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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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로 씹지 않은 음식은 배에 들어가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듯이, 내 판단의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은 타인의 의견은 다양한 형태로 부작용의 씨앗이 된다.""


독일출생의 유대계 정신과 의사 프릿츠 퍼얼스 Fritz Peals에 의해 창안된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는 ‘접촉경계 혼란’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쉽게 풀이한다면 사람이 외부 환경과 만나서 상호작용을 할 때 건강하지 못한 무언가가 마음 속에서 작동되는 것을 ‘접촉경계 혼란’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혼란 유형 중 하나가 내사(introjection)이다. 이것은 엄마와 아이의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어느 엄마가 아이에게 “남자는 자기 감정을 쉽게 표현하면 안돼. 눈물을 흘려서도 안돼고.” 라는 말을 세뇌하듯 했다고 하자. 자기 판단 능력이 없는 아이는 엄마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어른이 돼서도 과묵한 남자로 생활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졌을 때, 어른이 된 아이 속에는 엄마만 있을 뿐 정작 본인은 없다. 즉 내사란 자기 욕구가 아닌 타인의 의해 형성된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을 말한다. 어느날 어른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의 삶을 사는 것이지? 왜 슬픈데 울면 안돼는 것이지?”

펄스는 특히 내사 성향이 농후한 사람들을 ‘치아 장애자 dental gehemmt'라고 불렀다. 마치 자신은 이가 없거나 이에 문제가 있는 듯, 남이 씹어주는 음식만을 먹으려 하는 사람들이 바로 치아 장애자이다. 이들은 남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즉 스스로는 그것을 한번도 검토해보지 않은 상태로 그냥 받아들인다. 내 이로 씹지 않은 음식은 배에 들어가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듯이, 내 판단의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은 타인의 의견은 다양한 형태로 부작용의 씨앗이 된다. 자기 몫의 삶을 살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마음을 다치기가 쉽다고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따귀 맞은 영혼>에서 경고하기도 했다.

직장 안에도 ‘치아 장애자’는 있다. 어떤 의견이 지배적인지를 판단하여 그 의견만 수동적으로 좇는 사람들, 회의 시간에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들, 상사가 무언가를 지시하면 정확하게 딱 지시한 만큼만 하는 사람들이 ‘치아 장애자’의 혐의를 받는 이들이다. 치아 장애자가 되는 심리적 이유는 지나친 의존성, 자존감의 약화 등 다양할 수 있으나, 한국 사회에서 만나는 ‘치아 장애자’는 안전성 혹은 보신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이것은 군사문화의 잔재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통용되는 절대 법칙 중에, “중간만 해라” 라는 말이 있다.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고 딱 중간만 하라는 것이다. 앞서면 튀어 보이고 튀면 오만가지 일들이 다 자기 몫이 되니 군생활이 고단해지는 것이고, 뒤처지면 고문관으로 찍혀버리니 군생활이 피곤한 것이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중간만 하는 것이다.

회의 시간에 침묵을 지키는 직원의 마음 속에는, ‘괜히 발언했다가는 그 일이 나에게 떨어질 수 있지’라는 학습된 무의식이 깔려있고, 상사의 지시를 딱 지시의 수준만큼 하는 것은 ‘더 잘하면 앞으로도 계속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니까..’라는 생각이 바닥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군대와 사회의 차이점이다. 군대는 중간만 해도 국방부 시계는 흘러가지만 사회에서 ‘치아 장애자’로 살다가는 이가 뽑히듯 자신의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어차피 하는 직장생활이라면, 좀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재미있게 채우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회의시간에 손도 번쩍 들고, 뭘 시키면 상상 이상의 뭔가도 만들어서 상사를 기쁘게 하라. 치아 환자는 치과에서는 사랑받을 뿐, 사회에서는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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