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있어 일본여행] 역사 한 상의 사치
[기다리고 있어 일본여행] 역사 한 상의 사치
  • 곽서희 기자
  • 승인 2020.12.08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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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ences in JAPAN Tradition
교토의 기온 거리를 연상시키는 가나자와 히가시차야 거리
교토의 기온 거리를 연상시키는 가나자와 히가시차야 거리

처음엔 죄책감 때문이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출발 전 여행지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왠지 역사도 모르고 그곳을 방문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달까. 모름지기 역사 정도는 알고 가줘야지, 라는 느낌의 알량한 허영심도 한 스푼 있었다. 그런데 그 얄팍한 계기 덕에 ‘역사 검색’은 어느덧 습관으로 굳어졌다. 이제 역사와 전통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여행을 가면, 텅 빈 껍데기 위에 덩그러니 서있는 기분이다. 외롭고, 휑하다. 나에게 역사 없는 여행은 반토막짜리 여행이 돼버렸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전통은, 말하자면 잘 우려낸 차와 같다. 오랫동안 찬찬히 시간이 우러나올수록 맛은 더 짙어진다. 국가와 지역마다 고유의 차 맛이 있듯, 전통도 그렇다. 그중 일본의 전통은 유난히 단짝이 있다. 자연이다. 일본의 전통과 자연은 이를테면 차와 다과 같은 것이다. 서로 어우러질 때 풍미가 배가된다. 숲과 신사, 성당과 바다, 정원과 연못. 모자람 없는 조합이다. 여행자는 그저, 예쁘게 차려진 다과상을 양껏 즐기기만 하면 그뿐이다. 그래서 고백한다. 오늘만큼은 사치를 좀 부려보고 싶다. 삼나무 그늘 아래에서 호젓하게 다과상 가득 차려놓고 풍류를 즐기는, 그런 종류의 사치 말이다. 아, 물론 진짜 다과상 얘기는 아니다.  


●자연과 전통의 조화
이시카와


이시카와는 반전을 선사했다. 자연 속에 녹아든 이시카와의 전통문화를 통해서였다. 대도시의 빌딩숲이나 화려한 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름이기도 했다. 

가나자와의 히가시 찻집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게이샤 문화
가나자와의 히가시 찻집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게이샤 문화

가장 가나자와다운 것


이시카와현의 현청 소재지이자 호쿠리쿠 지역의 중심도시인 가나자와는 옛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이고도 ‘가나자와다운’ 거리를 찾는다면, 역시 히가시 찻집(히가시차야)거리다. 에도시대(1600~1867년) 풍류 일번지로 불렸던 거리로 일본의 게이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히가시차야 거리는 길 전체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일본어로 찻집(오차야)이라곤 하지만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은 아니다. 에도시대, 이곳에선 부유한 상인들이 게이샤를 불러 사케를 마시며 연회를 열었다. 히가시 찻집은 상류층의 사교장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이곳에선 게이샤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찻집 2층에서 히가시 거리를 내다보며 한가롭게 양갱을 곁들인 말차를 마셔 봐도 좋다.


현재 이 거리에서 여행자의 발길이 가장 잦은 곳은 금박공예품을 파는 공방이다. 이시카와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서든 쉽게 금박공예품을 볼 수 있다. 이시카와의 금박 생산량은 일본 전체 생산량의 99%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금을 1만분의 1mm까지 얇게 펴 금박을 만들 만큼 수공기술이 뛰어나다. 금박 액세서리에서부터 금박 화장품, 금박 카스테라까지 그 영역에도 한계가 없다. 이 히가시차야 거리에서 금속제품을 취급하는 공방은 3개 정도인데, 공방마다 판매품이나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 그중 금박 2만장을 붙여 만든 방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정원에 비친 600년의 세월


이시카와에서 가장 가나자와다운 거리가 히가시차야 거리였다면, 가장 가나자와다운 정원은 바로 겐로쿠엔이겠다.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겐로쿠엔은 전통적인 미를 뽐내는 곳으로, 일본 정원의 전형으로 불린다. 이시카와현립 역사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겐로쿠엔 그림을 보면 600년 전 겐로쿠엔과 현재 모습이 거의 다르지 않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지나온 정원이다. 
겐로쿠엔에서는 물이 정원 전체를 관통한다. 그만큼 물의 역할이 중요하다. 놀라운 것은 10km 떨어진 곳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350년 전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현대시설을 이용하지 않아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이는 예부터 자연과 자연방식에 대한 신뢰로 정원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정원에서는 인공적인 기계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자박자박 자갈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만 오롯이 들릴 뿐이다. 

자연을 품은 겐로쿠엔
자연을 품은 겐로쿠엔
가나자와 겐로쿠엔의 한가로운 풍경
가나자와 겐로쿠엔의 한가로운 풍경

한가운데 연못을 파고 주위에 정원을 조성했지만 겐로쿠엔에는 연못만 있는 게 아니다. 산이 있고, 폭포가 있고, 섬이 있다. 매화나무 숲도 있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양의 다리도 있다. 정형화된 유럽의 정원과 달리 겐로쿠엔은 숲과 산, 물과 섬, 동물 등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냈다. 에도시대 영주님을 위한 정원은 어느덧 이시카와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 주는 자연의 쉼터가 되었다. 전통 속에 녹아든 삶. 이들에게는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 이방인의 눈에는 한없이 부럽게만 비친다.

