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ArthurGlen  Designer Outlets

쇼핑의 땅, 이탈리아에서 길을 잃었다. 
세상 제일 즐거운 방랑이 시작됐다.

놀이동산처럼 낙천적인 분위기의 세라발레 아웃렛
놀이동산처럼 낙천적인 분위기의 세라발레 아웃렛

●Serravalle Designer Outlet

쇼핑을 위한 디즈니랜드

현명한 쇼퍼(shopper)들은 지도 앞에 선다. 쇼핑의 핵심은 체력. 최적의 동선을 짜는 건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다. 세라발레 아웃렛 입구 앞, 지도를 살폈다. 그런데 이거 심상찮다. 빨간 점으로 표시된 현재 위치에 비해 아웃렛의 규모가 너무 크다. 살 것도, 볼 것도 많다. 마음이 급해진다. 

아웃렛의 파워는 브랜드 구성에서 나온다. 어떤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가는 곧 그 아웃렛의 품격과 위치를 보여 주는 명패와 같다. 세라발레는 과연 강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아웃렛답게 입점 브랜드 수만 약 230개 이상이다. 구찌, 프라다, 버버리, 펜디,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는 기본, 일반적으로 아웃렛에서 찾아보기 힘든 발렌시아가까지 있다. 생로랑도 이탈리아 아웃렛 중에선 이곳에 처음으로 입점했다고. 최근엔 밀라노의 두 번째 스타벅스도 들어섰다. 세라발레의 위상을 가늠하게 해 주는 명패들이다. 

리구리아 스타일의 건축 양식이 반영된 건물들
리구리아 스타일의 건축 양식이 반영된 건물들

선택지가 많을수록 욕심 많은 쇼퍼 입장에선 곤란하다. 시작점과 끝점을 어디로 정할 것인가. 그럴 땐 빅 브랜드부터 차례차례 훑는 게 쉽다. 세라발레엔 구찌와 버버리의 단독 건물이 있다. 지난 시즌 상품은 물론, 한국에 미처 들어오지 않은 신상들조차 합리적인 가격에 품을 수 있다. 한국에서 입맛만 다셨던 버버리 가방이 30% 할인된 가격에 진열돼 있는 걸 본다면, 아무리 유혹에 강한 쇼퍼라도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 이탈리아 로컬 브랜드들도 조용히 강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캐시미어나 가죽 제품이 있다면, 하나쯤 사 두는 게 손실 없는 선택이다.

푸드 트럭과 벤치가 쇼퍼들의 쉼터가 되어 준다
푸드 트럭과 벤치가 쇼퍼들의 쉼터가 되어 준다

그렇지 않아도 들뜨는 기분은 리구리아(Ligurian) 스타일로 세워진 파스텔 톤의 건축물 덕에 더 가벼워진다. 현대 예술가들의 분수와 조각품도 쨍한 채도로 빛난다. 놀이동산처럼 낙관적인 분위기다. “세라발레 아웃렛의 연간 방문객은 650만 명이에요. 로마 콜로세움 다음으로 많은 숫자죠. 여긴 어른들을 위한, 쇼핑을 위한 디즈니랜드입니다.” 사비나(Sabina Piacenti) 세라발레 아웃렛 투어리즘 매니저가 속삭였다. 그러니 오늘 하루, 우린 모두 ‘쇼핑 자유이용권’을 끊은 셈.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유구한 유희의 세계, 쇼핑 파라다이스를 누볐다.

과감한 색상의 몽클레어 숏 패딩
과감한 색상의 몽클레어 숏 패딩

▶쇼퍼홀릭 에디터의 세라발레 아웃렛 쇼핑 꿀팁 10


1. 정문 앞 지도 표지판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각 매장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모바일 지도가 뜬다. 
2. 이탈리아에선 이탈리아 브랜드를 사는 것이 현명하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최상을 보장한다. 
3. 원하는 디자인이나 사이즈, 컬러가 없다고 해도 섣불리 실망하지 말자. 매장 내 직원에게 문의하면 매장에 없는 재고를 가져와 주는 경우가 많다.  
4.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패션 패스포트를 발급받으면 세일된 가격에 추가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단, 적용되는 브랜드가 정해져 있으니 결제 전 매장에 문의해 보는 게 좋다. 
5. 한 매장에서 155유로 이상 구매하면 택스리펀을 받을 수 있다. 아웃렛 내에 택스리펀 오피스가 마련돼 있어 편리하다.
6. 게스트 서비스 센터에서 핸즈프리 쇼핑 서비스를 신청하면 구매한 상품을 들고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가격은 5유로. 
7. 아웃렛엔 14개의 바와 레스토랑이 있다. 어디서 뭘 먹을지 고민될 땐 ‘레 돌체 테레(Le Dolci Terre)’로 향하자. 피에몬테 와인과 바질 파스타가 훌륭하다. 
8. 뚜벅이 여행자라면 셔틀버스를 예약하는 게 좋다. 인당 20유로를 지불하면 밀라노 시내에서 아웃렛까지 1시간 만에 데려다 준다. 
9. 전 매장 펫 동반이 가능하다. 야외엔 강아지 전용 수돗가가 있을 정도.  
10. 아이와 함께라면 지난해 새로 생긴 ‘플레이 랜드(Play Land)’를 놓치지 말자. 아쿠아 파크, 베이비 파크 등 놀이 공간이 꽤 탄탄하다. 

