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원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지사장
schoi@tourism.australia.com

중국철학에서는 가운데 중(中)자의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필중(必中)은 활을 쏠 때 정가운데 과녁을 꿰뚫는 것처럼 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을 말하고, 득중(得中)했다는 것은, 저울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잡고 있다는 의미이다. 득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객관성을 유지하며 판단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이런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당신은 공정(fair)한 사람입니다”라는 칭찬을 받았다면, 최고의 찬사를 들은 셈이라고 한다. 한쪽으로의 지나친 쏠림을 경계하는 이유는 판단과 행동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99%이다(We are the 99%.)” 월가의 탐욕을 비난하며 터져나오는 분노의 소리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뭔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들 이야기한다. 안팎으로 분배에 관한 문제로 심각해 보인다. 얼마 전 무상급식에 관한 투표 실시를 앞두고 거리 데모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는 부자감세만 철회하면 100%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기업이나 부자들이 좀 더 기부를 하면 이런 분배에 관련된 문제들이 다소간 해소가 될텐데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많은 이들이 성토한다. 또한 외국의 거부들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우리는 자식에게만 물려주려고 열심히 부를 쌓는 게 문제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무슨 문제가 떠오르면 부자들 혹은 가진 자들을 원망하고 성토하는 분위기가 쉽게 조성된다. 그들 중 대다수가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았기 때문이라는 근거로 비난하곤 한다. 부자의 기준도 사실 애매모호한데다가, 대부분의 부자들이 다 그렇다하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르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부자들의 권익도 인정해주어야 공평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평생 열심히 노력하고 정당하게 땀 흘려 재산을 일궈낸 부자들에게는 때때로 살기에 정말 불안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 문득 한국전쟁 와중에 아무 이유 없이 가진 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겼던 과거사가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불같이 솟아오르는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월가의 시위행렬과 시민의 안전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던 뉴욕시 불룸버그 시장은 “한쪽의 의견만 존재하는 공간은 없다”고 일갈했다. 마음만 부자인 필자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월가의 탐욕에 관한 문제는 월가에 집중해서 해결돼야 하며, 그 파장으로 분노가 무차별적으로 부자들을 향해 폭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뚜렷한 기준도 없이 사회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일회성으로 부자들에게 뺏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를 쉽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분배의 문제는 신중한 분석과 검증을 거쳐 시스템과 정책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법조계에 있는 지인은 법의 정신은 많은 범죄자를 잡아들여, 벌을 주고 감옥에 가두는 게 목표가 아니라고 한다. 혹시나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분노의 끝에 또 다른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문화인류학자 김정운 교수는 우리나라 평범한 국민들이 “독수리 5형제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독수리 5형제는 자세히 보면, 잡다한 종류의 새들로 구성되어 있는 조류 5남매인데, 늘 지구를 지키느라 근심 걱정이 많고 바쁘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독수리 5형제처럼 몇 명만 같이 모이면 다른 주제로 이야기로 시작하다가도 마지막에는 대부분 나라 걱정을 하다가 끝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심각한 문제들은 높으신 분들께 맡겨두고, 훌훌 털고 가볍고 즐겁게 살 필요도 있다고 권고한다. 개인의 행복 측면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높으신 분들이 잘해서 나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빨리 와서, 이 독수리 5형제 증후군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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