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누 한 척으로 해류와 바람을 거슬러 새로운 섬을 정복한 영화 주인공 '모아나'처럼 태평양 사람들에게는 외유내강의 태도가 베어있다 ⓒ사모아관광청
카누 한 척으로 해류와 바람을 거슬러 새로운 섬을 정복한 영화 주인공 '모아나'처럼 태평양 사람들에게는 외유내강의 태도가 베어있다 ⓒ사모아관광청

중국의 사드 보복과 일본과의 반도체 전쟁 등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관광이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체득하고 있다. 관광이 애국으로도 연결되는 시대, 이제 태평양 지역으로도 눈을 좀 돌렸으면 한다. 흔히 태평양은 망망대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전문가용 세계지도가 아니면, 이 지역을 정성스레 그려 넣은 지도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태평양이라는 지역에는 무려 14개의 나라가 있다. 중국, 일본, 미국처럼 각각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 말이다. 지금부터 아직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이 지역의 가치를 하나씩 풀어 놓으려 한다. 천기누설에 버금 가는 ‘몰라서 몰랐던 태평양’ 연재를 시작한다.

영화 모아나 포스터
영화 모아나 포스터

●미·중·일보다 힘이 센 태평양


14개의 태평양 도서국을 알파벳 순으로 열거하면 ▲쿡 제도 ▲피지 ▲키리바시 ▲마셜제도 ▲마이크로네시아 연방 ▲나우루 ▲니우에 ▲파푸아뉴기니 ▲팔라우 ▲사모아 ▲솔로몬제도 ▲통가 ▲투발루 ▲바누아투이다. 이들은 각각 독립적인 섬나라(도서국)로, 영토와 인구는 작지만 국제사회에서 태평양 도서국의 영향력은 미국, 중국, 일본보다 강하다.


유엔 총회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이뤄지는 투표에서 미국도 1표, 중국도 1표, 일본도 1표를 행사하지만 태평양 도서국은 무려 14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아세안 10개 국가들과 달리, 태평양 14개국은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한 가족처럼 움직이는 편이다. 국제적인 영향력이 커져가는 우리나라에게는 가장 중요한 표밭인 셈이다.

태평양은 마지막 남은 해양자원의 보고다
태평양은 마지막 남은 해양자원의 보고다

●미국과 중국이 공 들이는 태평양의 잠재력


태평양(Pacific)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다. 지구 표면의 1/3을 차지하며, 표면적은 1억8,000만km²에 달한다. 모든 대륙을 합친 것보다 넓다. 태평양에는 약 2만5,000개 이상의 섬이 있으며, 망간, 코발트, 니켈 등의 해양광물자원이 대량으로 묻혀있어 마지막 남은 해양자원의 보고라 평가받는다.


시진핑 주석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향해 “태평양은 매우 넓어 중국과 미국의 이익을 모두 담을 수 있다”며 태평양을 향한 야심을 드러낸 것이 미국이 단숨에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아시아 회귀전략'이 등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1일 ‘인도-태평양 구상(Indo-Pacific Initiative)'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태평양을 중심으로 대 놓고 중국과 맞불 놓기를 하는 중이다. 중국은 올해를 ‘태평양 방문의 해'로 정하고 열심히 중국인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태평양에서 흔히 나고 수출하는 농산물 등 여러 품목에 대해 향후 5년 간 관세를 폐지했다. 실로 불꽃 튀기는 신경전이 한참이다.


우리 정부도 태평양 지역 챙기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작년 10월에 열린 제5차 한-태평양 고위급 회담을 통해 100만달러(약 13억원) 기여를 약정한데 이어 올해 3월 한-태평양 도서국 무역/관광 진흥프로그램 출범식을 가졌다. 보통 가난한 나라를 돕는데 사용하는 ‘공적원조' 비용을 인적, 물적 교류에 사용하는 최초의 시도다. 일방적인 원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관계 맺기와 동반성장을 위한 윈-윈(Win-Win)전략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탈무드의 격언을 인용해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일방적인 원조)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교류, 교역을 통한 부가가치 및 일자리 창출 및 기술이전)”을 가르쳐 주기 위한 노력이라며 취지를 전했다.

●극소수를 위한 여행지라는 편견


태평양은 전통적으로 패키지보다 허니문으로 각광받는 지역이다. 허니문/커플여행도 여러 분류가 가능한데, 남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특이한 자연과 문화권 속에서 상대방의 참 모습을 만나 ‘영혼까지' 가까워져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자 하는 ‘진심 여행', ‘어드벤처 허니무너'에게 적합한 곳이다.


인생의 전환기에 짧게는 2주, 한 달 정도 시간을 내어, 인생 제 2막을 준비하기에도 그만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누구에게나 태평양을 추천한다. 특히 은퇴를 앞두고, 군대전역 후, 이직 등 인생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곳이라 확신한다. 늘 분주한, 분초 단위로 무언가 해야만 하는 여행지가 아닌, 그동안 잊고 지낸 것들, 잃어버린 가치들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새로운 자극을 받으려 극도로 분주한 뉴욕이나 유럽을 택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다.


태평양은 ‘아픈 이들을 위한' 힐링 섬이기도 하다. 신체와 영혼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여행지로 부족함이 없다. 태평양은 말 그대로 외로운 작은 섬들이다. 자연환경 변화에 취약(vulnerable)하고 늘 부족한 물자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거나 쉽게 버리지 못한다. 온갖 지혜를 발휘해야 겨우 생존이 가능하다. 


태평양 사람들은 나무 하나도 ‘신이 주신 선물’ 이라 부르며 감사할 줄 아는 이들이다. 그러니 사람을 진심으로 귀하게 여길 줄 안다. 재미있게도 태평양 대부분의 인사말인 불라(Bula), 탈로파(Talofa), 말로(M.l.) 등의 뜻은 ‘일이 없이 편안하냐'는 ‘안녕(安寧)'이다. 늘 불안하고 모진 환경 속에 살다보니 별 탈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인사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남태평양 관광기구 박재아 대표
남태평양 관광기구 박재아 대표

글=남태평양 관광기구 박재아 대표 Daisy Park
사진=남태평양 관광기구 South Pacific Tourism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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