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깊다는 역사학자 유홍준의 표현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이곳 노르웨이 피오르에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산세가 해수면과 거의 직각을 이루며 굽이굽이 이어졌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산속 작은 마을에는 사찰대신 작은 교회가 어김없이 서있었다. 신의 작품 앞에서 신음만 번지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자연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글·사진=트래비라이터 김정은,
취재 협조=노르웨이 관광청(02-773-6422)




■몸과 마음이 명료하게 깨어나다

두어 해 연속 어렵게 만든 여름휴가를 내심 서운하게 마쳤다. 세계적인 도시들에서 내독 하품을 하고 멍하니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멋진 상징물 앞에서도 시큰둥하고 줄이 긴 전시장에선 기다릴 의욕도 나지 않았다. 여행에 관한 한 공항부터 공항까지 조증에 걸린 사람마냥 들뜨는 사람에겐 퍽 당황스러운 증상이었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건 그에 대한 진단을 뒤늦게 이곳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내리게 된 탓이다. 출발 전 과로나 장거리 비행, 빡빡한 현지 스케줄 등 현실 조건은 다를 게 없는데 현장을 대하는 마음이 이토록 편안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여행도 때에 따라 다른 자극과 충전이 필요한데, 대세를 따른다며 무리해 대도시를 찾은 게 화근이었던 듯하다.

노르웨이는 복지와 행복지수, 국민소득 등의 선두주자로는 대단히 익숙한 이름이지만 여행지로 따지자면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 국민이 아는 노르웨이어가 있다. 학창시절‘기름종이’라 부르던 미농지를 사회과부도에 올리고 따라 그렸던 꼬불꼬불한 해안선, 지리 시험 주관식 문제의 정답으로 꼭 한번은 등장했던 바로 그 이름 ‘피오르fjord’가 바로 노르웨이 단어다. 사전적 정의 그대로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좁고 기다란 만을 찾아가는 길이다. 노르웨이에는 수도 오슬로부터 시계방향으로 회전해 북단의 트론하임까지 수많은 피오르가 존재한다. 그 어디를 택하더라도 후회 없는 여정을 보장하는 피오르지만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송네피오르Sognefjord나 하당에르피오르Hardangerfjord를 추천한다.




■피오르에 몸을 맡기다

미르달Myrdal역에서 플램 산악 열차에 탑승했다. 산악 지역 주민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1923년 건설을 시작한 이 구간의 철길은 무려 20년 만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르달에서 플램까지는 20km에 불과하지만 해발 차가 860m에 달한다. 과장을 보태면 굽이굽이 산새를 거의 수직으로 내려가는 셈이다. 각종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라 찬사를 보낸 곳답게 열차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가히 환상적이다. 기차는 숱한 터널을 지나며 지그재그로 회전하느라 천천히 달리는데 비해 객차 안 다국적 승객들은 왼쪽과 오른쪽 창문을 오가느라 분주하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하는 승객들을 위해 중간에 5분간 정차 구간이 있다. 해발 699m에 있는 청명한 쿄스포센Kjosfossen폭포 앞에서 잠시 내려선 여행자들이 숨을 깊게 들이킨다.

해발 2m 플램역에 도착하면 지나온 산세가 꿈이었나 싶게 몽환적이다. 역에서 두리번거리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이 프레타임Fretheim호텔이다. 인구 500명 남짓의 이 조그만 마을의 상징적 존재이자 ‘피오르 사파리’를 즐기는 이들의 구심점이다. 19세기 말에 스위스 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은 피오르를 찾아오는 여행자가 증가하면서 시설을 확장해 현재는 전통과 모던 객실 중에서 선택해 머물 수 있다. 하지만 모던 스타일 객실도 삼각 지붕과 목조 가구 등 산골 별장의 푸근함을 감출 수 없다. 전통을 중시하는 마을답게 노르웨이 고어를 포함한 독특한 책을 소장한 자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훈제용 스모킹룸이 남아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제 드디어 피오르, 그 물에 몸을 맡길 차례다. 구명조끼를 겸하는 큼직한 방한복을 입고 배에 오르는 마음이 자못 두근거린다. 놀랍도록 잔잔한 물 위로 미끄러지듯 배가 나아가면 좌우로 우뚝 솟은 절벽의 단면이 펼쳐진다. 이것이 100만 년 전 중압을 견디지 못한 빙하가 조금씩 계곡으로 흘러들면서 형성된 피오르다. 배가 속도를 높일수록 절벽과 천연 스키 슬로프, 얼음과 폭포, 마을 등이 나타났다가 배 뒤편으로 사라진다. 머리 위에는 천사의 머리띠 마냥 구름이 살포시 걸려 있고, 가까운 산을 지나치기 무섭게 앞으로 더 많은 산들이 나타난다. 플램에서 출발한 배가 닿는 이곳은 풍광이 특히 빼어난 네뢰피오르와 아울란피오르로 노르웨이 최대 피오르인 송네피오르드의 지류다. 물 위를 날 듯 달리노라면 서울에서 가져온 문젯거리들은 어느새 툭툭 바다 밑으로 털어버리게 된다. 6월부터 8월까지는 보다 다양한 피오르 사파리 구간과 시간이 준비된다니 원하는 루트를 선택해 즐기는 호사도 부릴 수 있다.

