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저 스스로 이루어지고 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은 사람의 입으로 말하여질 수 없다. 사람의 말과 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노르웨이의 자연, 즉 피오르를 바라보며 이 오래된 진리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노르웨이 글·사진=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노르웨이관광청 02-777-5943, www.visitnorway.com



에울란 전망 포인트에서 내려다본 모습. 피오르는 빙하가 남겨 놓은 자연의 걸작이다

■눈부신 베르겐의 5월

노르웨이에서 12년을 살았다는 베르겐(Bergen)의 한국인 가이드는 “노르웨이의 5월은 파업이 제일 빈번하게 일어나는 달”이라고 말했다. 일 년 중 날씨가 가장 좋은 5월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기에 일부러라도 파업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설명의 진위 여부를 정밀하게 판독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날씨가 좋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현지 시간으로 5월29일 화요일 오전, 항구도시 베르겐의 일기(日氣)는 화사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바람결에서는 ‘알싸한 온기’가 묻어났다. 빛의 알갱이들이 산중턱에 알알이 박힌 집들에 부딪쳐 화려하게 부서졌다. 야외 활동에 최적화된 기후를 뽑는 경연 대회가 있다면 ‘5월의 베르겐’에 으뜸의 지위를 부여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인 가이드는 이런 농반진반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뭔 줄 아세요? 그건 바로 유치원 선생님이에요. 야외 수업이 워낙 많다보니 아이들 뒤치다꺼리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도 장화를 신고 눈벌판을 누비는 마당에 계절의 여왕 5월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노르웨이 아이들에게 자연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놀이터이자 인간이 축조한 학문의 세계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빛나는 배움의 터전이다.

노르웨이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노르웨이의 자연은 곧 피오르(Fjord)를 의미한다. 학창 시절 지리 교과서에 따분하게 들어앉아 있던 피오르가 노르웨이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피오르는 빙하의 흔적이다. 거대하고 거대한 빙하가 깎아놓은 계곡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형성됐다. 따라서 태초의 피오르에서는 짠맛이 낫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수레가 끊임없이 굴러가는 동안 빗물이 섞이고 눈 녹은 물이 보태지면서 담수화가 진행됐다. 플롬 인근 마을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피오르는 바다도 아니고 호수도 아닌 그냥 피오르일 뿐이다”라고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빙하가 후벼 판 탓에 피오르는 수심이 깊다. 가장 깊은 곳은 1300m를 상회할 정도다. 수영을 할 수 없는 대신 대형 유람선이 왕래한다.

흔히 예이랑에르(Geiranger)·노르(Nord)·송네(Sogne)·하르당에르(Hardanger)·뤼세(Lyse) 피오르를 합쳐 노르웨이의 5대 피오르라고 한다. 나는 운이 좋고 복이 많아 노르를 제외한 4개의 피오르들을 알현할 수 있었다. 규모와 길이는 제가끔 상이하지만 저마다 위풍당당한 자연의 걸작들이다. 이번에 만나고 돌아온 것은 송네에서 갈라져 나온 네뢰위피오르와 목가적인 풍경이 돋보이는 하르당에르 피오르였다.



■게으른 여행자를 위한 ‘플롬’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영어 숙어 ‘인 어 넛셀’은 ‘간결하게, 단 한 마디로’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자연인 피오르를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우선 베르겐에서 기차를 타고 보스(Voss)까지 간다. 보스에서 버스로 바꿔 타고 선착장이 있는 구드방엔(Gudvangen)까지 내쳐 달린다. 차창 밖 풍경부터가 드라마틱하다. 주변 산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된 호수와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길들이 마음을 툭 치고 지나간다. 구드방엔에 도착하면 크루즈에 올라 플롬(Fl똫)까지 나아간다. 갑판 위 의자에 앉아 네뢰위 피오르의 절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면 된다. 글로 배운 피오르와 실제 마주한 피오르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지 절감하게 된다.

플롬은 작은 마을이다. 상주인구라고 해봤자 500여 명에 불과하다. 구드방엔에서 출발한 유람선이 닻을 내리면 평소에 적막하던 마을이 비로소 활기를 띤다. 플롬에는 딱히 할 것이 없다. 오수를 즐기는 고양이처럼 게으른 여행자를 위한 곳이다. 21가지의 하우스 비어를 생산하는 맥줏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자전거를 빌려 마을 산책에 나서면 된다. 플롬에서 하룻밤 묵어갈 계획이라면 인근 마을인 에울란(Aurland)에 다녀오면 좋다. 스테가스타인이라는 전망 포인트가 있어 빙하가 남긴 아름다운 흔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사진을 찍기에도 가장 좋은 지점이다. 플롬에서 뮈르달까지는 산악 열차가 다닌다. 기차는 20개의 터널을 지나고 아찔한 협곡 위를 달린다. 중간에 쇼스폭센 폭포 역에서 5분간 정차한다. 98m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 소리가 우렁차다.

하르당에르 피오르의 길이는 180여 km에 달한다.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로 긴 피오르다. 가장 안쪽에는 에이드(Eid) 피오르가 있다. 182m의 낙차를 자랑하는 폭포 보링포센이 볼 만하다. 하르당에르비다 국립공원 센터에서는 20분짜리 영화를 틀어준다.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피오르의 가경이 담겨 있다. 건너편 레스토랑에서는 순록 고기도 맛볼 수 있다. 하르당에르 민속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노르웨이의 전통 가옥과 민속 의상을 일별할 수 있다.

하르당에르는 피오르의 모습도 장관이지만 주변 산과 구릉지에 자리한 마을들도 탐스럽다. 이 지역에는 과일 농장을 운영하는 마을들이 유난히 많다. 농장을 방문하면 사이다를 맛볼 수 있다. 사이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탄산음료가 아니라 사과의 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사과주를 의미한다. 보통 날씨가 춥거나 포도의 생장에 적합하지 않은 토양을 갖춘 곳에서 사이다를 만든다. 프랑스어로는 시드르라고 하며, 시드르를 증류시켜 만든 것이 바로 칼바도스다. 하르당에르의 농장에서는 보통 8월 하순부터 사과를 수확한다. 사과를 압착해 얻은 과즙을 10월부터 5~6개월 간 발효시킨다.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은 사이다에서는 노르웨이의 자연처럼 청정한 맛이 난다.





■Travel info

노르웨이까지 가는 직항 편은 없다. KLM 네덜란드 항공을 타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오슬로나 베르겐으로 들어간다. 하르당에르에서 이용한 호텔은 퀄리티 호텔 보링포센(www.voringfoss.no)이다. 고즈넉한 휴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플롬에서는 유서 깊은 프레타임 호텔(www.fretheim-hotel.no)이 돋보인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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