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 번 발 디딘 여행 경험으로는 함부로 안다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미처 몰랐던 수많은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변화하는 북경의 모습은 물론이고 넓디 넓은 땅 덩어리 곳곳에 숨겨진 비경은 그 수를 헤아리는 것만도 숨이 차다. 성도에서 455km 떨어진 구채구도 그 중의 하나.

국내 어디를 가도 변변한 관련 자료 하나 찾기 힘든 구채구는 왠만한 중국 전문가가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처녀지. 지난 92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의 하나로 지정할 정도로 순결함을 지니고 있다.
구채구 여행은 장강삼협이나 불교단체가 많이 찾는 아미산 관광의 시발점으로 잘 알려진 성도에서 시작한다. ‘동화 속 나라’라는 애칭을 지닌 구채구는 사천성의 중심인 성도에서 차로 꼬박 11시간을 들어가야 닿을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 중간의 식사시간과 화장실 가는 잠깐의 휴식까지 계산하면 12시간은 족히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각오해야 한다. 그나마 97년에 길이 생기면서 이 정도로 편한(?) 여행이 가능해 졌다는 것이 이곳 가이드의 설명.
구채구 가는 길은 사천성에서 유일한 평원인 성도시를 출발해 조금씩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해발 3,650m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내려온다 하지만 구채구의 평균 해발도 2020m에 달해 한라산보다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 있는 셈이다. 특히 구채구에 도달하기 한 시간 가량 전에 지나는 구채구현과 송번현이 만나는 계곡에서는 곧게 뻗은 잘생긴 나무들을 지나치며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고 7, 8월에도 종종 눈을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꼬불꼬불 산허리를 감고 오르는 자동차 길은 아찔하면서도 진기한 장관을 눈 앞에 펼쳐보인다.
‘9개의 티벳 마을이 있는 계곡’이란 뜻에서 유래된 구채구를 설명할 때면 흔히 5가지 경치를 손꼽는다. 이름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신기한 소수민족의 풍경을 시작으로 울긋불긋 빛 고운 단풍이 뒤덮인 채산과 겨울 설산, 폭포와 호수는 구채구를 대표하는 5경.
1년 중에는 3, 4월과 10, 11월이 성수기를 이루며 그 중 10월은 서로 다른 계절의 풍경인 채산과 설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고 물까지 풍부해 구채구 5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 단연 인기만점. 단, 10월에는 일일 수용인원 8,000명인 구채구에 2만여 명 가까운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으므로 최소한 2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한다.

빼어난 산세와 함께 구채구 관광의 하일라이트를 이루는 절경은 형형색색의 호수 빛. 황산을 다녀 온 사람은 산을 안본다는 말이 있듯 구채구를 다녀 온 사람은 물을 안본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구채구의 호수 빛깔은 예술이란 단어가 아깝지 않다.
구채구 관광은 일반 관광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단 공원안에 들어가면 단체 관광객이 타고 온 버스가 아닌 공원내를 순환하는 환경보호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처음 이용료를 지불하면 공원안에서 움직이는 아무 버스나 타고 내릴 수 있다. 단, 한 버스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소지품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구채구 공원에 첫 발을 내딪은 관광객이 자기도 모르게 첫 탄성을 내지르는 포인트는 역시 호수. 114개의 호수와 17개의 폭포로 이뤄진 구채구는 호수마다 저마다의 빛깔이 있고 그에 맞는 이름이 있다. 구채구에서 일반에게 개방된 관광코스는 하나의 골짜기가 올라가다 둘로 갈라지며 영어 Y와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 중 가장 큰 호수는 왼쪽 가지의 끝 편에 위치한 장해. 해발 3,010m에 위치한 장해는 깊은 곳 수심이 40m에 달하며 처음 맞닥뜨린 사람에게 산과 안개로 둘러 싸인 호수는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웅장하다.
장해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해발 2,600m 지점에 작고 아담한 오채지를 만날 수 있다. 호수의 영어 명을 ‘멀티칼라’ 호수라 할 정도로 다양한 색을 담고 있는 오채지는 호수라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몰디브해보다 선명한 푸른 빛을 내뿜는다. 게다가 오채지는 구채구 호수중에서 유일하게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그 이유를 밝히지 못해 신비감을 더한다.
관광 코스의 오른쪽 줄기를 따라 오르다보면 가장 조용하고 고요한 호수라는 경해를 만날 수 있다. 주위 산이 거울처럼 비친다해 경해로 이름 붙여진 이 호수에는 사진을 찍는 커플은 그 사랑이 변치 않는다는 애정공원이 있어 젊은 남녀에게 인기가 높다.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평가받는 곳은 경해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곳에 위치한 오화해. 공작이 꼬리를 펼친 듯 아름다운 무늬가 나온다하여 공작해라고도 한다.
공작해 위로는 팬더곰이 나왔다고 하는 팬더해와 팬더곰이 즐겨 먹는 죽순이 자라는 죽순해 등이 차례로 있는데 이 두 호수는 어른 가운데 손가락 크기의 비늘도 없는 물고기들의 노니는 모습이 그대로 들여다 보일만큼 투명하다. 두 호수를 조금 더 지나면 원시삼림으로 이름 붙여진 산책로가 나온다. 원시림이란 이름처럼 조금만 어두워지면 호랑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이 곳에서는 비록 호수는 없지만 대신 눈 덮인 설산에 둘러 쌓인 운치를 만끽할 수 있다. 원시림 입구에서는 중국 돈 30원을 받고 30분간 말을 태워 산책을 해주는 티베트족들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두툼한 옷·우의 꼭 챙기세요
구비구비 가는 길도 험난한 구채구를 찾기 전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챙겨둬야 한다.
구채구는 7, 8월에도 눈을 볼 수 있는 높은 지대를 통과하며 그만큼 주변지역과 기온 차가 크게 난다. 더우면 벗는 편이 있더라도 고생하지 않으려면 든든히 옷을 챙겨가야 한다.
해발이 높다보니 날씨 변덕도 아이들 심술만큼이나 잦다. 멀쩡하다 싶다가도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고 또 금새 해가 나는 곳이 구채구.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모르니 우의나 우산은 준비물 1호. 해가 났을 때를 대비해 자외선 크림도 준비하는 편이 좋다.
워낙 오랜 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여행이다보니 차에 오르기 전 약간의 군것질 거리를 챙겨두는 것도 요령이다. 군것질 거리를 장만할 때는 돌아올 때를 고려해 넉넉하게 준비해야한다. 구채구에서는 우리 입맛에 맞는 변변한 과자나 음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함께 라면이나 고추장 등도 챙겨둘 필요가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소수민족의 색채가 강한 구채구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음식이 우리 식성과 차이가 많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음식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기본 반찬을 마련해 두는 편이 허기진 여행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해발이 높다보니 신체리듬 조절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구채구로 가다 보면 대부분 중간지점인 무현이란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무현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가급적 음주를 삼가는 것이 좋다. 무현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지대가 높아지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알코올 흡수가 빨라지고 심장에도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이밖에 세계 어느 관광지에서나 통하는 기본적인 주의사항도 있다. 일단 구채구 관광지에 들어서면 화장실과 식당을 제외하고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50원에서 500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나무를 꺾는다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몰상식한 행동은 당연히 금물이며 물 빛이 곱다고 함부로 손을 담그거나 물고기에게 빵가루같은 먹이를 뿌려서도 안된다.
중국 구채구=김기남 기자