육지에 발을 딛고 다시 펼쳐본 노르웨이의 지도는 배를 타기 전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릇을 망치로 산산 조각내면 이런 모양이 될까. 잘게 부순 조각들을 퍼즐처럼 곱게 펼친 사이사이로 가느다란 바닷물이 스며든 셈이다. 이처럼 노르웨이의 주인공은 단연 대자연이다. 하지만 이 자연이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건 이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노르웨이 사람들 덕분일 게다. 보기에 따라선 더없이 척박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동시에 즐기고 또 사랑하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매일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상이 풍요로운 노르웨이의 도시들

노르웨이의 대자연 앞에서 가슴 속 고민들을 툭툭 털어냈다면 이제 발길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 도시로 향할 차례다. 거리의 소음과 불빛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복닥복닥한 대도시는 피로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최대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 노르웨이의 도시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대도시의 편견에서 모조리 비껴나간다.




▶오슬로 OSLO 불황을 모르는 노르웨이의 심장

오슬로는 노르웨이 제1의 도시이자 수도지만 숨 막히는 인파나 위압적인 마천루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이곳 오슬로에는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런던의 빅벤 같은 상징물로 연결되는 장소나 건축물이 없다. 그래서 순위 놀이에 익숙한 관광객들은 오슬로의 지도를 펼치고 잠시 머뭇거린다. 그런 서열을 매기기에 오슬로는 대단히 수평적인 도시다.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현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300개가 넘는 호수와 200여 개의 공원이 있는 오슬로에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 같다. 그래서 오래도록 오슬로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로 유럽 전역에 알려져 왔었다. 한데 최근 몇 년 사이 오슬로는 이런 자연 위에 깊은 예술적 색채를 덧입고 있다. 오슬로 시정부가 펴낸 2013년 가이드북에서 안내하는 52개의 어트랙션 중 대부분이 ‘뮤지엄’ 등 예술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 규모를 생각해보면 대단한 비율이다. 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이런 예술 공간이 여행자를 위한 벅적지근한 명소가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공간이란 사실이 흥미롭다. 매일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일상에 여행자가 슬쩍 발을 들여놓는 셈이라고 할까.

실제로 만만찮은 무게의 예술가들이 이곳 오슬로를 배경으로 삶과 예술을 고민했다. 화가 에드바드 뭉크Edvard Munch와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Gustav Vigeland, 그리고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등이 대표적이다. 특별히 올해는 뭉크의 탄생 150주년으로 오슬로 전역이 떠들썩하다. 이를 기념해 뭉크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은 특별전 준비가 한창이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어머니와 형제들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봐야 했던 뭉크는 불안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격렬한 색감과 왜곡된 형태로 표현해냈다. 가시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숱한 미술 작품들과 다르지만 그의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내면인지도 모른다. 6월 2일부터 시작되는 뭉크 특별전은 1903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작품들은 국립박물관에서, 이후 작품들은 뭉크 박물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특별전은 오는 10월 13일까지 계속되며 6월 전에 도착하는 여행자를 위해선 국립박물관 1층에 전시된 <절규> <마돈나> <아픈 아이> 등의 작품이 위로를 건넨다.

오슬로의 햇살을 만끽하기 가장 좋은 곳은 도심의 북서쪽에 위치한 비겔란 조각 공원이다.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특유의 섬세함으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작품 200여 점이 정문에서 후문까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작업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탑 모양의 <모노리스Monolith>. 제작 기간이 13년이나 걸린 것으로 전해지는 이 대작은 121명의 남녀노소가 위로 올라가려 애쓰는 모습이다. 혹은 태어나 성장하고 늙는 인생을 표현했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어찌되었든 조급증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앞에서 잠시 서성이게 될 것이다. 이 공원에서 시선과 마음을 훔치는 것은 비단 비겔란의 작품뿐이 아니다. 이 공원에선 오슬로 시민들의 행복한 일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들이 작품 주변을 뒤뚱거리며 오르내리고, 학생들은 야외 학습을 나왔는지 잔디밭에 편하게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데 여념이 없다. 저만치에선 그보다 조금 큰 아이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율동을 맞추며, 또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햇살을 즐기며 담소 중인 노년들도 보인다. 남은 일정을 모두 물리고 그들 곁에 섞여들어 여유를 부리고 싶은 순간이다.

