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첫 번째 도시이며, 400년간의 식민 지배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생명력의 땅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고유한 역사를 지닌 최초의 왕조가 탄생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말라카 글=도선미 Travie Writer 사진=지성진 Travie Photographer


▲말라카 강변도 역사유적지 만큼 매력적이다. 크루즈를 타고 돌아보면 말라카의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말라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말레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한 덩어리를 이룬 도시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이주 중국인들이 말레이 사람들과 결혼해 낳은 ‘페라나칸’의 문화까지 더해져 이색적이다.

본격적인 말라카 시간 여행은 독립기념관 앞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마트라섬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건너온 한 왕자(Paramesvara)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였다. 그는 이곳에서 궁지에 몰린 아기 사슴이 자신의 사냥개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작은 힘으로도 용맹하게 맞서면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의 이름을 딴 말라카 왕국이 건국된 것이 1402년인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말레이시아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앞 말라카 나무 주변에는 포르투갈의 요새와 15세기 말라카왕궁(The Melaka Sultanate Palace)이 있어 여러모로 역사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만하다.

■역사의 굴곡 가득한 말라카

파라메시바라 왕의 바람대로 작은 왕국 말라카는 전세계의 큰 도시들을 상대하며 세계적인 항구로 성장했다. 말라카 사람들은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된 ‘말라카법’을 만들어 교역 기반을 다졌으며, 앞다퉈 이슬람교로 개종해 멀리서 온 아랍 상인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말라카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국 백여년 만인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했고, 뒤이어 1641년 네덜란드, 1795년부터는 말라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전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당시 황금보다 더 귀했던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왔는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발견하고 겨우 9년 만의 일이다. 그들은 말라카를 시작으로 아시아 침략의 포문을 열었다.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안전한 거주지 겸 요새 ‘에이 파모사(A’ Famosa)’를 짓는 것이었다. 원주민 노예를 동원해 술탄의 왕궁과 왕릉, 모스크를 철거하고, 성벽 두께가 3m나 되는 요새와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뒤이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것은 성문(Porta de Santiago)과 성당(St.PaulChruch) 한 채뿐이다.




■네덜란드가 남긴 흔적

성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로 벽채만 남은 세인트폴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가톨릭을 처음 포교한 성 자비에르와 관련된 일화로 유명하다. 자비에르는 말레이반도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가톨릭을 알리는데 힘쓰다 1552년 중국 광저우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말라카에서 6개월간 안치된 후 그의 첫 해외 포교지였던 인도 고아로 가게 됐는데, 관을 열어보니 전혀 썩지 않았다고 한다. 자비에르가 바다에 십자가를 던지자 사나운 풍랑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얼마 후 어부가 같은 자리에서 게를 건져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자비에르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말라카에서는 등에 십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게는 성스럽게 여겨 잡지 않는다.

에이파모사 요새는 전체적으로 붉고, 거칠게 풍화된 듯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녹이 슨 것도 같은데, 철성분이 함유된 홍토 벽돌로 만들어서 그렇다. 이 벽돌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쓰인 것과 같은 종류로 수백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요새 아래쪽에는 붉은 벽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스태이더스(The Stadthuys) 빌딩이 있다. 원래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이었던데, 현재는 말라카 민족박물관이자 랜드마크로 사랑 받고 있다. 말라카 이전부터 식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옷차림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식 거실과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볼 수 있다. 베이커리에서는 갈색빵을 파는데 네덜란드 점령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탄 빵을 나눠주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주말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군복 코스프레도 볼 수 있다. 스태이더스와 맞붙어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8세기 세워졌다. 거대한 대들보와 시계탑에서 네덜란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 에이파모사 : 무료
● 말라카왕궁 : 9:00~17:30/2RM(어른기준)
● 스태이더스 : 9:00~5:30 5RM(어른기준)
(금~일요일은 21:00 까지)

■말라카리버크루즈 Melaka River Cruise

말라카 강변도 역사유적지 만큼 매력적이다. 크루즈를 타고 돌아보면 말라카의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크루즈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1시30분까지 운항한다. 어른 기준 15RM으로 저렴한 편이며, 왕복 40분 정도 소요된다. 크루즈 선상 공연이 포함된 티켓(Bot VIP/매주 일요일 20:00~13:00/30RM/어른기준)이나,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Ho-Ho Service/9:00~23:30/30RM어른기준)도 구매 가능하다. 말라카 해양박물관 앞에서 승선하면 된다. www.ppspm.gov.my

■말라카 가는 방법

인천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에어아시아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까지 이동한 후 현지에서 버스, 기차를 타면 편하다.

1. 쿠알라룸푸르 버스터미널 TBS(Terminal Bersepadu Selatan)에서 말라카행 버스 이용. 1시간45분 소요되며 매일 7:00~23:00 사이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3RM www.tbsbts.com.my
2. 쿠알라룸푸르 기차역(KL Central)에서 싱가포르 우드랜드(Woodland)행 열차(South Line)를 이용하면 된다.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에 1대만 운행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쿠알라룸푸르발 말라카행 오전 9시 출발, 2시간 30분 소요, 23RM. 싱가포르발 말라카행 오후 1시45분 출발, 4시간 소요, 38RM www.ktmb.co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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