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신화와 함께 성장한 도시 구미. 
그러나 여행에 있어서 구미는 미지와 미개발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알아 가는 재미가 남달랐던 도시. 그 꼬리와 몸통에 대한 이야기.
 
구미 문성(들성지) 생태공원은 여름이면 연꽃이 가득 피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1.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 2.구미 나들목을 지나면 보이는 예스구미 타워. 예스YES는 Young(젊
음), Electronic(전자), Satisfaction(만족하다, 소원성취)의 첫 글자들이다
 
 
구미龜尾 | 조선시대 영남대로가 지나갔을 정도로 교통의 요지였던 구미는 공단이 들어서면서 국가 차원의 수출 산업기지로 전략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곳이다. 도립공원인 금오산을 남쪽에 끼고 있으며,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시를 관통하고 있다. 인구 2만의 소읍이었던 구미는 1978년 시로 승격됐으며 현재는 42만명의 인구가 2개의 읍, 6개의 면, 19개 동에 살고 있는 젊은 도시다.
 
낙동강을 따라 조성된 동락공원에서는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국내 내륙 최대의 공업도시인 구미시 전경
박정희 생가
 

●영광의 꼬리들에 대하여 
구미에 달린 꼬리들

구미를 다녀왔다. 거북이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구미龜尾라고 불리는 땅. 그러나 그 이름의 연원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날 구미가 선산군에 속한 작은 면에 불과했다면 지금의 구미는 선산군을 자신의 영역으로 흡수해 버린 인구 42만의 시가 됐기 때문이다. 거북이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성장이다. 그 사이에 구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구미에 달린 꼬리표를 하나씩 살펴보자. 가장 최근에 반짝이는 꼬리표는 황치열이라는 이름이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톱Top 5에 오를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그가 유년을 보냈고,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도시가 바로 구미다. 또 다른 방송 <나 혼자 산다>에서 소개된 황치열의 구미 맛집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늘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러다 구미가 요우커들의 성지가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 찬 전망을 쏟아냈지만 어쨌든 산업도시로만 인식되던 구미가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회자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구미가 배출한 인물들의 왕좌가 바뀔 전망은 없다. 구미의 두 번째 꼬리는 박정희 전前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쓰러질 듯 가난했던 초가집을 새로 지어 복원을 해 놓았고, 그 가난을 보상하듯 수년째 대규모 공원화가 진행 중이다. 구미 최고의 관광지이자 순례지가 되어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고향이기에 가능한 신화적인 이야기와 복잡한 감정들이, 늘어나는 터만큼 더 커지고 있다. 

구미에 달려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꼬리표는 한국의 경제개발을 이끈 공업도시라는 것이다. 1969년 낙동강이 싣고 온 개펄만 쌓여 있던 공유수면(지금의 공단동)에 공단이 들어섰고, 구미의 운명도 크게 굽이치기 시작했다. 소득과 인구가 늘어나자 구미는 1978년에 읍에서 시로 승격됐고, 지금도 국가산업단지의 확장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최초로 인터넷 연결이 성공한 장소도 1982년 구미의 전자기술연구소KIET였을 정도로 구미는 중요한 첨단지식산업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경제 흐름에 따른 수출증감과 대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으로 부침이 크지만 현재 구미 공단은 4단지 확장과 5단지 건설이 진행 중이다. 
 
도리사 서대 전망대에 서면 낙동강 너머 선산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고려시대 지어진 도리사 화엄석탑과 극락전
 

●묵호자墨湖子가 구미에 간 이유 
신라 최초의 사찰을 찾아서

역사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에 문화유산 해설사님의 첫 질문이 ‘불교로 할까요? 유교로 할까요?’였다. 하루 일정으로는 둘 다 돌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불교를 먼저 선택한 이유는 아도화상* 때문이었다. 누구나 익숙하게 들어 봤을 아도阿道는 묵호자墨湖子와 동일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구미에 전해지는 숱한 ‘전승’의 주인공이다. 옛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불교가 신라의 국교로 공인된 527년법흥왕 14년보다 100여 년이 앞선 시점이고 주요 무대는 도리사, 대둔사 그리고 모례장자샘이다. 이야기는 도리사를 향하며 계속됐다. 

도리사는 4.7km에 이르는 드라이브 코스가 끝나는 해평면 냉산태조산의 7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절터로 정한 사람이 바로 아도화상이다. 어느 겨울날 냉산자락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세운 사찰이 418년눌지왕 2년에 세워진 신라 최초의 가람인 도리사다. 복숭아 도桃, 오얏 리李자를 써서 도리사桃李寺라 불렀다.  

