 사이판같은 다채로움이 부족한 이곳의 즐거움은 호텔에 있다.

개관 3주년을 맞는 티니안 다이너스티호텔(객실 412실)은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즐기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야외수영장, 사우나, 쇼핑 아케이드를 비롯해 다이너스티에서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은 역시 카지노. 단조로운 휴가생활 중 배팅이 주는 짜릿함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티니안 시내 관광은 한나절이면 족하다.

인적 드문 해변에서 간단하지만 스노클링, 바나나 보트 등을 즐길 수 있다. 호텔에서 10분 거리의 타가 비치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어설픈 호객 행위는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순수해 보인다.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티니안에서 차는 필수용품. 또한 더운 지방 사람들답게 운동 자체를 싫어한다고 한다. 걷는 것을 꺼리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가끔 해변 근처를 지나가는 차들이 고작이다. 더운 지방 사람들답게 낮보다는 밤 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관광객과 현지 상인들 얼굴만 바라보다가 산호세 마을과 타가 마을을 들러서야 단조롭지만 행복해 보이는 현지주민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건기인 2월, 거리 한가운데서 만나는 스콜은 생각보다 심술궂지 않다. 흩뿌리거나 혹은 굵은 빗발에 바람을 동반할 지라도 스콜은 반가운 친구같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고 나면 몸에서 ‘또로롱’ 흘러내리는 빗물은 가볍고 상쾌하다.

몸에 한기가 서리는 한국의 여름 소낙비와는 달리 몸에 닿는 첫 느낌과 끝 느낌이 아주 상쾌하다. 한국의 소낙비가 신새벽 깊은 우물에서 퍼온 냉수라고 하면 스콜은 뙤약볕 아래 잠시 놓아둔 대야의 물과 같다고 할까. 가끔씩 흩뿌리는 스콜이 지나가면 냉큼 해가 내리쬐는 일상이 반복되며 상하(常夏)의 나라인 티니안 주민들을 쾌적하게 해준다.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였던 사이판과 마찬가지로 티니안 곳곳에도 전쟁의 참상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실 방치돼 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일본군 사령부와 폭탄, 원폭탑재 기념비 등이 볼품없이 놓여 있다. 그것은 티니안과 사이판의 현재와 과거를 덤덤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다.

취재협조=(주)씨티항공여행사 02-778-7300
사이판·티니안=임송희 기자 saesongi@traveltimes.co.kr


◆ 티니안에서의 실속있는 놀이­카지노
휴양지의 나이트 라이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쇼핑, 유흥가 혹은 카지노 등 세 부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티니안의 다이너스티호텔에 마련된 7만5,000 평방피트 규모의 카지노는 오전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우연히 만난 현지교민은 호텔의 객실손님은 물론 멀리서 원정 손님들도 꽤 있다고 귀띔해준다.

한국보다 이목이 덜 신경쓰이는 탓에 한국인 큰 손(?)들의 활약이 돋보이기도 한다고. 바카라, 블랙잭, 아메리칸 룰렛, 크랩스와 200개의 슬롯머신이 마련된 이 곳에서 구경꾼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 곳은 룰렛 테이블. 룰렛 휠에 룰렛 볼이 떨어질 때 번호나 색상을 맞추는 손님이 이기는 룰렛은 룰을 잘 모르고도 돈을 딸 수 있는 비교적 높은 확률을 가진 게임이다.

마음 속으로 칩을 걸고서 룰렛 볼이 낙찰될 때의 짜릿함은 구경꾼들이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룰렛 휠의 움직임에 순간 숨을 죽이다가 예상과 빗나가는 결과가 나와도 사람들은 쉽게 허망해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칩무더기를 보는 것만으로 한판의 결과가 기다려진다.

그 다음 코스는 슬롯 머신. 최근 25센트로 수백억원대의 잭팟을 터트린 한 여성의 꿈같은 이야기와 폐광이었던 곳에 들어선 내국인전용카지노에 대한 보도 덕분에 슬롯 머신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슬롯머신을 이용하기 위해 우선 두둑하게 동전으로 교환한다.

플라스틱컵에 찰랑찰랑 바닥이 보이지 않게 채우려도 해도 20달러가 훌쩍 넘어 버린다. 2시간을 다소 흥분하며 즐긴 결과는 10달러. 본전이다. 사실 20달러까지 불려 놨으나 그놈의 욕심이 문제였다. 어차피 카지노는 돈을 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인색한 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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