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아의 여행과인문] 여권과 싸가지

작성자 여행신문 작성일2017-08-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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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과 8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분주한 곳은 공항이다. 7월16일부터 8월15일사이 한달간의 성수기 기간에만 542만명 이상이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할 예정이다. 2016년 인천공항 이용 여객 수는 약 5,700만명으로, 향후 2터미널 개항 시 7,200만명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공항을 오가는 이 많은 사람들의 인종, 성별, 출신지는 달라도 누구하나 예외 없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여권이다. 혹시 여권 커버의 색이 몇 개나 있는지 세어본 적이 있는지? 여권 커버의 색은 빨강, 초록, 파랑, 검정 이 4가지뿐이다. 이 4가지 색에서 채도만 바뀔 뿐이다. 

세계적으로 여권 커버의 형식과 색깔을 규정하는 법은 없지만, 종교, 정치, 지리 특성에 따라 자연스레 색상이 나뉜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대부분 여권이 붉은색이다. 터키의 경우 EU 국가는 아직 아니지만, EU 가입 소망을 담아 여권 커버 색을 붉은색으로 바꿨다고 한다. 북미, 남미, 캐리비안 지역, 오세아니아 국가들은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파란색을 여권 커버 색으로 쓰고 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을 비롯해 사회주의 국가 또는 전 공산주의 국가의 여권 커버 역시 빨간색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초록색이 자연과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혹은 무함마드가 좋아하는 색이라 초록색을 여권 커버 색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붉은색 여권 커버를 사용하는 나라는 68개국, 초록색은 43개국, 푸른색은 78개국, 검은색은 9개국이다. 

여권에는 나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기재돼 있다. 출생증명서처럼 오직 ‘생물학적인 나'에 대해서만 적혀 있다. 이름과 국적,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로 이 또한 4가지다. 

사람이 예의나 개념이 없는 경우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쓴다. 어감이 격하니 ‘네 가지가 없다.’는 말로 완곡하게 쓰기도 한다. 역시나 4가지의 다른 표현이다. 싸가지는 ‘싹'+‘아지'를 합한 말로, ‘싹'은 말 그대로 풀 같은 것의 싹이고, ‘아지'는 ‘새끼'를 뜻한다. 따라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작은 싹도 없다.' 즉 ‘가망이 없다.’ 또는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여권은 우리나라 밖에서 자신의 국적과 신분을 증명하는 국제 신분증이다. 일단 출입국관리소 안으로 들어오면 연예인이든 재벌이든 모든 사람에 대한 기록은 이 4가지 정보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이 리셋(reset)된다. 회사에서의 평판이나, 가족관계, 학력 등 나의 삶을 만들어온, 내가 쌓아온 환경과는 무관한 오롯이 생물학적인 나, 최소한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권 상 영문 이름의 철자 하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권은 출생증명서와 별 다를 게 없다. 
여권 커버의 색이 4가지인 것, 그 안에 담긴 정보가 4가지 인 것, 그리고 ‘가망, 희망이 없다’는 말을 ‘싸가지, 네가지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물론 우연이겠지만, 어렴풋한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는데 공항에는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로 점점 넘쳐난다. 여행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태어난 것 처럼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겠지? 그럼 자연히 싸가지, 즉 희망도 함께 늘어날게 분명하다. 
 
 
 
박재아
인도네시아관광청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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