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바다와 육지를 경계지었고, 수천 년을 흘러온 파도는 기기묘묘한 해암절벽을 잉태했다.
 이른 아침,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찾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 구절양장(九折羊腸)의 해안도로 아래로 수십 장(丈) 길이의 해안절벽이 끝 모르고 이어져 있다.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남태평양의 바다는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절벽을 때린다.
 그리곤 또 다른 수천 년 후의 천혜의 조각을 약속하고는 포말이 되어 저 멀리 퇴행한다.
 호주 빅토리아주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보아야 할 장소가 바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총길이는 멜버른에서 서남쪽으로 75km 떨어진 질롱(Geelong)에서부터 넬슨(Nelson)까지의 437km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질롱에서 270km 거리에 위치한 워넘불(Warrnambool)을 기나긴 해안 드라이브의 도착지로 삼는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감탄사가 연이어 흘러나온다. 대관령이나 추풍령 보다 더 구불구불한 도로는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숨막힐 듯한 절경을 불쑥불쑥 내밀기를 수차례 반복, 눈을 붙잡아 맨다.


 포트캠벨 국립공원(Port Campbell National Park).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하이라이트중의 하나로 멀리에서부터 절벽해안 가까운 바다에 이르기까지 기묘한 모습으로 서있는 바위기둥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에 오면 국립공원임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이나 매점은 커녕 그 흔한 안내소 하나 없어 빅토리아주 사람들이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말 그대로 `Just let it be'.
 그 유명한 `12사도 바위(Twelve Apostles)'도 바로 이곳에 있다. 마치 예수의 12제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적, 마법, 경이…. 바다를 뚫고 나와 무리를 지어 파도의 손길로 다듬어진 `12사도 바위'의 정경은 이런 표현 이외에 아무런 형용사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게 한다. 공기를 타고 전해오는 자연의 유장함과 경건함에 시나브로 젖어들 뿐이다.
 포트캠벨에서 발걸음을 재촉, 서쪽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피터버러(Peterborough)라는 도시에 채 못 가서 또 하나의 경이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다.
 런던 브리지란 이름은 파도의 풍화^침식작용으로 일부가 더블 아치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했으나 수년 전에 침식으로 다리 중앙이 무너졌다. 시린 바닷물에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역사의 숨결과 끝없는 동어반복을 고스란히 토해낸다. 수평선에서 뛰쳐 올라 런던 브리지를 타고 오르는 해돋이라도 볼라치면 그 완벽한 풍경화에 그저 눈이 시릴 뿐이다.
 미꾸라지 같은 길을 타고 넘어가는 버스안에서 좌우로 흔들리다 보면 어느새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실질적 종착지인 워넘불에 도착하게 된다(워낙 길이 구불구불해서 차의 좌우 흔들림이 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운행하는 버스에 아침 일찍 몸을 싣고 싶으면 전날 밤의 음주는 삼가는 게 좋다. 멋모르고 마셨다간 다음날 차안에서 내내 비닐봉지를 붙잡고 있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
 19세기에 개척된 항구마을인 워넘불은 거센 파도와 기암절벽 때문에 수많은 개척자들이 난파를 당했던 고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난파해안(Shipwreck Coast)'이라 명명된 이유도 다 그래서다.
 워넘불에는 19세기 개척시대를 재현한 테마공원 `플래그스태프 힐 해양마을(Flagstaff Hill Maritime Village)'이 잘 조성돼 있으며, 한켠에는 소규모의 해양박물관도 있어 빅토리아주 선조들의 숨가빴던 개척의 역사를 일견할 수 있도록 해놨다. 200여년에 불과한, 우리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역사지만 나름대로 소중하게 간직하려는 노고의 결실이다.
 특별히 볼 만한 것은 퍼블릭 홀에 전시된 `로크 아드 공작(Loch Ard Peacock)'으로 난파된 로크 아드호에서 발견된 아름다운 청동상이다. 1878년의 로크 아드호 난파는 승선한 인원 가운데 52명의 목숨을 빼앗고 단 2명의 생존만을 허락했는데, 에바 카미첼(Eva Carmichael)과 톰 피어스(Tom Pearce)가 바로 그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두 사람 가운데 에바는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갔고, 톰은 난파선에 승선했던 끔찍한 악몽을 딛고 후에 한 배의 선장이 됐다고 한다.
 해양마을 한쪽에는 악천후, 깎아지른 절벽, 얕은 해수 등으로 항구로서는 최악의 입지조건을 갖고 있었던 워넘불의 `레이디 만(Lady Bay)'을 비춰주던 등대도 고고히 서있다.
 워넘불의 중심가에서 동남쪽으로 2km에 있는 `로건스 비치(Logan's Beach)'에는 매년 7월에서 10월사이 `서던 라이트 웨일(Southern Right Whales)'이라는 고래가 출몰하기도 한다. 타즈매니아 해안과 빅토리아 남부해안을 가로 질러 고래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는 것.
 싱싱한 남태평양 바다와 숭엄한 기암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해안을 바로 옆에서 가로지르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여정에는 이외에도 서핑의 요람으로 매년 세계적인 프로 서핑대회인 립컬프로가 열리며 서핑박물관까지 갖추고 있는 `토퀘이(Torquay)'와 넓은 백사장을 끼고 있는 휴양도시 `론(Lorne)'과 `엔젤시(Angelsea)', 경관이 뛰어난 `아폴로 베이(Apollo Bay)' 등이 반갑게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호주 멜버른=노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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