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건축과 전략, 두 거장과의 대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MBS)가 7월15일 ‘울트라 럭셔리 개발 프로젝트(IR2)’의 기공식을 열고 제2막의 시작을 알렸다. 총 80억 달러(한화 약 11조원)가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라스베이거스 샌즈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이자, 단일 호텔 단지 개발로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스케일이다. 2030년 완공 예정인 이 프로젝트에는 전 객실이 스위트룸인 55층 규모의 새로운 타워와 1만5,0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 ‘아레나’가 들어선다. MBS는 이번 개발을 통해 단순한 숙박 공간을 넘어 도시의 문화·예술·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다.
■사프디, 또 한 번 MBS를 그리다
모쉐 사프디 Moshe Safdie 사프디 아키텍츠(Safdie Architencts) 설립자
기존 MBS를 탄생시킨 거장, 건축가 모쉐 사프디가 다시 펜을 들었다. 그에게 MBS의 다음 장면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 오기 전에 신규 프로젝트의 조감도를 봤어요. 기존 타워들과 동떨어져 있는 새로운 타워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더라고요.
기존 MBS의 상징인 스카이 파크는 타워 1, 2, 3을 이어 줬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이번엔 새 건물을 스카이 파크와 연결하지 않았냐고요. 실제로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 대신 두 개의 부메랑이 소용돌이치듯 곡선을 그리며 수직으로 뻗는 구조로 설계했어요. 다양한 층들이 나선형으로 이어지며 위로 솟구치죠. 덕분에 새로운 타워는 마치 느낌표(!)처럼 독립적으로 서게 됩니다.
-그렇게 설계한 이유는요?
사실 이번 프로젝트를 두고 모두가 걱정했던 점이 있었어요. 새로 짓는 건물이 기존 MBS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독창적인 기존 디자인을 해치진 않을까? 싱가포르 도시계획청(URA)에서도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할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전 이번 프로젝트가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되, 전체 단지 안에서는 ‘하나의 가족’처럼 어우러지길 바랐습니다. 같은 철학과 정신을 공유하되 각자의 개성을 지닌 형제자매 같은 존재랄까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이란성 쌍둥이처럼요.
-그럼 둘 사이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둘은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면에서 달라요. 기존 MBS는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을 지녔죠. 위로 탁 트인 아트리움 구조는 마치 도시 속의 실내 광장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요. 자연스럽게 쇼핑몰과도 연결돼 있고요. 말하자면 ‘공공 영역(Public Realm)’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죠. 반면, 이번에 새로 지어질 시설은 훨씬 더 내향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슈퍼 럭셔리 유닛들로 구성돼 있고, 공간도 훨씬 더 프라이빗하게 설계됐어요. 모든 것이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로비는 없고, 대신 각 공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키워드가 ‘울트라 럭셔리’잖아요. 건축가님이 생각하시는 ‘럭셔리’란 무엇인지 궁금해요.
럭셔리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경험의 밀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그 출발점은 객실 크기죠. 새로운 타워의 가장 작은 객실조차 100㎡(약 30평)가 넘고, 테라스는 물론 전용 수영장과 대형 정원을 갖춘 최상급 스위트룸도 마련될 거예요. 공용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9층에는 세 개 층에 걸쳐 수영장과 카바나가 펼쳐지고, 루프톱에는 두 층 규모의 레스토랑이 들어서요. 객실, 로비, 공용 공간의 디자인도 매우 정교하게 설계됐고, 자재 하나까지도 신중히 선택했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공간을 더 고급스럽고 독점적인 경험의 무대로 만들어 줄 거예요.
-그런 입체적 구성이 머무는 이로 하여금 ‘내가 특별한 공간에 있다’는 감각을 선사해 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진정한 럭셔리는 넓은 객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이 가능한지를 정교하게 설계한 전체의 조합이라고 봅니다. 결국 객실을 중심으로 게스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경험이 어우러지는 게 핵심이죠.
-MBS의 상징이 된 인피니티풀처럼, 이번 개발에서도 아이코닉한 장면이 탄생할까요?
