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들어진 쇼윈도에, 높다란 쇼핑공간이 즐비한 서울에서 전통시장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가만 떠올려 보면 사대문 안팎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매시장과 골목골목 가지를 뻗은 크고 작은 시장들이 서울 전역에 똬리를 틀고 있다. 추운 겨울, 서울의 구석구석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시장 구경에 나섰다.



■정겨운;
골목골목,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

발길 닿는 곳마다 대형마트가 들어선 서울이지만 골목을 사이에 두고 상점과 난전이 오밀조밀 마주보며 들어찬 동네 언저리 마을시장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된다.

1. 통인市場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10-3
찾아가기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500m 도보 이동
영업시간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도시락 카페는
오전 11시~오후 4시), 셋째 일요일 휴무
홈페이지 tonginmarket.co.kr

유니폼을 입거나 넥타이 반듯하게 맨 양복 차림의 회사원들이 하나둘 시장통으로 들어간다. 점심시간이긴 한데 시장통에 유명 맛집이라도 있나 뒤따라가 보니 플라스틱 도시락을 들고 골목 이 끝에서 저 끝을 오가며 반찬을 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입소문을 타고 통인동 명물이 된 통인시장 도시락카페 ‘통通’ 덕분이다. 이 골목시장에는 반찬, 떡, 분식 등 유독 먹을거리 가게가 많다. 이러한 시장의 특성과 경복궁역 인근에 오피스타운이 형성되었다는 지역적인 특성을 두루 살펴 상인들이 힘을 모아 마을기업을 일군 것이다.

시장 골목 한가운데 위치한 고객만족센터 2층에 위치한 도시락카페에서 500원 단위의 통인시장 엽전을 구입하면 빈 도시락을 주는데 이 도시락을 들고 도시락카페 가맹점에서 가면 먹고 싶은 음식을 엽전으로 구매할 수 있다. 포장해서 가져갈 수도 있고 카페에서 먹을 수도 있다. “어머, 여기 떡갈비가 맛있던데 오늘은 없나 봐요.” 도시락카페 단골들의 훈수를 귀동냥하여 맛있는 반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줄도 생겨난다. 밥과 국 그리고 후식은 도시락카페에서 별도로 구매할 수 있다. 점심값 아끼려는 알뜰족은 물론 데이트 나온 연인들, 마침 장보러 나왔다 사람들이 맛있는 반찬을 골라 담는 모습에 마음이 동한 동네 주민들까지 여럿이 담아 온 도시락을 한곳에 펼치니 진수성찬 잔칫상이 따로 없다.

도시락카페 가맹점은 아니지만 통인시장의 명물 기름떡볶이도 빼놓을 수 없다. 국물 없이 볶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떡볶이라고 말하는 원조 기름떡볶이 가게 아주머니는 “시중에 떡볶이는 떡볶이가 아니야. 떡 찌개나 떡 전골쯤 되려나? 이게 진정한 떡볶이지”라며 신나게 떡을 볶아댄다.

각각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아 상점들을 꾸미고 있는 공공미술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통인시장만이 가지는 특별함을 새로이 디자인하여 멋을 낸 것인데 버리는 포장지를 모아 예쁜 모양으로 오려 만든 오브제와 채소가게 옆에 덩그러니 세워진 가스통에 배추 모양의 간판을 단 것이 재미있다. 속옷가게 문 앞에는 편안한 내복 차림의 사람 오브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저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되는 장면들이 계속되니 이 끝에서 저 끝까지 200m 남짓의 작은 시장이지만 몇 번을 오가며 숨어 있는 재미를 숨바꼭질하듯 찾게 된다.

2. 수유마을 市場

주소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54-5
찾아가기 4호선 미아역 8번 출구에서 400m 도보 이동
영업시간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홈페이지 www.suyumarket.com

“이모, 멸치 여기 쌓은 것만큼 다 주시는 거예요?” 정량보다 훨씬 더 높이 쌓아 담은 건어물을 보며 주인아주머니께 묻는다. 아주머니는 “말이라고. 예쁘니까 한 주먹 더 줄까?” 그럼 남는 게 뭐 있냐는 말에 그저 웃기만 한다. 대형마트의 쿠폰, 1+1, 마감세일 등의 마케팅 전략이 모두 전통시장의 에누리, 덤, 떨이와 같은 정과 흥의 문화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 강북구 수유마을시장은 전통시장 본래의 인심을 팍팍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시장이 꽤 크다 싶은데 공산품을 취급하는 상가형의 수유시장과 골목시장인 수유전통시장과 수유재래시장 등 3개 시장이 어우러져 크게 하나의 마을시장을 이루고 있다.

정신없이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신호를 보내 온다. 배고플 시간이 아님에도 군침 도는 먹을거리에 배꼽시계가 제멋대로 돌아가는 탓이다. 매콤한 홍어무침, 쫀득한 족발, 고소한 빈대떡, 든든한 호박죽 등등 맛보라며 한 입 권하는 시장 아주머니들의 유혹은 그래서 더더욱 물리치기 어렵다. 맛보고 사들이고 그러다 보면 두 손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봉지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부른 배를 소화시키겠다는 핑계로 시장구경은 더 길어지는데 수유마을시장 한가운데 노란색 간판이 눈길을 끈다. 수유마을 작은 도서관이다. 시장 한가운데 도서관이라니.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바쁜 상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공간이다. 이 좋은 취지에 공감한 분들의 기부와 상인들의 노력으로 제법 많은 책이 모였다. 누구나 들어와 책도 읽고 쉬었다 갈 수 있는 시장 속 문화공간으로 독서동아리, 북콘서트 등의 모임도 꾸려 가고 있다. 이 밖에 시장 곳곳에 상인과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카페 다락방, 생생클럽 등의 공간도 열어두고 있다.

생활형 시장인 수유마을시장의 소통은 말뿐인 소통과는 차원이 다르다. 핵가족과 독신들도 제대로 된 식문화를 꾸릴 수 있도록 제철 갈무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산지에서 가져온 싱싱한 재료를 시장에서 공동구매하고 함께 만들어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1월 김장을 시작으로 12월에는 고추장, 간장, 딸기쨈, 쑥버무리, 매실청, 열무김치, 오미자청, 엿 만들기가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둔감한 도시인들에게 제철의 기쁨을 선물하는 시장은 참으로 정답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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