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들어 외래관광객이 급증, 호텔 산업이 활발해지고 외국산 식자재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1972년 관광호텔업자들은 호텔용 식자재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사단법인 관광호텔 서플라이 센터를 설립, 일괄 공급체제를 갖췄다.
 호텔용 식자재에 대한 정부 추천업무가 복잡하고 호텔 개별적으로 구입할 경우 수량이 적은데 비해 인력과 시간, 경비가 과다하게 지출될 뿐 아니라 특정 외래품에 대한 사후 관리도 어려워 서플라이 센터(Supply Center)를 필요로 했다.
 「관광호텔에 필요한 제반물품을 비영리적으로 구입·공급 알선함으로써 외래관광객에게 저렴하고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함을 목적」(설립 당시 정관 제2조)으로 설립된 사단법인 관광호텔 서플라이 센터는 72년 9월 20일 교통부 장관 허가를 받아 정식 발족됐다.
 주식회사 한국관광호텔용품센터 전신인 관광호텔 서플라이 센터는 그해 8월 23일 발기인 회의를 거쳐 8월 30일 78개 호텔업체 중 64개업체가 가입한 사원 총회를 갖고 다음과 같이 임원을 선출했다.
 ◇이사장:최옥자(崔玉子 세종호텔)
 ◇이사:이윤우(李允雨 메트로)·권서정(權瑞鼎 유성 만년장)·이상순(李尙舜 뉴코리아)·이명춘(李明春 타워)·정용환(부산극동)·서병숙(徐丙淑 앰배서더)·이필석(도큐)·차준구(車駿九 국제호텔)
 ◇감사:이극성(李極星 뉴용산)·최인덕(崔麟德 춘천 세종)
 서플라이 센터 설립 이전에도 한국관광호텔협회에서 호텔용 식자재를 수입, 공급하고 있었다.
 당시 관광호텔 서플라이 센터 무역부 차장 李敬一씨(주식회사 한국관광호텔용품센터 무역본부장 역임, 에스아이 무역 주식회사 이사)의 회고.
 『내가 69년 4월에 한국관광호텔협회에 들어갔는데 호텔 협회에서 그 이전부터 기자재 식자재 양주 등 외자재를 수입해서 호텔에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기자재는 호텔건설 사업계획을 심의, 승인하는 과정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서류 절차만을 대행하고 69년에 도입된 외국인 전용 호텔택시 수입 업무도 호텔협회에서 취급했는데 호텔용 외제 차량의 차종은 주로 벤츠였어요. 그러다 72년 4월 28일 업종별 협회가 통폐합되고 호텔협회 업무가 신단체 대한관광협회 중앙회(한국관광협회)에 통합되면서 외자재 수입업무가 중단됐어요. 통합협회 전무 鵑 權大有씨(작고)를 찾아가 외국산 식자재 수입 업무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수익사업으로 계속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더니 「업종협회가 통합되면 재정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협회 업무도 복잡한데 외자재 수입업무까지 취급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더군요. 잘못 판단한 거지요. 그러면서 「협회 사무국에 와 서무 일을 보라」고 하기에 제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하고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두 달인가 지나 세종호텔을 운영하는 대양학원 재단 사무차장 曺小潤씨가 만나자고 해서 찾아 갔더니 「외자재 수입 문제로 호텔업자들의 불만이 크다」면서 「수입업무를 담당한 경험도 있으니 와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좋다고 했지요. 서플라이 센터는 선수금제로 운영했습니다. 호텔별로 필요한 품목과 수량을 신청 받아 수입·공급했는데 식자재가 면세품이기 때문에 사후 관리가 까다롭고 복잡했어요. 외국인에게 제공했다는 근거를 남겨 놓기 위해선 외국인 이용객에게 일일이 사인을 받아 정리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면세 양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후 호텔업자들은 면세주류에 대한 사후관리가 까다롭기 때문에 판매가격 차이가 큰 데도 불구하고 관세가 부과되는 쪽을 택했다. 서플라이 센터가 설립되기 이전의 일이다.
 면세주류에 대한 과세 문제는 71년 1월 22일 국제관광공사를 순시한 白善燁 교통부 장관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잠시 논의됐다.
 이날 白장관과 張盛煥 관광공사 총재, 金完洙 교통부 관광국장 사이에 오간 얘기를 옮기면.
 ▼白善燁 장관=관계부처 국장회의에서 호텔용 양주에 대해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고 보고 받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양주는 국제적인 스탠더드 가격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張盛煥 총재=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양주 값을 물어보고 이렇게 물가가 비싸냐고 하게 되면 관광측면에서 불리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金完洙국장=그런 점은 있지만 면세주류에 대한 사후관리 문제 때문에 호텔업자들은 차라리 과세하는 게 낫다고 합니다.
 관광호텔 서플라이 센터 사무국장으로 서플라이 센터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曺小潤박사(주식회사 한국관광호텔용품센터 전무이사 역임, 세종대학교 관광대학원장)의 회고.
 『그 이전에는 식자재를 미군 PX나 암시장에서 조달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특정 외래품 판매금지 품목이기 때문에 법에 저촉을 받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관세청에서도 불시에 단속을 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선 정식으로 수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입허가를 받으려면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단법인 관광호텔 서플라이 센터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대양학원 재단 사무차장으로 있었을 때였는데 그 전에 무역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플라이 센터 설립에 참여하게 됐지요. 직책은 사무국장이지만 월급은 재단에서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무보수로 근무했지요. 설립당시의 직원은 무역업무를 담당한 李敬一씨와 관리담당 申萬秀씨, 그리고 여직원 한 명이 있었습니다. 식자재는 교통부를 거쳐 상공부에 승인 신청절차를 거쳐 수입했는데 청와대 경제 제3비서실(관광진흥담당)에서도 관심을 갖고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청와대 경제 제3비서실은 서플라이 센터 설립 단계에서부터 깊이 관여했다.
