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제주도에 들렀을 때다. 성산 일출봉 근처 도로변에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다. 신기하게도 겨울에 진노란색으로 만발한 유채는 인상적이었다. 그 풍경의 매력에 끌려 차를 멈춰 서게 했다. 차안에 있던 일행들이 모두 유채밭으로 달려 들어가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 하트모양의 철제 의자도 있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유채밭에서 나오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입장료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유채밭의 입장료는 일인당 2,000원이었다. 그곳은 분명히 들어갈 땐 사방에 사람 하나 없던 곳이었다. 일행 모두 유채라는 미끼에 걸린 고기가 된 듯한 찜찜한 표정들이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지나치게 상업화된 상술에 그 원래의 색이 바래는 경우였다.

현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일년에 유채밭에서 나오는 입장료 수입이 잘 나가는 곳은 4,500만원에 가깝다고 한다. 그런 사업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외지인이란다. 땅을 빌린 대가로 땅 주인에게 1,500만원 정도를 주고 난 후에도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돈을 남기는 데 성공할지는 몰라도 불쑥 나타나 입장료를 내라는 제주도의 이미지는 함정 관광지로 추락하고 있었다.

관광지는 어쩔 수 없이 상혼에 젖기 마련이다. 대규모의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현지 주민의 상술로 인해 방문객의 마음이 다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미국 그랜드 캐년을 지나며 과거에 인디안과 백인이 물물교환을 하던 곳(trading post)을 들른 적이 있다. 나바호 부족의 토산품을 파는 기념품점은 물론 전통 인디안 음식만을 파는 레스토랑도 있는 곳이었다. 기념품점 한 켠에는 인디안 할머니 한 분이 나바호 부족의 전통 카페트격인 나바호 럭(Navaho rug)을 손수 수작업으로 짜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제공되는 볼거리 소재의 다양함이라는 차원에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당연히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마네킹처럼 묵묵하던 그 할머니가 갑자기 옆에 놓여져 있던 바구니를 한 손으로 가리켰다.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그 인디안 사진 모델의 요구가 하도 단호해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먼지바람에 마른 가시덤불 굴러다니던 황량했던 그 작은 마을. 그 곳에서 경험한 상혼은 코 베어 가는 대도시의 상혼 못지 않았다.

홍콩에는 오래 전의 칸토니스 가옥과 생활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서 만나는 전통의상을 입은 할머니들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모델료를 내야한다. 돈을 내더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은 문화가 그곳에 있다면 별문제 없다. 모델료를 내고 안 내고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찍었으니 돈 내라 하는 식의 자원경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얄팍한 바가지 상혼은 재방문하려는 의지를 말살하고 좋은 이미지로부터 나오는 관광지에 대한 칭찬과 타인에게의 방문권유를 함께 죽이기 때문이다.

경희대 관광학부 부교수 taehee@nms.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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