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렬
호텔자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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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 동남아시아 숲속에 정글 파울(jungle fowl)이라는 새가 살았다. 안정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인류는 농업과 목축을 시작했을 때부터 정글 파울은 사람과 살게 되었다. 이 새는 달걀과 고기를 잘 공급해 인기가 높았는데 사람과 생활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진화가 진행됐다. 날개가 있어도 날 필요가 없어졌고 지역, 기후, 토양 등에 따라 종도 다양해졌다. 지금도 우리에게 최소 하루 한 번씩 달걀 혹은 고기를 제공해주는 그 새가 바로 닭이다. 개, 소, 돼지와 함께 인류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물이다.

그런데 20세기 현대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 이 닭을 둘러싼 환경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닭들이 개인들의 집에서 몇 마리씩 살던 시대는 지나고 대형 기업형 농장에서 수 만 마리씩 사육되기 시작했다.

예전 닭들은 집 마당과 동네를 돌아다니며 놀고, 낳고 싶을 때 달걀을 낳고, 또 새끼를 길렀다. 하지만 지금 닭은 바깥을 돌아다닐 일이 없어졌다. 살이 찌고 달걀만 생산하게 됐다. 그렇게 되도록 사료를 먹이고 밤에도 생산을 하도록 불을 밝혀 잠도 못 자게 한다. 이런 필요에 적응하지 못하는 닭들은 사라져 갔다. 갈수록 다양한 닭의 종이 사라지고 몇몇 종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 단일화된 종에 병이 돌기 시작하자 치명타가 됐다. 조류독감이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발병했을 때는 농장의 모든 닭들이 바로 죽음으로 몰렸다. 떼죽음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닭의 종이 다양하다면 어떤 종들은 살아남는다. 같으면 다 죽고, 다르면 살아 남는다.

틈새를 뜻하는 ‘니치(niche)’란 말은 사업에 있어 흔히 듣는 단어 중 하나다. 러시아의 학자 가우스는 짚신벌레 두 종을 시험관 안에 넣고 함께 길렀더니 결국 경쟁력이 큰 종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생태조건이 같을 경우 경쟁력 있는 종만 살아남는 ‘경쟁배제의 원리’다. 두 종이 함께 사는 방법은 없을까? ‘니치’를 두었더니 공존이 가능했다고 한다. 짚신벌레 사이에 섬유질을 두니 약한 종이 이곳에서 번식을 계속해 나갔고 두 종은 한 시험관 안에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니치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종이 살 수 있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차이를 두어야 다양한 종이 살아간다.

‘종의 다양성’과 ‘니치’에 대해서는 굳이 생명과학 논문을 들이대지 않아도 생존의 중요한 법칙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안다. 인간 사회에서 민족을 불문하고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이유도 종의 다양성을 지켜 종족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니치마켓을 만들어야 성공한다는 말도 성립한다.

그런데 1980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 세계 경제를 돌아보면 다양성과 니치와는 반대로 굴러온 것 같다. 신자유주의는 오직 돈의 자유만을 관철해 왔고, 돈을 가진 강자의 세상이 지배해왔다. 이를 위해 모든 장벽의 철폐가 진행됐고, 국가의 개입은 축소됐다. FTA도 이 흐름의 한 줄기다. 다양성은 독점 앞에 무기력하고, 니치는 매스마켓에 설자리를 잃어왔다.

하지만 진화는 삶의 근본 원칙이다. 초국적 대기업만이 잘 나가는 듯 해보여도 그 사이 사이에는 영특한 중소기업 플레이어들이 늘 있다. 이들이 시장의 다양성을 만들고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또 한 해를 보내며, 다가오는 2012년 사업들을 다양성과 니치란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모색해볼 때다. 다 죽는 것 같아도 살아남는 자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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