절은 깊은 솔숲에 안겨 있지만 다행히 주차장까지 잘 닦인 포장도로다. 차에서 나오니 향기로운 솔바람이 코끝에 먼저 걸렸다. 돌아서니 늘씬한 소나무들의 시원한 자태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다. 소나무 사이의 벤치들이 객석이 되고, 주차장은 무대로 바뀌는 솔바람음악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했다. 

솔숲 못지않게 위용을 자랑했을 원래의 도리사는 많은 사찰이 그러하듯 화재1677년로 인한 소실과 이전1729년 등을 거쳐 지금은 산내암자였던 금당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산사에 온 손님을 가장 먼저 반겨 주는 것은 역시 아도화상이다. 예불을 드리면 병을 낫게 해 준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그가 좌선을 했다던 바위도 남아 있고, 그 옆에는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였던 모례장자, 아도화상의 아버지 아굴마, 어머니 고도녕의 이름들이 당우에 새겨져 있었다. 알수록 보이는 것이 많아졌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극락전과 도리사 화엄석탑에도 눈길이 머물렀다. 

도리사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것은 새로 지은 사리탑과 적멸보궁이다. 1977년에 조용했던 도리사에 큰 사건이 있었다.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도리사의 부도탑에서 세존 진신사리가 담긴 금동육각사리함국보 208호이 발견된 것. 드물게 육각 형태를 지닌 8세기 중엽 조선시대 사리함이라 바로 국보로 지정됐다. 당시 발견된 사리를 모시기 위해 1987년에 새로 만든 것이 지금의 석가세존사리탑이고, 그 탑을 잘 참배할 수 있도록 큰 창을 내어 지은 것이 적멸보궁이다. 

*아도화상 | 고구려 승려인 아도는 포교의 뜻을 품고 서라벌로 갔다가 배척을 당했고 천신만고 끝에 일선현(지금의 선산)에 살던 모례라는 장자長者, 큰 부자의 집으로 피신해 굴을 파고 숨어서 포교했다고 한다. 3년간 삯도 받지 않고 머슴살이를 한 아도는 모례장자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그의 시주로 도리사를 창건할 수 있었다. 
 
 
대둔사 대웅전과 그 안에 모셔져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다시 주차장으로 나오니 문화유산해설사님의 손짓이 바쁘다. 그를 따라 작은 오솔길로 접어드니 예상 못했던 전망이 펼쳐졌다. 낙동강과 멀리 구미시의 해평면과 선산들, 낙동강 너머 황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대에 서서 시원한 바람,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고 있자니 산사 음악회가 열릴 즈음 도리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싶어졌다. 그런 감상을 가로지른 것은 다시 해설사님의 손가락이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 끝에 김천 황악산의 직지사가 있다는 것이다. 아도화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절을 세웠다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불리는 사찰이다. 현재 도리사의 금동육각사리함이 직지사의 성보박물관에 위탁 전시되어 있다. 

산사의 해거름이 빨라지고 있었다. 직지사의 말사인 대둔사大芚寺에 잠시 들르기 위해 차를 북쪽으로 몰았다. 대둔사 역시 아도가 446년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몽골 침략을 포함해 여러 차례 무너졌기에 가장 오래된 전각이 17세기 말에 지어진 대웅전이다. 대웅전에 들어가 고려 시대 만들어진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1633호을 보고 나오니 마당 한켠에는 1666년에 세워졌다는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대웅전 옆 명부전 안에는 1714년에 그렸다는 탱화 유명도幽冥圖가 있다지만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꽃을 그냥 지나칠 수야 있나. 대웅전의 창호에 새겨진 빗꽃살 무늬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하나하나 문양이 다 다르다. 그러고 보니 처마를 받치는 구조물인 공포에도 온통 꽃천지다. 멀리서 보면 다 똑같지만 가까이 보면 다 다르다. 마치 사람이 그러하듯. 
사실 대둔사를 찾아가는 길도 온통 꽃길이었다. 시골길에서 갑자기 등장한 벚꽃터널은 최고의 일주문이었다. 아도화상이 복사꽃, 배꽃이 피는 자리에 절을 세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겨울에도 꽃을 피워내는 자리라면 사람도 불심도 건강하게 피어날 수 있을 터. 바로 그 증거가 물 좋고, 터 좋은 구미의 도리사와 대둔사였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구미시청, 엄권열  취재협조 구미시청 www.gumi.go.kr
 
*직지사 | 절을 중건할 때 능여가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측량해서 직지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리사 템플스테이
산사에 머물면서 타종, 예불, 운력, 108배 등을 경험하거나 속세를 떠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데 비용은 1박 2일을 기준으로 성인 5만원, 청소년 3만원이다. 
경북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054 474 3877  
www.dori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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