2008년 개장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에서 드물게 호들갑스런 화제를 낳았던 곳이다. 설계자 스뇌에타의 유명세나 대리석과 화강암,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 시설 등의 호사스런 부연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노르웨이의 상징인 피오르를 형상화한 구조는 이방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지붕 위에 서게 되는 독특한 구조의 오페라하우스는 유리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 시설만큼 바다를 향한 전망도 아름답다. 여름 기운이 더 완연해지면 오슬로 시민들은 이곳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발레와 오페라 등을 만끽할 게다.

오페라하우스 인근인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에 이르는 칼 요한슨 거리가 오슬로 최대 번화가다. 이 번화가를 중심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시청사와 수상 만찬이 열리는 그랜드 호텔, 그리고 국회의상당과 오슬로 대성당, 국립극장, 입센 뮤지엄 등이 조밀하게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매년 12월 오슬로는 노벨평화상 수상식으로 혼잡해진다. 헛갈리는 이들을 위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평화상을 제외한 여타의 노벨상은 모두 스웨덴에서 시상식이 진행된다. 오직 노벨 평화상만 이곳 오슬로에서 진행된다. 그 까닭을 두고는 설이 분분한데, 이유야 어찌 되었던 매년 세계 평화에 공헌한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임은 분명하다. 시청사를 서성이면서 문득 13년 전 이곳을 찾았던 우리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나는 것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명색이 수도인데 조금은 더 왁자한 자극을 원한다면 도심 북동쪽에 위치한 마탈렌(Mathallen)을 추천한다. 마탈렌은 오래 전 건축자재 공장과 타이어 공장을 거친 뒤 방치되었던 낡은 건물을 레노베이션해 음식 백화점으로 살려낸 ‘잇 플레이스’다. 과거 공장의 골재를 상당 부분 살리고 배관을 드러내 미완성의 맛을 내면서 높은 층고와 통유리를 배치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3층 구조물인데 1층에 30여 개 상점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2·3층은 테두리에만 독특한 성격의 업장을 배치했다. 산업시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나 다채로운 음식의 변주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뉴욕의 첼시 마켓이 떠오른다. 각각의 가게들은 좋은 품질의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한데 실제로 이곳은 오슬로에서 가장 신선한 노르웨이와 유럽산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고 한다. 또 요리강습과 실습, 또 푸드 페어 등 음식에 관한 다양한 행사도 진행 중이다.






▶TRAVEL INFO

항공
대한항공에서 국내 최초로 서울-오슬로 구간 직항 전세기편을 운항한다. 5월 25일부터 6월 22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5회 출발한다. 한진관광에서는 이 항공편을 이용해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을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다. 핀에어, KLM 등 유럽행 항공사 대부분이 1회 경유로 오슬로까지 매일 연결한다.

언어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이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1~ 2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데 익숙하다. 영어가 가능한 여행자라면 노르웨이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겪을 일은 거의 없다.

전기
220v이며 유럽에서 드물게 한국과 소켓 모양도 동일하다.

화폐
노르웨이 크로네(Krone)를 사용하며 줄여서 kr로 표기한다. 1크로네가 한화 약 200원에 해당한다. 유로화는 통용되지 않는다. 여행자가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대단히 높다. 베르겐의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12,000원, 편의점에서 구입한 생수 한 병이 약 6,000원 이었다.

날씨
북유럽을 여행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백야가 시작되는 6월부터 10월 초까지는 노르웨이 여행의 황금시즌이라 할만하다. 일조량이 높아짐에 따라 기온도 빠르게 올라가지만 건조하기 때문에 불쾌지수는 낮은 편이다.

음식
바이킹의 후예답게 생선을 즐겨 먹는데 식탁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메뉴가 대구와 청어, 연어 등이다. 이와 더불어 빵과 감자의 소비량이 높다. 농지 비율이 낮기 때문에 야채나 과일의 생산량이 미미하다. 대신 목축업이 발달해 버터와 치즈 등 유제품의 품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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