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 칼럼]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설
[게스트 칼럼]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설
  • 김연경
  • 승인 2019.05.1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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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프로맥 파트너쉽 이사 

꽤 오래전 일이다. 전세계 국가 관광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2020년에 대한 관광 전망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기관 사이트에 대대적으로 이 보고서를 올리기도 하고 상당한 예산을 들여 책자로 인쇄해 자국 국민들은 물론 관광업계와 해외 협력업체에 배포하기도 했다. 보고서 내용은 마치 선거중인 정치인들이 내세우던 공약과 비슷했다. 


그동안 펼쳤던 정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보여주는 각종 통계 지표와 분석이 제시되고, 정책 방향이 나열됐으며, 관광이야말로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결론이 담겨 있었다. 


앞서 소개한 그 보고서의 예측은 2020년이 거의 다가온 지금의 상황에 비춰보면 맞지 않은 것이 더 많다.  관광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전통 관광산업에서 벗어난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며, 다양한 여행 플랫폼이 등장하고, 콘텐츠 생산 방식이 지금처럼 다양해질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보고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오버 투어리즘이다. 


관광이 거대한 산업으로 인정받고 정부가 예산을 쓰면서 모든 것은 관광객 증가와 그로 인한 관광산업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관광이 얼마나 지역경제와 고용창출에 기여하고 경제적 혜택을 가져오는지 소리 높이 외쳤으며, 그래서 외국 관광객들에게 미소 지어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고 교육했다. 국가마다 방문의 해를 선포하며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이 이어졌고 그 덕분에 관광객이 몰려오면 흐뭇한 모습으로 성공을 축하하곤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행객들을 반기지 않고 오지 말라는 시위를 하다니 해당 여행지의 관광 정부 기관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단 한 번도 현지인이 해외 방문객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상이 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오버 투어리즘은 수 백만명의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베니스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심리적인 오버 투어리즘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대표적이다.  다녀온 사람들이 쓴 책을 보면 대부분 인생이 바뀌었다는 감격적인 얘기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적은 순례자의 책을 읽게 되었다. 거기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마을 주민들은 순례자들에게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게 반기지도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포도 농장을 하던 주민은 순례자들이 걸어가다가 무심코 포도 1~2알을 따먹은 탓에 그 해 자기 포도의 상당부분이 사라졌다고 분노를 토했다. 800km가 넘는 장거리 구간에는 순례자용 공공 화장실이 없다 보니 각자 적당한 곳에서 급한 용무를 해결해야 한다. 이로 인해 한적한 숲 속과 길에는 오물과 휴지가 곳곳에 널려져 있어 미관은 물론 위생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산티아고를 걸은 순례자들의 인생이 정말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는 그들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삶이 바뀌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북촌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에 정부기관들이 관광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여행자 눈높이만 따라 가던 정부들이 주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덕분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오버 투어리즘이 가장 심각한 유럽 정부 기관에서 감지된다. 베니스 시가 시작한 ‘Respect Enjoy Venice’ 캠페인도 그런 변화의 일부다. 베니스 여행자들에게 일련의 금지 사항과 제안된 행동들을 제시해 주민들을 배려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도 있다. 유럽의 한 관광청은 주요 관광 도시에 있는 각 건물과 출입구, 주차시설, 도로 상황, 화장실은 물론 심지어 건물 리셉션 층에 있는 가구까지도 점검하고, 각각 등급을 부여한다. 현지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도 등급 심사에 포함된다. 등급에 따라 어떤 시설을 보완하고 해결해야 할지를 결정하며, 그에 따라 예산을 편성해 아예 시설을 보완하거나 교체하기도 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관광 복지 분야가 관광기관의 정식 업무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런 접근은 주민들에게 관광 혜택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오버 투어리즘은 관광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그곳을 방문하는 여행객 사이에 건전한 균형이 가능한가? 살기에 좋고, 비즈니스 하기에 더할 나위 없으며 여행하기에도 최고인 곳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change)의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탈바꿈 해야 하는 인식의 변혁 (transform)이 필요하다.      

 

김연경
프로맥 파트너쉽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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