3산의 신들이 모두 모셔져 있다는 산진고사이덴
3산의 신들이 모두 모셔져 있다는 산진고사이덴

●순례길에 깃든 소망
야마가타


사람들이 삼나무 숲 오솔길을 걷는다. 
저마다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숲 어딘가에 그들의 소망을 들어줄 성지가 있다. 
야마가타 쇼와33관음 성지순례 이야기다. 

삼나무향 가득한 하구로산 순례길
삼나무향 가득한 하구로산 순례길

신들의 모임장소


‘데와 3산’은 예부터 야마가타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겨온 갓산, 유도노산, 하구로산 3개의 산을 말한다. 사람들은 작은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산과 그 주변의 사찰과 신사를 순례했다. 그렇게 300여 년 전에 순례길이 생겨났다. 그 중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사찰을 엮어 ‘쇼나이 33관음 성지순례지’가 탄생했다. 

즈이신몬
즈이신몬

데와 3산의 신들은 모두 하구로산에 모여 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가깝고, 참배에 나서기에도 부담이 없으며, 한겨울에도 눈이 잘 쌓이지 않는 특성 덕분이다. 셋 중 두 명의 신이 하구로산 순례길 관문의 경계를 맡고 있다. 즈이신몬이라는 이름의 문이다. 그 뒤편으로는 내리막길이 나있다. 걸어 내려가자 사방으로 300년에서 500년의 나이를 자랑하는 삼나무가 빽빽하게 서있다. 그 가운데 우뚝 선 29m 높이의 하구로산 오중탑은 박힌 못 하나 없이 1,000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ㅍ
유도노산 입구를 지키고 있는 빨간 도리이

하구로산 정상부에서 산진고사이덴을 마주했다. 두꺼운 지붕 아래에 세 개의 현판이 나란히 자리했다. 3산의 신들이 이곳에 모셔져 있다는 뜻이었다. 이전까지는 불교의 부처와 데와 3산의 신을 함께 모시는 신불습합(일본의 신기 신앙과 불교 신앙이 결합된 신앙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이루어졌던 곳이나, 메이지 원년(1868년)에 정부가 발표한 신불분리령에 의해 불교 사찰이 될 것인지 신사가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예전처럼 관세음보살도, 불교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산진고사이덴은 완벽한 신사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소소한 염원 하나를 들고 이곳을 찾는다. 이곳이 신사든, 절이든 간에 말이다. 

 

신의 체온을 느끼는 일


유도노산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고개를 바짝 치켜들어야 끝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도리이 옆에 자리한 건물로 들어섰다. 유도노산 신사를 관리하는 곳이다. 함께 순례에 나선 일행이 한 공간에 모이자, 성직자는 불을 끄고 암막 커튼으로 빛을 차단했다. 호마행이라고 부르는 의식이 시작됐다. 150년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천태종 사찰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의식으로, 선조의 넋을 기리고, 이곳을 찾은 이들이 안전하게 여행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유도노산의 중턱까지 올랐다. 좁은 골목을 따라 조금씩 발걸음을 내디뎠다. 신이 이 길의 끝에 있다. 묘한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반신반의하며 마주한 모습은 거대한 바위. 그것도 피부색과 비슷한 노란빛을 띤 바위였다. 신이 왜 바위의 모습이란 말인가, 의아해하던 차 바위 위로 흐르는 물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열을 받는 암반이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고, 그 위를 덮은 물 역시 온천수인 것. 오른손을 펴서 바위에 갖다 대었다. 마치 사람의 체온, 아니 신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제야 비로소 신을 만나는 길에 오른 것만 같다. 신성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믿음의 의미
나가사키


산티아고나 시코쿠의 순례길처럼 정해진 순례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톨릭 문화유산이 산재한 나가사키를 거닐었다. 
믿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일본 그리스도교의 시작점


무로마치 막부 말기 일본 각지가 전쟁으로 혼란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1550년. 예수회 소속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가고시마를 거쳐 이곳 히라도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은 포교를 조건으로 무역을 하고 있었기에 교역을 통해 막강한 힘을 얻고자 한 영주들은 포교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히라도는 일본 그리스도교의 시작점이 된다. 수세기가 흐르고 옛 영화는 오간 데 없이 한적한 섬마을이 되었지만 곳곳에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가톨릭교회와 성지가 남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발령하고, 정권을 이어받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4년 금교령을 내리면서 가톨릭 신자(키리시탄)를 엄격히 단속했다. 키리시탄으로 살고자 하면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다. 때문에 히라도를 비롯해 나가사키현의 오래된 성당들은 대부분 20세기 초에 완공된 것들이다. 

종교를 넘어선 믿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금교령을 내렸지만 가톨릭의 교세는 잠재워지지 않았기에 당시 수도였던 교토와 오사카 지역에서 24명의 가톨릭 선교사와 신자를 체포해 나가사키까지 걸어오게 한 뒤 처형했다. 오는 도중에 2명이 더해져 모두 26명이 1597년 2월5일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본보기였다.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박해는 근대로 넘어 오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 개항이 되기까지 무려 250여 년간 지속됐다.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나가사키의 가톨릭 성지들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나가사키의 가톨릭 성지들

구구절절한 역사도 모르고 가톨릭 신자도 아닌 내가 나가사키의 성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나카마치 성당에서 만난 히사시 신부는 종교를 떠나 ‘믿음’의 중요성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종교라는 것은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믿는 것과 같은 거라고. 들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키리시탄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종교를 넘어서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마음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일까, 그전에 나는 과연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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