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외여행 20년 리포트 200205-202206
상-해외여행 20년 주요 사건과 영향

●전쟁·테러

전쟁과 테러는 해외여행의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요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측 불가능한 악재를 대하는 여행객들의 심리와 태도에는 변화가 생겼다. 

2015년 11월 파리 여섯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살 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여행신문 CB
2015년 11월 파리 여섯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살 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여행신문 CB

무차별 테러에 뒷걸음부터 

2001년 9.11 테러는 미국 여행시장에 장기간 후유증을 남겼다. 테러 이후 비자 발급이 더욱 어려워졌고 보안 검색이 크게 강화되며 여행심리를 위축시켰다. 여기에 1,300원대의 고환율, 이라크 전쟁에 대한 위기감 등도 겹치며 미국행 항공 수요는 1년 이상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2002년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전년대비 3% 감소한 61만8,000명을 기록했다. 

동남아시아 여행시장 전체를 뒤흔든 사건도 있다.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다. 당시 폭탄 테러는 늘 여행객으로 붐비는 구타 해변 근처에서 벌어졌는데 202명 사망자 중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으로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테러 직후 한국인들의 발리행 여행은 취소 행렬을 이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며칠 후 필리핀에서도 연쇄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이는 동남아시아 여행 전체에 대한 불안의 씨앗이 됐다. 인근 지역인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행 시장 전체가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다시 여행객들의 심리적 안정을 찾고 여행을 예약하는 이들이 나타나기까지는 약 두 달이 걸렸다.


테러, 두려움보다 애도

2010년대에도 세계에는 각종 비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테러와 여행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심리는 이전과 비교해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1월 파리 여섯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살 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테러 직후였던 2015년 12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유럽 여행객 모객 실적은 각각 -27.5%, -6.1%로 집계됐다. 이후로도 유럽 여행시장은 한동안 테러 이전보다 약 15~20% 가량 감소한 수준을 이어갔다. 구체적으로는 20~30대 자유여행객보다 허니문 수요가 체감상 크게 하락했다. 유럽 여행시장에 조성된 위화감에 수요는 감소했지만, 테러 직후 수요가 제로에 가깝게 급감했던 이전의 다른 테러 사건들에 비해 비교적 충격은 덜한 편이었다. 

파리 테러 이후에도 1년에 걸쳐 벨기에, 터키까지 유럽은 한동안 테러로 몸살을 앓았다. 이에 따라 유럽 여행시장이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연달아 벌어진 테러는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심리를 비교적 빠른 속도로 회복하게 만들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테러 직후 안전을 걱정하는 문의는 있지만 실제 취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이전보다 줄었고, 우려보단 테러로 인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 테러가 발생한 이후에는 현지 관광지의 보안이 강화돼 오히려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201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발생한 무차별 총격 사건 이후로도 여행을 취소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정치·외교

정치·외교적 이슈는 해외여행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국가 간 교류 확대에 공을 들일수록 국민들의 해외여행은 간편해지고, 가까워진다.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거리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다. 

 

반가워, 무비자! 

비자 면제 협정을 맺은 국가는 해외여행 선택지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얻는다. 비자 발급을 위한 비용이나 시간, 절차 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2006년 3월1일부터 관광·경유·상용 등의 목적으로 일본을 찾는 한국인에 대해 90일 이내 무비자 체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항공 공급이 확대됐고 일본 방문이 한결 수월해지면서 2006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211만7,325명으로 전년대비 21.2% 증가했다. 비자 발급이 까다로웠던 미국도 2008년 11월17일부로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시행해 관광·상용·방문 수요를 확대하는 데 톡톡히 도움을 줬다. 러시아도 2014년 한-러 비자 면제 협정 이후 한국인의 인기 해외여행지로 부상한 케이스다. 