 청와대 경제 제3비서실에 근무했던 閔丙璡씨(관광공사 지도부장·제주 파라다이스 사장·제주도 관광협회장·한국관광협회 상근 부회장 역임)의 회고.
 『67년부터 2년간 스위스에 파견되어 호텔연수 교육을 받으면서 호벡(Howeg Supply Center)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1백년이 넘게 운영되어온 유명한 호텔 서플라이 센터 였어요. 스위스가 내륙국가이기 때문에 호텔 식자재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포도주는 프랑스에서 참나무 통째 가져와 라벨(Produce of France)을 붙여 보트링하고 커피도 직접 브라질에서 재배한 원두를 들여와 가공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소·양·돼지도 도살장에서 가져와 부위별로 나누어 저장하고 식당의 테이블 등 기자재는 물론 유니폼까지도 공급하고 있는 것을 봤는데 이같은 서플라이 센터가 필요하다고 느껴 이를 건의해서 관광호텔 육성책 일환으로 운영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점차 관광객이 급증하고 호텔업체도 크게 늘어 수입품목이 확대되면서 사단법인 공급체제가 한계점에 이르게 되자 호텔업체가 공동 투자한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77년 6월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교통부는 상공부, 보사부, 농수산부, 수산청 등 관계부처와 연석회의를 갖고 호텔용품 공급원활을 위해 사단법인 운영체제를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개선책을 마련, 이를 청와대에 보고하고 준비작업을 거쳐 78년 2월 16일 주식회사 한국관광호텔용품센터가 설립됐다.
 용품센터는 저렴한 가격으로 언제든지 필요한 때에 구입할 수 있는 백화점식 운영.
 용품센터 전무이사 曺小潤 박사의 설명.
 『호텔산업이 발전하고 호텔도 규모가 커지면서 식자재 수요가 크게 늘어나 원시적인 조달체제론 원활하고 합리적인 운영을 할 수 없었어요. 그 때문에 근대경영기법에 의한 운영방안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필요한 품목을 적시에 공급하는 체제로 바꾼 것입니다. 식자재를 수입할 때는 소요 판단을 위해 시장조사를 통해 품목과 수량을 파악하고 별도로 특급 호텔 등에서 필요로 하는 품목이나 많은 수량을 요구할 때는 특별품목으로 취급해서 사전 주문에 의해 공급했습니다. 주식회사 설립당시의 자본금이 객실수로 할당해서 5억원이었던 것 막 기억되는데 자금사정이 어려운 때라 사채를 끌어쓰는 업체도 있어 제대로 불입이 되지 않았어요. 부득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崔玉子씨가 부족 자본금 일부를 메꾸게 되다 보니까 대주주가 된 거지요. 그분의 노력이 컸습니다. 몇몇 특급호텔은 자본참여는 하지 않고 구입만 하겠다고 했어요』
 崔玉子씨와 김근전씨에 이어 78년 8월 3일 李春根씨로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李春根씨(세종호텔 사장 역임, 한냉실업 사장)의 회고.
 『72년에 서플라이 센터가 설립되어 78년 주식회사로 재발족 될 때까지를 초기의 1단계라고 하면 83년까지를 2단계, 그 후를 3단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업무가 활발해졌고 사세도 확장됐는데 3층 건물을 증축(4·5층)한데 이어 인접 건물(대지 150평)을 구입, 무역부에서 사용케 하고 부산 송정에 냉동·냉장시설을 완비한 유통저장센터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 지사를 설치, 외국 식자재 구입 전진기지로 활용, 원산지에서 직접 구입함으로써 수입원가를 절감시켰어요. 판매처가 호텔에 한정되고 공익을 우선하는 사업이라는 특 봉 참작, 원활한 운영을 위해 재고품을 극소화하고 회전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시로 수입했습니다. 사장품도 거의 없었어요. 해외시장 정보를 얻기 위해 컴퓨터 시스템도 이때 도입됐는데 그 같은 시스템에 의해 업무가 늘어나는데 따른 인원 증가도 극소화했지요. 내가 사장에 부임한 78년의 연간 매출액이 1백50억원 이었는데 95년에 그만 둔 그해는 8백4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재임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업무도 그토록 활성화되고 발전한 것입니다』
 현 사장 柳孝熙씨는 95년 2월 28일 부임했다.
 주식회사 한국관광호텔용품센터 설립 초기부터 기획담당 등 실무를 거쳐 사장에 선임됐다.
 『지금은 연간 매상액이 9백80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체 수입량의 55%를 쇠고기 등 육류가 차지하고 있는데 호텔에서 필요로 하는 부위(안심·등심 등)를 확보할 수 있고 공급가격이 싸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장에 부임해서 보람을 느꼈다면 부산을 비롯 대구·제주· 育禍ㅁㅑ 등 주요 지역에 지사를 설치, 그 지역 호텔 업체를 위해 지사에서 물품을 직접 공급하고 있는 점입니다. 종전에는 서울에 올라와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불편이 많았지만 지사가 설치되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경비도 절감되고 야채 등 신선도가 유지되어야 할 품목을 제때 공급하게 됐습니다. 지사마다 냉동 창고를 갖추고 냉동차로 일일이 운반되고 있기 때문에 유통경비가 소요되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편리해졌지요』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