""티베트족 풍경 천천히 읽기
대략이나마 구채구 관광코스를 돌아보려면 아무리 이른 새벽 공원에 들어선다해도 하루는 꼬박 투자를 해야한다. 구체구 관광은 대개 위에서부터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전 중에 Y자 관광코스의 한 쪽 가지를 관광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 나머지 한 쪽과 줄기 부분을 1시간 가량의 하이킹을 곁들여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취사가 금지된 구채구 공원안에는 식당이 한 곳 뿐이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Y자가 합쳐지는 부근에 있는 티베트 족의 작은 마을에서 하게된다. 관광구역안에는 구채구의 7개 티베트 마을 중에 3 곳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곳이다.
오전 내내 아름다운 호수 빛에 정신이 팔렸던 관광객들은 이 마을에 도착해서야 구채구 5경 중 하나인 소수민족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게 된다. 관광객이 많이 지나치다 보니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서 그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곳곳에 티베트 족의 모습이 남아있다.
티베트 족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집집마다 세워져 있는 기다란 깃발. 라마교를 믿는 티베트 족은 결혼, 죽음, 탄생, 사고 등 집안에서 생기는 일들을 집 앞에 세운 라마기에 기록하고 매일 영혼에 대한 기도를 올린다. 멀리서 보기엔 그저 빛바랜 기다란 깃발처럼 보이는 라마기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빼곡하게 집안의 대소사가 적혀있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비슷하지만 집 앞에 세워진 라마기의 수가 많을수록 그 집의 경제적 지위의 높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티베트 족은 이밖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다리에도 라마기를 세워 놓는다. 다리의 깃발에는 그 곳에서 있었던 사고를 기록하고 영혼을 위한 기도에 사용된다. 라마기는 색상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흰색은 깨끗한 마음을 뜻하는 구름을, 붉은색은 태양, 푸른색은 하늘, 황토색은 땅을 뜻하며 녹색은 나무를 나타낸다.
티베트 족의 풍경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오후 관광의 진경은 폭포. 팬다해에서 아래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공작호가 한 눈에 내려보이는 곳을 지나치는데 이곳에서 하차하면 진주폭포라 불리는 폭포를 위로 돌아 아래도 지나쳐 오는 40∼50분 가량의 산책 코스를 지날 수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계곡을 타고 오던 물줄기가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사진 촬영을 위한 자리도 적재적소에 놓여있다.
산과 호수와 폭포, 어렴풋이나마 티베트 족의 모습을 보고 나면 구채구 관광은 대략 끝을 맺는다. 관광이 끝나고 다시 성도로 길을 떠나려 하면 누구나 아쉬움과 막막함이 교차하는 묘한 경험을 한다. 한 편에서는 여전히 눈에 밝히는 구채구 절경에 대한 아쉬움이 다른 한 편에서는 앞으로 가야할 12시간 자동차 여행의 막막함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도로 돌아오는 길에 펼쳐지는 시골 마을과 황룡사가 있는 황룡과 같은 관광지는 구채구 5경과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며 지루함을 한결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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