 

●Noventa di Piave Designer Outlet

MD들의 초이스, 취향을 저격하다


베니스 본섬에서 40km. 노벤타 아웃렛(Noventa di Piave Designer Outlet)의 구찌 매장. 수많은 쇼퍼들이 쉴새 없이 가격표를 뒤집는다. ‘이게 맞아?’ 현실에도 만화처럼 말풍선이 있다면 방문객들 머리 위에 적힐 글씨다. 믿기지 않는 가격에 지갑을 꺼낸다. 

해 질 녘, 노벤타 아웃렛 입구
해 질 녘, 노벤타 아웃렛 입구

숫자엔 대개 현실감이 결여돼 있다. 고장 난 계기판처럼 마구 올라가는 연예인의 SNS 팔로워 수나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주가. 단위가 커 계산하기 어려운 베트남의 화폐 같은 것들. 그런데 노벤타 아웃렛에선 숫자가 살아 있었다. 120유로의 캘빈 클라인 니트를 25유로에 구매했을 때, ‘-70%(사실상 80%에 가까운 세일가였다)’란 숫자는 처음으로 활자의 틀을 깨고 나에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150만원을 호가하는 펜디 스웨트 셔츠를 1/2 가격에, 140만원의 프라다 버킷백을 80만원에 득템했을 때도. 프라다 사피아노 가죽 지갑을 4개나 지른 건 딱히 사치를 부리는 타입도, 여윳돈이 넘쳐서도 아니었다. ‘-60%’란 숫자의 숨소리에 귀 기울였을 뿐이다. 문자에서 벗어난 숫자. 그건 적자 없는 투자이기도 했다. 

쇼핑에도 휴식이 필수다
쇼핑에도 휴식이 필수다

그렇다고 비인기 상품을 싼 가격에 모아 놨으리라 짐작한다면 섭할 일이다. 애초에 그랬더라면 입맛 까다로운 한국인 쇼퍼들 사이에서 ‘쇼핑 성지’로 입소문 날 리도 없었을 테다. 아무리 저렴하다고 한들, 예쁘지 않으면 지갑을 열지 않는 게 이 시대의 스마트한 소비자다. 그러니까, 가격은 둘째치고 일단 제품 자체가 매력적이란 건데. 이건 각 브랜드별 브랜드 MD(상품 기획자)들의 취향과 선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요즘 쇼퍼들은 어떤 상품을 선호하는가. 어떤 상품이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 무엇이 ‘잘’ 팔릴 것인가. 이러한 기준 아래 상품들은 들고 남을 반복한다. 브랜드의 철학과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 내는 MD들이 많은 아웃렛일수록 쇼퍼들의 지갑은 끊임없이 열린다.

화려한 컬렉션을 뽐내는 구찌 매장
화려한 컬렉션을 뽐내는 구찌 매장
▲화장품도 쇼핑 리스트에서 결코 빠질 수 없다
화장품도 쇼핑 리스트에서 결코 빠질 수 없다

클래식, 화려함, 품질, 가격. MD들마다 방점을 두는 포인트는 다 다르고, 같은 브랜드라도 아웃렛마다 입고되는 제품도 천차만별이다. A 아웃렛에서 본 구찌 자켓이 B 아웃렛엔 없을 확률, B 아웃렛의 남색 타미힐피거 목도리가 C 아웃렛엔 검정색만 있을 확률. 굉장히 높다. 쇼핑도 결국 타이밍이 전부다. 그러니 쇼퍼들은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를 원한다. 아웃렛별로 일일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게 최선이겠군’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 베니스에선 노벤타 아웃렛이 그렇다. 실제로 시내 매장에 신상으로 내걸려 있는 제품도 많고, 시중에 구하기 힘든 한정판들도 들어와 있다.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무난하면서 예쁜(이게 제일 어려운데) 상품들도 다수다. 저렴한 가격만으로 승부 보는 공장형 아웃렛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이자, 노벤타 아웃렛에서 쇼핑백을 들고 있지 않은 쇼퍼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이유다.

노벤타 아웃렛의 건물엔 베니스의 건축 양식이 묻어 있다
노벤타 아웃렛의 건물엔 베니스의 건축 양식이 묻어 있다

여기까지가 파산하기 직전까지 쇼핑한 데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 이미 지갑은 돈 대신 영수증으로 가득 찼는데, 욕심 나는 녀석들이 너무도 많았던 거다. ‘날 좀 보소’ 소리치는 가격표를 뿌리칠 만한 깜냥(?)도 없었고. 더구나 초조했던 건, 가격표의 숫자만큼이나 시계의 숫자도 살아 있었단 사실. 시침은 10에서 2로 빠르게 옮겨 가더니 5로 향했다 이내 8을 가리켰다. 매장엔 하나 둘 셔터가 내려졌다. 하루가 닫힐 때 즈음에서야, 마침내 지갑의 지퍼도 함께 닫혔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맥아더글렌 디자이너 아웃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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