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태양빛과 밀양아리랑의 힘찬 선율. 밀양의 첫인상이었다. 풍요롭고 좋은 기운이 샘솟는다.  

우리나라 3대 명루로 꼽히는 영남루에서는 섬세함이 돋보이는 건축미와 시를 읊던 옛 선비들의 시선을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3대 명루로 꼽히는 영남루에서는 섬세함이 돋보이는 건축미와 시를 읊던 옛 선비들의 시선을 즐길 수 있다

‘날 좀 보소’로 시작되는 밀양아리랑은 우리나라 3대 아리랑에 꼽힌다. 구슬픈 ‘한'의 정서가 느껴지는 다른 아리랑과 달리 흥겹고 경쾌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밀양은 그런 아리랑을 닮았다. 산과 강이 이룬 빼어난 자연 풍광과 호국정신의 역사, 그리고 동심을 일깨우는 다양한 체험거리로 머무는 동안 몸과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마침 9월22일부터 25일까지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해 밀양아리랑대축제가 열리니 밀양을 둘러보기 딱 좋은 시기다. 밀양의 설화와 역사적 인물로 스토리텔링을 펼치는 대규모 멀티미디어쇼 ‘밀양강 오딧세이’를 비롯해 39종의 프로그램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다. 올가을 밀양에서 축제와 여행을 즐기며 경쾌한 추억을 더해보면 어떨까. 


●자연의 품속에서 유유자적하고 싶다면 

 

절벽 위 누각에서 노닐다  
영남루

밀양의 중심에 자리한 영남루는 밀양 여행의 출발점이다. 배롱나무 꽃이 한창 피어 있는 일주문을 통과하면 부드러우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남루가 등장한다. 팔작지붕은 새가 날개를 펼친 듯 곡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영남루와 침류각을 잇는 계단식 복도 ‘월랑’은 익숙한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멋진 창이 되어준다. 영남루에서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건축물의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게 소소한 묘미다. 신발을 벗고 누각에 오르자 풍류를 즐기던 옛 선비들의 시문과 함께 하늘, 산, 밀양강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밀양의 뜨거운 햇빛에 지친 몸은 금방 충전된다. 

백일홍이 그린 수채화  
위양지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를 지닌 위양지는 사계절 내내 절경을 선사해 밀양 8경으로 꼽힌다. 왕버드나무, 수양버드나무, 이팝나무 등의 진귀한 나무와 이름 모를 야생화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걷는 내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맑은 날씨의 싱그러운 풍경도 좋고 비가 내리거나 물안개가 자욱한 위양지도 운치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봄에 만개하는 이팝나무꽃을 보러 위양지를 방문하지만, 여름의 배롱나무 꽃 ‘백일홍’을 빼놓으면 섭하다. 백일홍은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초록빛 물결에 화사한 색채를 입혀 위양지의 여름에 입체감을 더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정자 ‘완재정’의 맞은편에서 벤치에 앉아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잔잔한 기쁨이 찾아온다. 

여기가 바닷속인가 하늘 속인가…신선의  세계  
만어사

굽이굽이 가파른 만어산을 오르면 산사태가 난 것인지 누군가의 돌무덤인지 만어사 앞에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동해 용왕의 아들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 1만 마리의 물고기를 이끌고 만어사에서 쉬다가 용왕의 아들은 미륵바위로, 물고기떼는 크고 작은 바위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곳에는 신비로운 전설이 존재하는 만큼 현실을 뛰어넘는 신선의 세계가 열린다. 어느 시간대에 방문하느냐에 따라 빛이 수놓은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른 새벽에는 짙은 운해를 뚫고 떠오르는 해, 노을이 질 때는 석양에 붉게 물든 바위, 한밤중에는 새하얀 달빛이 바위에 반사돼 은은하게 빛나는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호국정신의 역사를 되새기며 

 