저는 이번 프로젝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 건물이 싱가포르의 다른 위치에 단독으로 세워졌더라도, 그 자체로 매우 인상적이고 상징적인 건축물이 됐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 개발의 진짜 목표는, 기존 MBS와의 조화를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거였어요. 각각 따로 봐도 훌륭하지만, 함께일 때 훨씬 더 강렬한 경험이 되기를 바라요. 도시의 스카이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기존 MBS만 있을 때보다, 두 프로젝트가 나란히 존재할 때 훨씬 더 큰 시각적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겁니다. MBS가 지금은 하나의 아이콘이라면, 앞으로는 ‘아이콘들의 가족’으로 발전하길 기대하고 있어요.
■150억 달러어치의 확신
패트릭 두몽 Patrick Dumont 라스베이거스 샌즈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MBS를 향한 투자, 그 방향키를 쥔 패트릭 두몽 COO의 시선은 늘 오늘보다 내일을 향한다.
-80억 달러라니…, 투자 규모에 일단 놀랐습니다.
액수가 꽤 크죠?(웃음) 이번 개발이 완공되면 라스베이거스 샌즈가 2010년 이후 싱가포르에 투자한 금액은 총 150억 달러를 넘게 돼요. 이번 개발은 단순한 확장이 아닙니다. 싱가포르가 관광지로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결정된 전략적 투자예요. 싱가포르는 비즈니스, 관광, 레저 모든 면에서 매우 하이엔드한 시장이고, 이번 개발 역시 그런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며 더 많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리라 생각합니다.
-‘울트라 럭셔리’란 표현에 걸맞는 경험도 가능해질까요?
물론이죠! 새로운 타워는 전관이 오직 스위트룸으로만 구성돼요. 완공되면 MBS는 기존 타워들과 합쳐 총 약 1,345개의 스위트룸을 운영하게 되죠. 이는 어떤 호스피탈리티 브랜드에게도 매우 인상적인 규모예요. 아직 논의 중이긴 하지만, 전 객실에 전용 테라스와 정원도 마련할 계획이에요. 고객들은 객실 안에서도 싱가포르가 추구하는 ‘자연 속의 도시(City in Nature)’라는 정체성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새로 생길 아레나의 설계 또한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요즘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은 단순히 공연을 ‘보는’ 걸 넘어서죠. 관객을 초대해 관계를 쌓고 유대감을 맺는 하나의 비즈니스 사이클로 작동하니까요. 아레나는 그런 역할까지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거예요. 공연에서 무대 위 아티스트와 관객이 진짜 교감을 나누는 순간들 있잖아요? 그런 특별한 장면이 가능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최첨단 기술을 담는 건 기본이고요. 무엇보다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에 감정적 교감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분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현재 MBS에도 공연장이 있지 않나요?
샌즈 시어터(Sands Theatre) 말씀하시는 거죠? 약 2,000석 규모로, 지금까지 훌륭한 공연들을 많이 선보여 왔죠. 하지만 새롭게 들어설 아레나는 무려 1만5,000석 규모예요.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이 거대한 공연장은 글로벌 톱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유치할 수 있는, 아시아 최고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겁니다. 콘서트, 스포츠, 대형 이벤트까지 모두 아우르며 훨씬 더 많은 이들이 MBS를 찾게 되겠죠. 쇼핑몰과 박물관 등 기존 인프라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MBS는 이제 ‘문화 플랫폼’으로 한층 더 진화하게 될 거예요.
-이런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녹여 내고 계신가요?
지속가능성은 라스베이거스 샌즈의 핵심 전략 중 하나예요.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서도 최고 수준의 럭셔리를 유지하겠다는 게 우리의 방향성입니다. 그래서 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효율 기술과 친환경 자재, 자연을 품은 바이오필릭(biophilic) 디자인 요소를 적극 반영하고 있어요. 건축 자재로는 저탄소 콘크리트와 재활용 철강 같은 소재들이 사용돼요. 건설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약 75%는 재활용하거나 선별 처리해 매립량을 최대한 줄일 계획이에요.
-들을수록 6년 뒤 완공될 새 프로젝트의 모습이 기대되네요.
MBS가 2010년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사실 아직도 비교적 새 리조트잖아요? 그럼에도 이번 대규모 개발을 통해 브랜드와 자산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꾀하고자 했어요. 싱가포르, 나아가 아시아 지역에서 최고의 럭셔리 호스피탈리티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결정이죠. ‘울트라 럭셔리 관광’의 새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기도 하고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행자들 모두에게 훨씬 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싱가포르 글·사진=곽서희 기자 seohee@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