 

여행산업의 필요충분조건, 항공자유화 

2010년대 본격적으로 진행된 항공자유화(오픈스카이)는 여행산업 성장의 기반이 됐다. 스페인, 라오스,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오스트리아, 필리핀, 홍콩 등 2010년대 항공자유화 협정을 체결한 주요 국가가 여럿이다. 항공자유화가 단기간에 해외여행 수요를 촉진하는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여행수요 증가에 맞춰 발 빠르게 항공공급을 확대하는 데는 확실하게 유리하다. 일례로 2008년 여객 운송 부문에서 항공자유화를 체결한 베트남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이 한국인 여행객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된 시점을 2014년경으로 본다면, 항공자유화가 체결된 시점으로부터 약 6년 후다. 항공자유화가 수요를 이끈 주요 요인은 아니지만, 이미 체결된 항공자유화를 배경으로 급증한 수요에 신속한 공급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행시장으로 번진 보이콧 재팬

2018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753만8,952명이다. 그해 우리나라 전체 국민 해외여행객수가 2,870만명이었으니 4명 중 1명(26.2%)이 일본을 방문한 셈이다. 2012년부터 줄곧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오던 일본 여행 시장은 2019년 푹 가라앉았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물품에 대해 수출 규제로 경제 보복을 시작하자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갖가지 일본 소비 품목에 대해 ‘보이콧 재팬’으로 맞받아쳤고, 이후 여행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수출 규제 이후 약 한 달 만에 급감한 여행 수요에 항공사들은 일본행 노선을 줄줄이 접었다. 일본 여행시장은 하반기 내내 한기로 가득했고 방일 한국인 수는 전년대비 25.9% 감소한 558만4,597명을 기록했다. 

●사고·자연재해

각종 사고와 자연재해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다. 하지만 사고 직후 정상적인 여행이 어려워진다면 소비자들의 발길을 이끌기 어렵다.  


여행 가능한데 불가능 

지진이나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여행 수요를 회복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훼손된 건물이나 도로 등을 정상적으로 복구하는 시간보다 더 걸린다. 대표적으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살펴볼 수 있다. 강진 이후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시 등 해변 도시들을 덮쳐 심각한 피해를 안겼고 여파는 수도권까지 퍼지며 여행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까지 더해지며 ‘일본=위험’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였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3월부터 방일 한국인 수는 반토막이 났고 1년 내내 마이너스 길을 걸었다. 결국 2011년 한국인 여행객수는 165만8,073명으로 32% 감소한 수준으로 상흔을 남겼다. 이듬해 일본 여행 수요는 다소 회복됐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전 수준까지 돌아가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2018년 10월 태풍 ‘위투’가 사이판을 할퀴고 지나간 이후에도 정전과 도로 붕괴 등 복구 작업이 수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공항과 호텔이 정상적으로 복구되기까지 약 2개월 동안 여행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마리아나관광청에 따르면 태풍 후 약 5개월이 지나서야 태풍 전 수요의 약 50%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다.  

 

침통한 분위기에 선박 여행 거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바닷길은 한동안 경직됐다. 사고 후 수학여행이 금지됐고 전국에는 애도의 물결이 일며 사회 전체적으로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선박에 대해 민감했다. 그나마 국제선은 훨훨 날았는데 항로는 꽉 막혔다. 해양수산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국제여객항로 수송실적은 전년동기대비 4.3% 감소한 126만6,000명을 기록했다. 보다 자세히 뜯어보면 국민 해외여행은 20% 이상 줄었는데 방한관광이 급증하며 상쇄한 결과다.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은 꽤 깊었다. 국민들은 선박 사고에 더욱 민감해졌다.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람선이 침몰했는데 한국인 여행객 2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는 소식에 2차 충격을 안겼다. 사고 직후 소비자들은 선박 투어에 대해 거부 반응을 나타냈고 결국 대부분 상품에서 선박을 이용한 투어는 사라졌다. 선박에 대한 불안감은 약 3개월가량 지속됐다.

 

떠오르던 별, 캄보디아의 눈물

2007년 6월 씨엠립에서 시아누크빌로 향하던 캄보디아 저비용항공사 PMT항공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캄보디아는 당시 베트남과 함께 인기가 높았던 여행지였지만 사고 후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저비용항공사에 대한 안전성 이미지 타격이 컸다. 추락 사고 이후 동남아시아 항공사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외항사를 비롯한 저비용항공사 상품 전반에 대한 취소가 줄줄이 이어졌다. 여파는 연말 겨울 성수기에 접어들어서야 어느 정도 회복되는 양상을 나타냈으나, 추락 사고 직전만 해도 떠오르는 신규 여행지로 주목받았던 캄보디아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공동기획=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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