직접 의열단원이 되어보자  
의열체험관·의열기념관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고 영화 ‘암살’에 나온 대사가 있다. 영화를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김원봉의 고향은 밀양으로,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그린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생가터, 독립만세운동 기념비 등이 밀집되어 있어 의열정신이 살아 숨쉰다. 특히 의열단 창립 역사와 단원들을 소개하는 의열기념관을 관람하고 의열체험관으로 이동해 비밀지령 해독, 수류탄 의거, 일본군의 습격을 피해 태항산 탈출 등을 몸소 체험하고 나면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충의정신을 기리다  
사명대사 유적지 

밀양 서쪽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충의가 가득하다. 생가지, 상징광장, 동상, 기념관으로 구성된 사명대사 유적지는 승려 신분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명대사의 일대기와 업적을 그린 벽화부터 법복, 서책, 친필 글씨 등의 유물, 일제가 두려워한 사명대사 석장비의 사연까지 찬찬히 살펴보면 현대에서도 본받아야 할 대담한 협상력과 외교술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라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사명대사의 고결한 정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 

나라를 걱정하며 땀 흘리는
표충비

돌이 땀을 흘린다고 하면 믿을 수 있는가. 밀양에는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리는 표충비가 있다. 동학농민운동, 3·1운동, 8·15해방, 6·25전쟁, IMF 외환위기 등 우리나라가  중대사를 겪을 때마다 사람이 땀을 흘리듯 수십 시간씩 구슬땀을 흘려 화제가 되었다. 특히 땀이 글자의 획을 가로질러 흐르거나 머릿돌과 받침돌에 맺히는 일이 없어 신비함을 더한다. 일제강점기 때 비석의 기를 차단하려는 일본인들에 의해 균열이 생겼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의문사를 당하고 표충비의 상처는 점점 아물었다는 기묘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명대사와 독립운동가들의 호국정신을 기리며 비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묵념의 시간을 가져본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동심을 깨우다

내면의 예술가를 만나기 위해  
미리미동국

밀양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주택들 사이로 우뚝 솟은 알록달록한 집이 보인다. 이곳은 도예, 천연염색, 가죽공예, 자수, 원예 등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예술플랫폼 ‘미리미동국’이다. 밀양의 최초 이름이기도 한 미리미동국은 삼한시대 때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밀양땅의 자원을 활용해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런 미리미동국의 기운을 이어받아서인지 각종 공방에서는 예술적 감성과 에너지가 충만하다. 마음에 드는 공방 체험을 골라 내면에 잠재된 예술성을 마음껏 펼쳐보면 어떨까. 옥상에 올라가면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으니 여유롭게 밀양의 한적한 분위기를 누려보자. 

별 헤는 밤은 이루어진다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

현대인은 도시의 불빛에 익숙해 별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사실은 바쁜 일상에 치여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고개를 들고 별을 찾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양에는 천문대가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별천지를 보러 갈 수 있다.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의 천체투영관에 가면 실제와 같은 밤하늘 아래 누워 해설자와 함께 별자리도 찾아보고 외계 생명을 찾아 여러 행성을 여행하기도 한다. 직접 반사망원경이나 다양한 소형 망원경들을 이용해 토성, 성운, 고리성운 등도 관측할 수 있다. 가끔은 별 헤는 시간을 보내며 쉬어가도 괜찮다. 

1억개의 빛의 축제  
트윈터널

밀양 시내에서 벗어나 남쪽 삼랑진으로 내려가면 옛 경부선의 폐선 터널을 빛의 테마파크로 새단장한 ‘트윈터널’이 나타난다. 바깥에서 볼 때는 으슥한 동굴처럼 보이지만, 터널 안에 들어서면 1억개의 빛의 향연이 펼쳐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환상의 세계에 매료된다. 별빛마을부터 산타마을, 벚꽃터널 등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터널을 지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세상이 나오려나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기대하게 된다. 특히 해저세계 구간에서는 형형색색의 희귀한 바다 생물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마치 바닷속에 들어온 듯 생생함을 안겨준다. 

 

밀양 글·사진=장세희 인턴기자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